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El Maestro de Esgrima,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은이), 김수진 (옮긴이) | 열린책들(2004)

때는 1868년, 그러니까 스페인의 브르봉 왕가가 혁명으로 무너진 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한 60세 고령의 검술교사는 자신의 검술을 귀족과 그 자제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면서 연명하면서도, 하루하루 '지조있게' 살고 있었다. 그는 이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전통적 검술만을 고집하는 스페인판 '독짓는 늙은이'였다. 
 
"권총은 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뻔뻔한 도구일 뿐이지요. 만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합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마치 골목길에서 툭 튀어나온 불량배가 하듯이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칼에는 다른 무기에도 없는 칼만의 윤리가 존재합니다. .......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 글쎄, <신비>라고 해야 할까요...... 검술은 기사들의 신비 철학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 더 그럴겁니다."

그런 그는 사람들이 모두 혁명과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합니다. ......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의 고독은 일종의 열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다니지 않는 잊혀진 옛 거리를 지키고 서 있으면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하고 친근한 이기주의일 수도 있고요."

그가 인생 말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전통적 검술처럼, 자신의 삶도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명예롭게 마무리 짓는 것 뿐이었다. 그는 검과 자신의 영혼을 일치시키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은근히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지요. 더욱이 다른 대안이 없을 때는 말입니다. 만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지불합니다. 그건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이니까요. 일정한 순간이 다가오면 삶은 나름대로의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설사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도 말입니다. 즉 이렇게 갈 것인지 저렇게 갈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만일 배가 타버리고 없다면,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풍랑에 맞서야 할 겁니다."
"설사 그것이 잘못된 방법이라 하더라도 말입니까?"
"그럴수록 더욱더 강하게 맞닥뜨려야지요. 그래야만 미학이 파고들 여지가 생기거든요."
......
"조금 전에 후작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기쁨이란 외적 환경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특정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지조 속에서도 발견되지요. 설사 그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을 둘러싸고 무너져 내린다 해도 말입니다"
...
"신의 존재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신가 봅니다"
"별 관심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극한까지 견디시는 분이시지요. 그건 무책임하고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신사답다고 할 수가 없지요."

이런 그에게 어느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 하나 죽어간다. 살인사건과 함께 검객노인은 자신이 의도치 않게 이 폭풍전야 같은 시대의 한가운데에 빨려들어가게 되는데...

#
수동식 기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속력을 내기 위해서는 기어를 1단, 2단, 3단, 4단, 5단 순으로 올려나가야 한다. 이 책 '검의 대가'는 이 주행 원칙을 고스란이 따르고 있다. 주인공 하이메 아스트롤로아의 성격과 행동패턴,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시대적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1단) 그리고 그앞에 매력적인 한 여인이 나타나 그동안 수도자 비슷하게 검과 혼연일체로 살아온 그 노인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2단) 그렇게 불만 지펴놓고 그녀는 떠나버린다. 괴로운 나날이다.(3단) 그러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살해당한 자와 너무나도 가까운 사이였고, 더 놀라운 것은 살인 방식이... (4단),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듯이 살인사건 속에 들어가게 되고, 또 살인, 또 살인... 그는 결국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살인자들과의 최후의 일전을 조용히 준비해 가게 되는데 ....(5단)
 
굉장히 단순한 플롯이라 생각이 들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속도만큼이나 글 속에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4단 부터는 글 천천히 읽는 걸 인정한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게 되고 다음 페이지가, 그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져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할 정도까지 되었다. 한마디로 '정말 재밌다'

#
책을 읽으실 분이 계시다면, 여기서 힌트 하나, 책 끄트머리 옮긴이의 말 바로 앞에 검술용어를 적어 놓은 부분을 먼저 찾아볼 것을 권한다. 어려운 펜싱 용어가 나왔지만 그 뜻도 모르면서 머리속으로 소설 이미지를 그려가자니 조금은 힘들었는데, 이런 해설 부분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급변하는 1868년 스페인의 거리에 들어와 있는 것마냥 서술된 당시 거리며 사람들의 의복 묘사, 그리고 그 당시 충분히 나왔을 법한 혁명을 앞둔 사람들의 논쟁들까지... 하나하나 작가의 세심한 묘사또한 이 소설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매력 중 하나였다. 

함께 듣는 음악은 스페인 레이블인 "Siesta"에서 만든 크리스마스 콜렉션 "Fantasia De Navidad"(2002)의 3번 곡 "Christmas tears"라는 곡이다. 'Bathing Beauty'가 불렀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