5월 1일 노동절.
오랫동안 우리 부부가 머뭇거려왔던 어린이집을 보러갔다.

매번 아기를 맡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아기를 두고, 야위어져 가는 부모님을 두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눈큰이와 나는 기분이 착 가라앉고는 했다. 그 죄스러움이야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내 통장에 첫월급이 들어올 때부터 이젠 늦게나마 부모님이 그동안 나를 위해 희생하셨던 부분들을 작게나마 갚을 수 있으리라 마음 부풀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급작스레 흘렀고, 그 사이 정년퇴직한 아버님과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는 어머님 사이에 손자를 안겨주고 이렇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약하고 불충한 내가 되버렸다.
물론, 그 모든 지난 세월이 부모님께 아픔과 고단함을 안겨드린 것만은 아닐테지만(진정, 아니길 바란다) 그럼에도 짐만 가중시켜 드리는 것 같은 감정이 밀려올때면 가슴을 뜯어내고 싶어지는 심정까지 생긴다.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야윈 두 분의 모습이 떠오르면 그 막막한 심정이란, 그러면서도 여기 서울에서 이렇게 앉아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나란 존재가 가증스럽게 느껴지고 천상 당신들 앞에서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자포자기 심정도 솟는다.

빨리 안토니오를 데려오고 싶다. 아이가 서울이란 참 막막한 도시에서 커가는 것, 그리고 규율화된 일상의 일과를 유치원에서 보내야 되는 건조함과 무뎌지는 도시 생활을 아이에게 익히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건 안토니오와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지, 그렇다고 이젠 노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충분한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부모님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를 돌보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계속하게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부모님에 대한 나의 조급함 때문에 눈큰이에게도 자꾸 구박을 하게 된다.
"우리보다 부모님이 먼저야!"
"하루하루 안토니오와 씨름하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을 해봐"
그렇지 않아도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눈큰이에게 한순간의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나를 만날 때면 그녀에게도 한 없이 미안해지면서도 결론적으로 모든 생활의, 여유의 잣대는 부모님이다. 심지어는 터무니 없게도 눈큰이가 부모님과 안토니오의 비정상적인 생활보다 자기처지를 먼저 한탄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맙소사~ 나의 불안을 핑계로 그녀에게 몰아붙이고 난 후면 난 영 몹쓸놈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난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노동절을 맞아 깊은 늦잠에 빠져든 아침, 눈큰이는 일찌감치 컴퓨터를 키고 근처 구립어린이집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어 방문 시간을 알아본다. 그리고 나를 깨워 우리가 오늘 방문해야 할 곳을 정리해 보고한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으면 난 불안만 가슴속에 계속 남겨두고 가끔 발끈하면서 그녀를 몰아세우곤 해 왔다. 그게 부모님을 핑계로 한 나의 일상이다.

눈큰이는 어쩔 수 없이 순하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침묵한다. 조금 지난 후에서야 나의 막무가내식 화풀이에 후회가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기 시작햇다. 지금 이순간이나마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이 상황이 답답해 내가 나를 꾸짓듯 당신에게 화풀이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쉽게 나의 이런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휴~

봄날씨 같지 않게 햇살 뜨겁게 내려쬐는 비탈길을 올라 어린이집 두 곳을 방문했다. 두 곳 모두 우리가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창에 마주하고 있는 절벽 위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날아서는 수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이지만 입구로 돌아서 비탈길을 오르려면 숨이 약간 차오를 즈음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벨을 눌러 들어간 첫번째 어린이집에는 선생님들이 유별나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반겼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그랬던가? 약간 너무나도 청결한 유치원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전시용 시설에 와 구경하고 있는 만큼이나 조금은 멀찌감치 낯설게 느껴졌다. 논길, 밭길, 산 속 덤불 숲을 하루종일 헤집고 지냈던 옛 나의 어린시절과 잠깐 비교하더라도, 이런 깔끔하게 정돈된 곳에서 안토니오는 어떤 생활을 할 지 좀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가 혁명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도시에서 아둥바둥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안토니오를 데려와야 한다.

