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착한 아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까? 그 '착하다'라는 말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말 잘 듣는 아이죠. 착한 아이는 말 잘 듣고 떼를 쓰지 않는 아이입니다.  이 말이 가족 안에서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 권력관계 안에서 잘 순응하고 자기 위치를 잘 아는 아이를 요구하죠. 아이한테 일찍부터 자존심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이한테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지만, 상당수는 포기하려 하지 않고 우리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기 자존심을 그래도 좀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에 대해서는 착하다고 보지 않죠. 어쨌든 그것은 아이로서의 자존심이지요. 물론 아이는 아직까지 경험이 짧고 알아야 할 게 많으니까 아이가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쓴다는 것을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고 또 무조건 들어줄 수 없지만, 아이가 가족이라는 권력관계의 장 안에서 자기 자존심을 만들고 지켜나갈 때 이런 자존심을 세워주고 키워주고 일단 갖도록 놔두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육아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21세기는 지켜야 할 자존심" 중 박노자편에서...  


어제 눈큰이의 대학 친구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벚꽃 구경도 할 겸 오라고 한 여의도였지만 꽃은 다 지고 한강 고수부지를 내려가는 계단 옆에 만들어놓은 작은 분수대에 담긴 물에서는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찌르는 것이 벚꽃이 한창이었을 때 어떤 살벌한 풍경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서둘러 벚나무 거리를 벗어나 눈큰이 친구를 일찌감치 만났다.

친구 : "안토니오 잘 크고 있죠?"
나 : "네! 많이 컸어요"(안토니오 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가져온 사진기를 생각한다)
친구 : "착해?"
눈큰이 : "응!"
친구 : "하긴 엄마 아빠 닮았으면 당연히 그러겠지"
나 : "근데, 요즘들어 말을 잘 안들어요"

어제 위의 책 내용을 읽었다면 좀 더 다르게 생각하고 반성했을 것이다. 정말 세상 천지가 다 호기심 천국인 안토니오에게는 모든 것이 다 만져보고 싶고, 맛보고 싶은 것들 뿐일거다.
지난 토요일 후배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로 안토니오를 데리고 왔다.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과천 동물원에 안토니오를 데리고 가려고 엄마의 화장품 대에서 엄마처럼 화장품들을 이리저리 얼굴에 바르는 시늉을 하면서 놀이를 하고 있던 안토니오에게 동물원에 가면 코끼리도 있고, 사자도 있고, 미끄럼도 탈 수 있다고 꼬득였지만 막무가내 반복되는 화장놀이에 푹 빠져 있던 안토니오는 결국엔 인상을 쓰면서 '시려 시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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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가 커가면서 이런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전에 아기가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했을 때 또는 기어다닐 때는 아기가 움직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동하며 하염없이 아기 하는 냥을 지켜보는 인내심이 있었지만, 이제 안토니오가 제법 잘 걷고 돌아다닐 만 해지니까 부모 욕심이 앞서 시간이 되면 이것저것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앞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전처럼 기다리며 지켜보는 모습은 많이 없어지고 안토니오를 구슬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아기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길어야 한 시간을 못 버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동물원에 가서는 보여줄 동물들이 천지인데 눈큰이보다는 내가 더 안달이 나서 아이를 끌고 다닌 것이 내심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아이가 꼬끼오 울어대는 닭장 앞에서 한참을 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보다 중요한 사자와 호랑이 우리로 올라가기 위해 주빈이를 다그쳤다.

하나하나의 나의 무의식적 행동 속에서 아이는 말을 잘 듣거나 아니면 인상을 쓰고 괴로워하며 나에게 질질 끌려 가는 것 둘 중 하나를 강요받아야 한다.

앞으로는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 '아빠~'하고 무언가 요청할 때만, 그리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 아닌 한 안토니오를 건들지 않는 것이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리라 한 번 더 생각하며 움직여야겠다.

어쩌면 눈큰이에게도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을까?

아휴~ 아빠된다는 거 남편된다는 거 정말 힘든 일이다. ^^;

작년 11월에 아이를 낳은 한 지인이 일찌감치 사 둔 '아빠 리더십'이라는 책을 나에게 먼저 읽어볼 걸 권했는데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컴퓨터 화면 옆 책꽂이칸에 꽂아두었는데 슬금슬금 눈이 간다. 읽을 때가 된 걸까?

함께 듣는 음악은 Stevie Wonder의 "Song Review"(1996) 앨범 중 10번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이다. 벌써 6년 전 얘기인가? 백수 때 입사원서를 수십통을 써서 붙였는데도 면접 한 번 오라는 곳이 없는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멍하니 라디오를 듣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던 곡. 그 때 왜 이 노래가 갑자기 내게 희망을 안겨줬었는지 모르지만 참 고마운 곡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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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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