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종일 / 출판사 생각의 나무 (2008)

대학 동기들과 가끔 만나서 술잔을 돌리다 보면 종국에는 이야기가 주식, 부동산 등 경제적인 이야기로 모아지곤 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일정정도 순에서 알아듣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 척을 하게 되죠. 그만큼 경제와 관련된 내용은 나와 동떨어진 내용이었습니다. 

'야! 펀드 그거 어떻게 해야 돼?'
'부동산은 어찌 될 것 같냐?' 
주변에 경제계 쪽에서 일하는 동기녀석들을 매번 만날 때마다 자주 묻는 질문들입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묻는 내가 한심스러웠는지, 지난 연말 모임에서  한 동기녀석은
'경제는 공기와 같은 거야. 네가 공부를 안하니깐 그게 문제지'라고 혼을 내기도 했죠.
'좋아! 나도 이제 경제 공부좀 할테니 책 좀 추천해줘' 
얼마 후  동기녀석은 내 메일로 정성스레 추천 사유까지 적은 책 목록을 보내주었습니다.

『부자 경제학』 /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2』 (박경철)
- 경제전반에 대한 내용과 주식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어.
『금융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들러)
- 금융버블에 대한 역사적인 기술이 괜찮아. 비슷한 류로 "투자의 유혹"과 "전염성탐욕"있는데, 이 둘다 괜찮지.
『미래의 투자』 (마이클모바신)
- 투자지침서로 재미있게 읽을만해.
『이웃집백만장자』/『백만장자마인드』 (토머스 j 스탠리)
- 백만장자에 대한 이야기. 두권겹치는 내용이 좀 많아. 한권만 읽어봐도 되지싶어
『어느 투자자의 회상』/『주식매매하는법』 (제시 리버모어)
- 책 제목이 정확히 맞나 몰것네. 제1세대 주식시장의 워런 버핏이라고 보면될듯해.
『코스톨라니 투자총서』 (앙드레 코스톨라니)
- 유럽권의 워런버핏. 3권이지만 주식시장 관련 필독서에 가까워. 워런버핏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있으니 아무거나 읽어봐도 무관할듯 해.
『거래의 신 혼마』 (거래의 신 혼마)
- 아시아권의 워런버핏도 하나 읽어볼만 하지. 주식에 가까워지는 길은 주식시장전반에 대한 공부가 먼저이겠지만 더불어 주식시장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어봄 역시 중요하지싶어 추천한다.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선대인.심영철)
- 최근에 나온책으로 읽을만해. 부동산전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market wizards』 (jack.d.schwager)
- 영어로 된 짧은 책야. 현존하는 고수들의 금융매매원칙및 기법을 인터뷰식으로 정리한 책이지.
『차트의 기술 (김정환)』 , 『최강차트분석기법』 (이동웅) 
- 이2권은 기술적 분석책. 필요없겠지만 혹시 나중에 관심이 생기면 함 읽어볼만해.

그리고 마지막에는 경제신문을 읽어볼 것을 권했죠.
메일을 열어 책목록을 받는 순간 압도당했습니다. 전혀 저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서적들이 추천서적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박경철이나 워런 버핏의 경우는 언론을 통해서, 또는 일부 다른 인용문들을 통해서 많이 접한 정도로만 제게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이 메일을 보내 준 지 벌써 두달이 지났건만 아직 한 권도 구입해서 읽지 못했습니다. 정성들여 책 목록을 보내 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죠.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대학시절 경제를 알아야 세계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수강한 경제학 원론 수업이 내게 얼마나 재미가 없었는지, 그리고 나온 학점은 얼마나 참담했는지... 그 이후로 나는 찾아서 경제 관련 서적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위드블로그에서 바로 이 『위기의 경제』책이 이벤트 도서로 올라와 있어 신청을 했습니다.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은 아니지만, 지난 해 다리를 다쳐 어쩔 수 없이 차로 회사를 출퇴근할 때 회사 근처에 올 즈음해서 MBC 라디오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면서 그날 그날 공감가는 인사 멘트를 날리던 유종일 교수가 쓴 책이라서 일단 마음이 끌렸습니다.
책 리뷰 블로거에 당선되고 배달되기까지 꽤 두꺼운 책일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읽고 있던 책마저 중단하고 열심히 읽어야지 하며 마음잡고 있었는데, 막상 배달된 책은 150페이지 안팎으로 된 얇팍한 책이었습니다. 처음에 소포 봉투를 받고는 잘못 배달된 게 아닌 지 의심까지 했었죠. 

