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용한 | 출판사 넥서스 Books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참 심난했었다. 용산참사를 비롯한 국내 정치와 경제적으로 참담한 암담함 때문이기도 했고, 최근에 읽었던 책들 또한 이 세상에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내게 무거운 고민들을 하게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소식들도 자주 전해졌다.
마음이 무거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의 배낭을 짊어지고 이 나라를 잠시 떠나 있고 싶었다. 얼마전 KBS에서 방영했던 차마고도 중 몇 편을 보면서, 특히 오체투지로 라싸를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방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아~ 저런 삶도 정말 있었구나' 하면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을 만들어가며 힘겹게 걷고 있는 것일까 하면서 색다른 공상에 빠져들게 했었다. 다들 차마고도가 굉장한 작품이라고 꼭 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중 몇 편만을 우연히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여행을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왠지 이곳을 여행하면 덧없는 근심을 가라앉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근원과 대면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함께...

# 빠라마을의 아이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여행자가 티베트를 여행하고 있다. 나는 그 여행자 중 한 명일 뿐이다. 티베트에서는 말이 많은 자는 고달프고, 날뛰는 자는 숨이 차다.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티베트는 끊임없이 내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의 언어여서 감당할 수가 없지만, 그로 인해 나는 더욱 경건해져 갔다. ... 애당초 이들은 바깥 세계와 경쟁할 마음조차 없어 보인다. 더더욱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욕심도 없어 보인다. 만일 현대 문명의 혜택과 소비를 누리지 못한다고 불행하거나 비참하다고 말한다면, 이른바 선진국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야 옳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TV와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와 비행기, 전기와 도시가스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발전과 행복은 비례하지도 않으며, 물질적 번영이 복지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발전하지 않은 것이 낙후된 것이라는 논리는 천민자본주의의 자기변명일 뿐이다.


이 책은 이용한이라는 '길짐승'이 윈난부터 시작되어 라싸로 마무리되는 차마고도의 여정을 생생하게 담은 글이다. 글이 여행당시 현지에서 그 때 그 때 씌어진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나 또한 낡은 봉고차를 타고 하루하루 그와 함께 티벳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전에 읽었던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가 현장에서 쓴 글들을 엮어 그만큼 호소력이 있고, 가독력이 뛰어났던 것처럼 이 책의 장점이라면 바로 순간순간의 장면들과 경험들이 직접 찍은 많은 사진과 함께 회상이 아닌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씌어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티벳을 알린답시고, 티벳의 역사일반이며 생활풍습 등을 소개하는 장황한 글들이 없는 것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마음 편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러한 티벳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은 작가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풍경에서 간간히 적절하게 인용되고 설명된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 해발 5,008m 둥다라산을 넘다
비몽사몽간에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또다시 으악, 꺄악, 세상에나, 이럴수가를 연발했다. 이번엔 비명소리가 아니라 감탄사였다. 하늘에 뜬 별을 보고 내지른 소리였다. 하늘이 온통 별로 뒤덮여 눈꼽만큼의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일찍이 한국에서 보아온 별들의 백배 천배는 돼 보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 봤다. 아무리 해발 5,000m급 산밑에서 보는 별이라지만,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이 원래 저렇게 많았단 말인가. 