보육교사의 안내에 따라 눈큰이는 신청서에 신상정보를 정성껏 적는다.
"3~4세 유아 대기자가 제일 많아요. 어머님! 최소 1년은 예상하셔야 해요"
1년이라. 왜 일찌감치 와서 신청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더 일찍은 어려울까요?"
"글쎄요. 이사가는 아이가 있어서 결원이 생긴다 하더라도 대기자가 많아서 아마 힘들 거예요"

두번째 찾아간 곳은 첫 어린이집에서 비탈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더 올라가 있었다. 다행히 그곳 근처에는 작은 숲과 공원이 있어서 그나마 더 친근감이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가파른 비탈길을 아침마다 안토니오를 닥달하며 올라올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다행히 그곳은 어린이집 차로 아파트 주변을 돌아서 아이들을 태워 데리고 온다고 한다. 실내 구조나 정결함은 방금 전 들른 첫번째 보육원과 흡사하였다. 단지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전통 타악기와 드럼 등의 악기들이었다. 거실 한 구석을 가득 채운 장구와 북들, 그리고 거실 중앙에 있는 드럼 통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는 무조건 공원으로 나가요."
그 한마디가 우리 둘의 마음을 끌었다.
"보통 6시 이후까지 남아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나요?"
"한 두 명 정도 되요. 나머지는 그 이전에 어머님들이 대부분 데려가죠"
우리가 아무리 6시 칼퇴근을 하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시간은 최소 40분은 잡아야 한다. 조금 걱정하는 표정을 짓자 능숙한 보육교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여기 선생님들이 재미있게 놀아주니까요"라고 말한다. 직장인을 가진 엄마들이 대부분 학교 교사일 경우가 많다고 살짝 귀뜸해주었다. 하긴 아기를 낳고 우리나라 일반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여성이 전체 여성의 몇 프로나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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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방에서 살고 있는 안토니오는 아침을 먹고 나면 할아버지와 함께 숲을 산책하거나 근처 대학교정을 두세시간 가량 탐험하고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는 것이 일상이다. 부모님이 지금 살고 계신 곳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생활하시기는 불편하고 적적하지만 손주들을 키우기 위해 임시로 선택하신 거처이다. 그런 곳과 쬐끔은 유사한 공간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다는 것도 행운이면 행운이다.
물론, 그곳도 3~4세 유아 신청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

눈큰이와 나는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며 숲을 둘러보았다. 제법 숲이 울창한 가운데 벤치마다 할머니들 한 둘이 차지하고 그늘을 찾아 누워있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두번째 들른 어린이집이 좋겠지?"
"아마도, 안토니오 지금 생활하고 있는 패턴이랑은 환경이 그나마 유사하지?"

두 곳을 둘러보고 난 후에는 아파트 동 내에 있는 보육시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구경하는 것을 포기했다. 결국 두 곳 대기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큰 수확으로 여기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핥으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눈큰이는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마음이 떨린다고 얘기했다. "내가 이젠 정말 학부모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하지만 오히려 난 덤덤했다. 눈큰이가 내 기분을 물었을 때 순간 머리속에 떠오른 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저 비탈길을 바삐 올라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안토니오를 향해 내가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팔을 펴고 구부려 앉아 달려오는 안토니오를 품에 안는 영상이었다. 그외에는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을 같이 먹고 같이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들어와서는 안토니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재우고 난 이렇게 앉아서 다시 하루 날적이를 하거나 눈큰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겠거니 싶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은 다시 걱정거리가 생긴다. '우리도 한 번 여행갔다오면 어떨까?'하는 눈큰이에게 '우리때문에 안토니오를 돌보고 계신 부모님 생각해서 다음에 가자'는 식으로 미뤄오던 나였는데... 막상 안토니오를 서울로 데려온다니 또하나의 핑계거리를 만드는 셈이었다. '아! 이런 답답한 도시에서 안토니오를 키워야 하는걸까?'라는 비현실적인 고민이 스멀스멀 생기면서 또 다른 말도 안되는 답답한 고민을 한다.

가만보면 나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계속해서 핑계를 만들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적까지 그리 살아온 것처럼...

어쨌거나 그렇게 그럭저럭 어기적어기적 살아갈 거라는 소시민의 낡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노동절 하루도 어영부영 흘러갔다.

막상 그리 부담되지도, 그렇다고 기대되지도 않는 미래란,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나의 생의 답답한 그림자이기도 하니까.

함께 듣는 곡은 Badfinger의 "Straight Up"(1972)앨범 중 9번 곡 "Day After D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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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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