책의 구성은 간단합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비롯된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문제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죠.
그러나, 경제에 대해 조금 공부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접한 책 서문은 전혀 색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경제 또한 정책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이고, 따라서 정치의 역할이 보다 크다는 것이 유종일교수의 주장이었습니다.

# 서문 -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문제는 신뢰가 증발해버린 상황에서 각자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금융경색 완화도, 질서정연한 구조조정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평하게 손실과 고통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손실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 이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이다. 각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그래, 이게 우리가 다함께 살아나는 길이지"하고 질서정연한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이런 면에서 최악이다.
......
군사독재를 타도했다고, 선거로 정권교체를 몇 번 했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님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사실, 요즘처럼 경제가 우리의 일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시절이 없는 것 같습니다. IMF시절 나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경제상황과는 전혀 동떨어진 학문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그 때 경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어려웠는지 느끼지 못했었죠. 기껏해야, 취업을 준비하는 동기들이 많이 힘들어하던, 그래서 꿈을 포기하고 어떤 회사든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모습들만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제 지갑에서 카드를, 돈을 꺼낼 때마다 머뭇거리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세가를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로 다시 전세집을 찾아야 했던 근래에는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얼어 붙어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구요. 또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몇몇 적립식 펀드에 넣어두었던 돈이 반토막이 나는 상황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전혀 경제에 대해 무감각하고 그냥 쓰고 남는 돈을 은행에 예치하는 정도로 평범하게 살고 있던 저에게도 일상 곳곳에서 의도치 않게 자주 맞닥트리는 문제가 되어 버렸죠. 
그뿐일까요? 최근의 언론 보도를 통해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으로 비롯된 뉴타운 개발의 문제, 젊은이들이 취직을 못해 절망하고 있는 소식들, SOC를 가장한 대운하 문제, 그리고 가깝게는 증권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힘겨워하는 모습들 등 안타까운 소식들이 끊임없이 전해져 오는 요즘입니다. 
2007년 자료이긴 하지만 통계청에서 밝힌 자살율만 하더라도 하루에 약 33명 꼴로 자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당당히 1위라고 합니다. 이 모든게 경제와 무관하지 않고, 유종일 교수는 이러한 경제가 바로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 : 무분별한 경기부양과 도덕적 해이
버블이 꺼졌다고 그 자체가 곧바로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해당 자산의 값어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진 것뿐이다. 단지 이 과정에서 막차를 탄 투자자들이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되고,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이들 투자자들 중에 금융기관이 있거나 투자자금이 금융기관에서 조달되었을 경우 그만큼 금융기관이 손실을 입게 되고 그에 따라 금융위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재무구조 악화는 금융경색과 금융시장 전반의 패닉을 낳고,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짐으로써 실물경제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
저금리와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은 부동산 거품을 낳았고, 집값이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대출회수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 금융기관들이 더욱 마구잡이 대출에 나서서 버블을 키웠다.
.......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자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때처럼 점차 더 많은 담보대출을 받아 이전의 대출을 갚아나가던 행태가 불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소득이 부족한 신용취약계층부터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지자 집을 포기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서브프라임 사태란 이로써 주택담보대출을 한 기관들과 그러한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자산유동화 증권, 그리고 이를 더욱 복잡하게 엮어낸 파생상품들에 투자했던 금융기관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된 사태를 말한다.

