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은 안토니오 너의 음력 생일이란다. 이젠 6살이 된 너도 알고 있겠지만 딱 5년 전이었던 2006년 4월 초파일은 양력으로 5월 5일, 참 공교로운 날이지. 또 한가지 너의 큰 아빠가 기뻐하며 알려주셨는데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세계를 뒤흔들었던 위대한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단다. 이쯤되면 너의 출생에 대한 우리 가족들의 부푼 기대를 짐작하고도 남겠지? ^^

안토니오! 너의 여섯살 생일을 축하한다. 무엇보다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직장에 다니는 아빠 엄마 때문에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네가 얼마나 안쓰러운지 몰라. 지난 일요일 2주동안 몸살감기를 앓았던 너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을 때 뼈밖에 남지 않은 너의 뒷모습을 보고는 아빠가 가슴이 너무 아팠어. 그런데도 너는 엄마 아빠와 항상 있을 때마다 웃어주고, 흥얼거리고, 감탄하고, 춤을 추어 주고... 오히려 그런 우리를 매일같이 일으켜 세우며 삶의 기쁨을 전해주고 있지. 고맙고 참 고맙단다.
오늘 저녁에 식사를 하며 너의 엄마 눈큰이와 안토니오 태어난 날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었어. 언젠가 너의 어린이집 홈페이지에 그 때의 순간을 담은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혹시나 잊혀질 것 같아서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먼 훗날 너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여기 그날, 너가 태어나던 순간의 기록을 다시 옮겨본다. 안토니오와 엄마 눈큰이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말야^^


2006년 5월 5일

아내와 함께 4일 병원엘 갔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는 정기검진때문이다. 예정일이 6일이었는데 아내에게서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지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의사선생님은 다음 주까지 별 증상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집에 같이 오면서 아내에게 "오늘부터 특훈(특별훈련)에 돌입해야겠어. 이제부터는 엘레베이터도 타지 말구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오늘 저녁식사 후부터는 공원에 가서 여섯 바퀴씩 돌고 오자"라고 말했다. 빨리 아기를 만나보고 싶다는 조바심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빨리 나와야 산모가 덜 힘들다는 의사선생님 말씀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저녁 식사 후 한 시간 정도 집에서 쉬고 난 후, 아내와 난 굳은 결심을 한 얼굴표정을 하고, 깜깜한 아파트 계단을 서로 손 꼭 마주잡고 천천히 내려와서 근처 배수지공원으로 향했다. 난 공원을 달리고, 아내는 천천히 걸었다. 공원이 넓은지라 아내가 두 바퀴 정도 돌더니 힘들다고 한다. 계속 걸어야 한다고, 집에 가자는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그냥 가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내를 위해서 좋을거라는 고집같은 게 생겼다. 그치만 결국 반 바퀴도 채 못 돌고 아내가 더 이상 못 걷겠다고 해서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아내는 12시부터 갑자기 화장실을 왔다갔다하더니... '자기야~ 나 이슬 나왔나봐'
피와 함께 약간 연노랑의 연한 젤리같은 모양의 덩어리가 나온 것이다. 아~ 오늘 중에 아이를 낳겠구나.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새벽 두시까지 아내가 화장실에 계속 들락날락거렸다. 몸에서 계속 뭐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양수가 터진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들어서 산부인과에 전화했더니 증상을 좀 더 지켜보고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 오라고 한다.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일단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난 지켜보다가 어느샌가 그냥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5일 아침 5시 30분경 아내가 나를 깨웠다. 무척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통증이 점점 심해온다고, 한 숨도 못자고 계속 걸어다니고 있었다고... 아내는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거실에서 계속 밤을 새웠던 모양이다. 쩝~ 아내를 위한다면서 특훈한다고 난리를 피더니 정작 중요할 때 잠만 쿨쿨 자다니... 아내가 체크한 통증간격은 이미 10분에서 5분으로 짧아져 있었다. 그동안은 통증이 나도 조금은 견딜만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젠 도저히 안되겠다며 병원엘 가자고 했다. 우리는 준비해둔 출산가방을 들고 차를 몰고 병원엘 갔다.

