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가 언젠가 이 글을 볼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5월이 가기전에 아빠가 네 생일 축하 글도 하나 못쓰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미안해 이렇게 네 생일이 훨씬 지난 오늘에서야 급하게 이 글을 쓰고 있어.
우선,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안토니오 네가 우리 가족에게 준 행복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니. 엄마, 아빠는 너가 우리의 품 안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란다.

너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도 못마땅할 판에,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엄마 아빠는 매일 너와 함께 지낼 수 없는 처지란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핑계라지만 너뿐만 아니라,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을 가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그동안 너를 이만큼이나 멋지게 자라게 해 준 것,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의 더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란다.
그렇기에, 너의 생일인데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로 먼저 가는 아빠, 엄마를 이해해 다오.

5월 5일 생일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너를 하루하루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준 지 벌써 일년이 훌쩍 지났어. 그동안 너는 마음에 그늘 한 점 없이 명랑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왔어. 그런 안토니오에게 엄마 아빠가 준 거라고는 매 주마다 잠깐동안의 만남 후에 이별을 경험하게 한 것. 매일 주말에 너와 이별하고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의 시간이 엄마, 아빠에게는 매번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시간이란다. 옛 분들은 태어나서 3년동안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그중 1년이 넘는 동안에 이 부끄러운 엄마, 아빠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쩌면 아빠 엄마보다 더 큰 사랑을 매일매일 듬뿍 듬뿍 주고 있으니 이 아빠의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구나. 꼭 기억하고 꼭 감사하렴. 할아버지, 할머니의 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끝이 없이 넓은 지를.....

안토니오 너의 생일이 양력으로는 5월 5일이고, 음력으로는 부처님오신날이라서 양력 5월 5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음력인 부처님 오신날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단다. 멀리 떨어져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도 너를 자주 만날 수 있게 해 드려야되는데 아빠, 엄마가 그러지 못해서 늘 마음이 아픈데 이번 음력 생일 때는 당신들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2박 3일 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어. 일 주일에 한 번 너를 보는 우리의 마음도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차는데, 몇 달 만에 가끔 볼 수 밖에 없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 지를 생각하면 이 아빠의 가슴이 답답해져 온단다.

그 동안 특별히 아프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고, 방긋방긋 잘 웃어주는 안토니오 너가 얼마나 멋진 녀석인지 너는 아직 잘 모를꺼야. 나중에야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지만, 이 아빠는 사실 너가 이 막막한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숲을 헤치며 자연을 벗삼아서 커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단다. 이젠 얼마 안 있으면 너를 서울로 데려와야 하지만 매일매일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기대 한편으로는 이 도시속에서 너를 키워야 한다는 것에 막연히 답답함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아빠나 엄마 모두 어린 시절을 푸른 숲 또는 푸른 바다를 벗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있는 서울 도시가 너가 자랄 공간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너를 빨리 데려와야 하는 게 현실이라는 게 마음이 아프단다.

잠시 산책을 같이 하면서도 지나가는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 달라고 조르는 너의 그 자연으로 향하는 시선들을 이 곳 서울에서는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 지, 하루 하루 푸른 잔디에서 맘 편히 달리던 너에게, 하늘의 하얀 구름을 보면서 신나하는, 훤하게 뜬 달을 보면서 '달님! 안녕~' 하는 너에게,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뒤덮인 매연으로 뿌옇게 뒤덮여 별 하나조차 구경할 수 없는 이곳 서울을 너의 삶터로 인정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단다.

이런, 너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글을 쓰려 했는데, 너에게 아빠가 자신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아 미안하네? 비록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당분간 함께 살겠지만 엄마, 아빠도 최선을 다 하면서 안토니오 너와 하루 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할께. ^^

얼마 전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있어서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귀가하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었어. 근데 학급 관련 일을 마친 엄마들이 와서 아빠와 이야기한 아이들에게 막 야단을 치는거야. "너! 모르는 사람이랑 엄마가 얘기하라구 했어 안했어"하면서 아이를 혼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어쩔 줄 몰라한 적이 있단다. 너무나 삭막한, 사람냄새가 점점 휘발되어 가 버리는 이곳에서 너가 둥글게 커 나갈 수 있도록 아빠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할께. 물론, 아빠 엄마 단 둘이서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너에게 그런 험악한 세상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마. ^^;

일주일에 한 번씩 볼 때마다 일주일 전과는 또 다르게 훌쩍 큰 안토니오를 보게 돼. 너에 대한 그리움과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이 마음들을 잊지 않고 아빠 엄마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께.  

정말 예쁘게, 건강하게, 티없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안토니오! 사랑해! 그리고 어머니, 아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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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듣는 음악은 Francoise Hardy의 "Clair-Obscur"(2000)앨범 중 7번 곡 "I'll be seeing you"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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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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