대학시절 농활을 갔던 곳이 현재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촬영장소였던 경북 봉화였다. 그 때 우리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뒤덮여 있던 한 산골 폐가를 숙소로 삼아 지냈었다. 난 그 곳에서 반짝이던 별을 잊지 못하겠다. 어디를 가 본들 그렇게 많은 별밭을 본 적이 없었다. 간혹 별똥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이 글 속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더불어 이 감동이 어떤 것인지 나의 옛 추억과 연결하여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이 책여행에 깊이 빠져들었던 건 아니었을까도 싶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티벳을 한 국가로 알기보다는 중국 안에 있는 한 지역의 이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맙소사~) 이 책을 통해 나는 티벳이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근래에 들어서면서 중국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식민지 국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티벳은 아직까지도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항해 오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이미 티벳 요지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의 이주정책으로 상당 수 상권을 한인이 장악하고 있는, 그래서 오래 앓고 있는 국가이다. (부끄럽지만, 이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조차 나에게는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서 티벳의 실제 토박이들은 상당한 생활고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6년 전쯤에 접했었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떠올렸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어쩌면 그 때 책에서 접했던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라다크는 인도 북부 마을이었지만 티벳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 대학 동기들끼리 운영했던 카페에 이 책을 추천하면서 쓴 글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부랴부랴 찾았는데, 다행히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마음여행을 떠나기 수월하게 만들었던 책이었기에 다시 그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 『하늘에서 ...』도 사정은 라다크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과)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최후의 자연 그대로의, 그래서 전통적 삶의 방식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이곳 티벳에서 중국정부의 관광상품화와 맞물려 급속하게 변해가는 실상들은 여전히 안타깝다. 물론, 이것은 외지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본주의화되고 고도로 편리해진 삶으로 인해 경쟁과 이기적 욕구가 지배하는 것에 지쳐 있는 입장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일 수 있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개발되어지고 변질되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과 똑같다. 왜냐면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순환과 이치를 몸과 정신속에 그대로 반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 조공에서의 고산증
라싸나 시가체에 들어선 숙박과 관광업소는 예외 없이 한족의 차지가 된다. ... 사실상 자급자족으로 평생을 살아온 유목민에게 돈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시내에 나가 덩어리 차를 몇 덩이 사고, 굶지 않을 정도의 짬파를 살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관광객들로 인해 그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조금씩 해체되고 있다. 그들은 관광객이 가져온 선글라스가 강렬한 햇빛을 차단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위스제 다용도 칼이 그들의 많은 도구와 손을 대신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진기만 있으면 가족의 모습을 담을 수도 있고, 차가 있으면 좀 더 빨리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돈이 있어야만 살 수가 있는 것들이고, 그들이 가진 야크를 내다 팔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전에는 누구도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으나, 이제 그들은 그것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난'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광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자연과 문화와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정적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이것은 또 다른 침략이고, 티베트를 여행하는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침략자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은 지 얼마돼지 않아, 이 책을 추천해 준 한 직장 상사는 9일간의 티벳 여행을 떠났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윈난을 출발점으로 해서 라싸까지 차를 이용해 이동할 계획이라는 정도만 듣고도 나 또한 가슴이 설레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9일이 흘렀고, 그 상사는 새까맣던 얼굴이 더 새까맣게 되어 돌아왔다. 이번의 여행은 기존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여행코스를 취하지 않고, 여행에 소요되는 경비가 현지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공정 여행'의 실험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여행에 함께 한 몇 몇  여행자는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티벳 민중들을 보면서 몹시 괴로와 했다고 한다.

# 프롤로그-티베트, 기표의 고원
가장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가장 아픈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가장 희박하게 웃음 지을 때,
내 눈 속엔 정처 없는 길과 바람만이 자꾸만 그렁거렸다.
비참하다고 누군가는 혀를 찬다.
하지만 유목민도 순례자도 당신이 생각하는 비참함 속에서 너무나 태연하게,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다.
사실 나는 그것 때문에 괴로웠다.

아마도 이 작가도 위의 여행객들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듯 했다. KBS 차마고도 중 몇 편을 접했을 때도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지켜보는 이는 그러할 진데... 어쩌면 우리가 오래전부터 단념하고는 늘 마음 한구석에 담아놓고 그리워 해온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송에서 방영된 차마고도 또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 신문을 보고 알았지만, 어제(3월 10일)가 티벳 민중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무장봉기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티벳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강압통치를 강력하게 비난했고, 우리나라 서울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티벳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아까도 위에서 얘기했지만 난 티벳에 대해서 무지했고, 달라이 라마 또한 신문기사의 수식어로 자주 등장하는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달라이 라마와 티벳의 독립투쟁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가 있었던 것은 내가 티벳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 황금사원, 타시룬포
판첸 라마는 '위대한 학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이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어) 다음으로 영적인 권위를 지닌 종교 지도자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거나 환생한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판첸라마의 역할이다. ... 지금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바다처럼 넓고 깊은 지혜'를 상징하는 이름)는 두 살 때인 1933년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인정받아 1940년 '현명함의 바다이자 무한한 측은지심의 화신'인 달라이 라마에 즉위했다. 1950년부터 중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그는 전 세계를 떠돌며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이제 그는 다음 환생자를 찾아야 할 날이 가까운 고령(71)의 나이가 되었다.

그 동안 책을 읽고 쓰는 것을 미뤄온 탓에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느낌을 되살려 쓰는게 몹시 어렵게 느껴졌다. 이 책은 이러한 글들 외에도 매 페이지마다 큼지막한 티벳의 풍경과 사람들의 사진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당시 이 책과 함께 떠났던 마음 여행은 실제로 내가 아무 정보 없이 티벳땅을 밟았을 때의 느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게하고 느끼게 했다. 신혼여행으로 6박 7일간 서유럽 국가들을 돌아보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꼇던 그런 정제되고 동화되는 느낌을 얻지는 못했다. 적어도 이 책이 씌어지기까지 작가는 이 티벳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 무던히 공부를 했을테고, 그 바탕 위에 카메라를 들고 그 풍경을 담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정말 보기 드문 훌륭한 여행문이다. 역사와 풍경과 사람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그곳의 아우라를 글과 사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텐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추천할만하다.
특히, 어떤 이유로간에 떠나고 싶어지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그럴 용기가 없든, 시간과 돈이 없든지간에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권할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그곳이 티벳이라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여행이 무척 인상깊고,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루하루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의 정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티벳은 어쩌면 영원한 우리 영혼의 근원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꼭 가봐야 할, 그리고 깨달아야 할...

함께 듣는 음악은 Patricia Salas의 『Puerto Montt』앨범(2003) 중 2번 곡 "Maria Va"(마리아는 떠나고)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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