6시에 병원엘 도착했더니, 기본적인 검진을 마친 후에 바로 입원해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 정말 오늘이구나" 하면서 입원수속을 밟으며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아내가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출산대기실에서 나왔다. 집에 있을 때는 그냥 얼굴을 약간 찡그리면서도 웃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입원복을 입고 난 후의 아내의 얼굴표정은 정말 많이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포도당 링겔을 주사받고 그 링겔걸이를 끌면서 계속 걷기 시작했다. 아내는 점점 걷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더욱 더 고통스러워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절부절하기만 했다. 계속 아내의 표정을 살피면서 "자기야~ 힘들더라도 계속 걸어야지 빨리 나온다구 그러잖어. 자~ 힘내" 하면서 같이 걸어가면서, 출산교실에서 배운대로 아내의 허리쪽을 계속 문질러 주었다. 아내는 출산요가학원에서 배운 호흡법을 계속 해 가면서 고통을 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걸었다 쉬었다 계속 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한 8시 30분 정도 되었을까? 아내가 갑자기 간호사에게 "무통주사 맞을 수 없나요?"라고 나한테 상의도 없이 말을 꺼냈다. 정말 끔찍했었나 보다. 이전에 아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통증이 정말 심해서 무통분만한다구 그러면 자기가 절대 안된다고 말해"

사실, 무통주사를 맞은 후에는 언제 힘을 주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몰라 산모가 더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아내 등 뒤에서 고개를 흔들며 안 된다는 사인을 줬다. 헉... 근데. 그 간호사가 그런 나를 보더니 아내에게 '아빠가 안 된다고 하네요'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끙~~

아내가 그런 나에게 원망하는 눈빛을 보내거나 화를 낼만도 한데... 정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소리를 듣고도 그냥 고통스러워하면서 걷는다. 원장선생님도 무통분만 얘기를 들으셨는지 "원한다면 해주겠는데,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라고 그러신다.

9시 경부터는 걷기를 멈추고 공을 이용해서 아내의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한 20분? 30분을 나는 의자에 앉아 공을 양 다리로 끼고 아내는 그 공위에 걸터 앉아 계속 공위에서 몸을 위아래로 통통거리면서 통증을 줄이는 노력을 했다. 정말 옆에서 아내의 허리만 잡고 아내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단순한 일만 하면서도 나 또한 등에 땀이 나며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간호사가 와서 내진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출산교실에서 배워, 집에서 매일 연습한 대로 복식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누워 있는 침대 머리맡에서 "들이마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내쉬고 하나, 둘, 셋, 넷... " 고통으로 거의 실신직전까지 왔던 아내지만 요가수업을 열심히 받아서인지, 고맙게도 내 말을 잘 따라서 심호흡을 해 주었고 곧 간호사 분께서 힘을 힘껏 주라고 했다. 침대 난간을 꼭 쥐고 아내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하고 난 후 간호사는 "이제 분만실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기가 나올려구 합니다!"

분만실로 옮기고 의사선생님도 들어오신 후, 다시 힘주기가 시작됐다. 아내는 호흡을 해가면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쉬고 입을 꼭 물고 힘을 주고, 나는 옆에서 수를 세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할 때까지 아내는 있는 힘을 다 주었고, 다시 금방 숨을 들이마시고 또 힘을 오랫동안 주고... 간호사는 힘을 줄 때 아내의 배를 인정사정 없이 누르며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 머리가 보입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얼굴이 땀에 젖어 있는 아내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자기야~ 힘내. 아기 머리가 보여" 아내는 다시 온 힘을 주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아예 아내 배위에 팔꿈치를 대고 올라타다시피 배를 눌러댔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주었다. 정말... 이 초인적인 힘에 그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참을 힘을 주고 난 후, 아내의 다리 사이로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 다 됐습니다. 조금만 힘 주세요" 아이의 머리를 보는 순간 울컥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야 다 나왔어. 좀만 힘내"라고 말했던 것 같다.(사실, 그 상황을 제대로 기억해 낼 정도로 이성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니깐 이 부분은 다소의 과장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의 머리가 쏘~옥 하고 나왔다.. 그 이후 아가의 몸통은 산모교실에서 들은대로 쉽게 빠져나왔다.
그 핏덩어리 아이를 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아내의 손을 잡고 울었다.
탯줄을 자르라고 하면서 몇 마디 하라고 했지만, 그동안 할 얘기를 준비해 두라고 해서 열심히 준비했던 멘트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울먹이면서 나왔던 얘기는 "안토니오! 아빠, 엄마가 행복하게 해 줄께" 단지 그 말 뿐이었던 것 같다.

거의 초죽음 상태인 아내는 아이를 보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울면서 웃고 있었다. 아마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줬던 것도 같다. 아내는 그런 안토니오를 보면서 무언가를 말했는데 그게 기억이... 아마 나랑 비슷하게 "안토니오! 고마워~" 그랬던 것 같다.

그 시간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2006년 5월 5일 오전 10시 34분이었다.  

 

2011년 5월 4일 어린이집에서...

 

함께 듣는 음악은 Mary Hopkin의 『Earth Song』(1971) 앨범 중 1번 곡 "Internation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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