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다 되어가서 회사 회의가 끝났다. 내가 맡은 일은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대회의실에 혼자 남아 회의 내용을 기록했던 노트북을 끄고 회의실 주변 정리를 하고, 절뚝거리면서 내 자리로 가서 온통 A4용지로 도배를 해 놓은 책상들을 대충 대충 모아서 정리를 했다.

"휴~ "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자리에 있는 데스크 탑 컴퓨터는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서 혼자 잠든지 오래되었는지 너무 조용하다. 그놈의 배꼽을 벨 누르듯 살짝 눌렀더니 잠시 후 퍼뜩 놀란 것 마냥 깨나서는 뻔뻔스럽게 내게 누구냐며 암구호를 대라고 한다.
짧은 암구호를 자판에 입력한다.
잠시 후 다시 컴퓨터 화면은 닫히지 않은 엑셀파일이며, 인터넷 싸이트들을 발 밑에 깔아놓고 나에게 할 일을 다시 각인시킨다.
'오늘은 그만~ 이정도 시달렸으면 좀 봐줘라'

그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안토니오가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빠'
"어~ 그래! 안토니오"
내 목소리 톤이 금새 높아진다.
"안토니오 뭐해?"
수화기 멀리서 할아버지가 안토니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고기를 쟈버러 아다~ 까여 고기를 쟈러 아다 ~여"

잠시 가만히 듣고 있다. 새로 배운 노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주빈이가 멈춘 구절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병에 가득히 넣어가지고서"

그러자 안토니오는 그 순간을 놓지지 않고,
"나나나나나나나나 오야~"

"아! 잘했어요. 우리 안토니오 노래 잘 부르네"

다시 수화기 멀리서 할아버지가 안토니오에게 "'아빠 힘내세요'라고 해"라고 한다.
"아빠~ 히~여"
"그래! 아빠 힘이 불끈불끈 나네?"

"아빠! 이영~"
"그래 안녕! 안토니오도 잘 자!"
"응~ 끈너~"
"그래!"

어느새 지쳤던 내 마음은 사라지고 힘이 불끈 솓는다. 가방을 어깨에 걸고 사무실 불을 끄고 계단을 절뚝절뚝 내려오며 출퇴근기에 카드를 대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다. 약 먹은  기분이 이리도 들뜨고 행복할까?

함께 듣는 음악은 Janis Joplin의 "Greatest hits"(1973)앨범 중 2번 곡인 "Summertime"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