물론,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우리도 언론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미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유종일 교수의 글을 보면서 어쩌면 이리도 한국의 현 상황과 똑 같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정부는 단기성 외채의 증가원인이 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일부 해외 펀드 투자와 조선 관련 수주에 따른 환헤지 때문이라 순수하게는 채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유종일 교수가 딱히 그 문제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판단하기로는 우리나라 또한 이 부동산 거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끝없이 오르는 부동산 거품에 은행들은 외채까지 들여와서 가계 대출을 거의 무한정 해 주었죠. 가계 부채 증가는 말할 것도 없이, 은행들의 자기자본 또한 부글부글 거품을 일게 하기 위하여 돈을 쏟아붇느라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시발점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은 언젠가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은 위 책을 추천해준 친구 또한 작년 여름부터 예견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유종일 교수도 부동산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 원인들 중 아주 일부로 취급하는 정도입니다.

금융기관들이 규제와 감독의 완화를 위해 로비를 하고, 정부가 이를 들어주고 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논리는 금융기관들이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스스로 알아서 위험관리를 잘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가장 선진적이라는 월가의 유수한 금융기관들이 이제 와서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모한 위험을 떠안는 일이 벌어졌을까? ... 이러한 위험통제 수단을 오히려 위험을 엄청나게 증폭하는 기제로 만들어버린 것은 한마디로 탐욕이다. 탐욕 때문에 투기가 극성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사실 많이 아쉬웠습니다. 바로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을 '탐욕' 때문이었다고 정확히 진단하고는 우리나라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탐욕'의 주 현상인 부동산 문제를 무게 있게 다루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어쩐지 유종일 교수가 이야기하는 대안으로서의 '경제 민주화'가 너무 붕 떠있는 대안처럼 여겨졌더랬습니다.   
물론, 유종일 교수가 이야기하는 경제의 스펙트럼은 훨씬 큽니다. 문제는 신자유의주의 경제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그 결과 오늘의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았다는... 실상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지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그걸 깨닫고 좀 더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우리 정부도 할 필요가 절박하다는 데 있겠죠. 그러나...

# 미국금융위기의 파장과 영향
이미 시장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 등을 과격하게 추진한 결과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시장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퇴조의 길을 걷고 있었다.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 개혁에 열심이던 남미 각국이 거의 예외 없이 좌파정부를 선출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만능주의의 관에 못을 박는 격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제외한다면 지금 금융규제를 강화하자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은 급격한 시장자유화와 규제완화, 민영화를 이명박 정권은 그 누구보다 맹신하면서 추종하고 있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 오랜 고질병처럼 여겨지고,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는 양극화라는 문제가 향후 우리 사회를 휘청거리게 만들게 될 거라는 점이 유종일 교수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 미국금융위기와 한국의 경제위기 
한국경제의 양극화구조다. ...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어 이제는 산업 간-기업 간 양극화, 일자리 양극화, 소득 양극화 등 경제가 성장해도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이러한 양극화구조의 핵심에는 재벌중심경제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재벌대기업들에게로 경제력 집중은 날로 심화되는데, 이들이 고용은 절대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 대기업의 정규직 고용이 축소되면서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가 확대되고, 그 결과 이들의 상대적 소득이나 지위는 점점 열악해짐으로써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양극화의 심화는 결국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계층의 소득비중을 줄이게 되고 결국 내수부진을 초래하고 있는 꼴이 되는 것이죠. 이 때 가진자들이 자신들의 고소득 중 일정부분을 풀어야 할텐데... 과연 이명박 정권과 가진자들이 그럴 생각이 있을까요? 기득권이 편에 선 헌재가 종부세를 사망선고시키기 전부터 땅부자들은 세무서를 찾아가 내 돈 내놓으라면 발악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가진자들의 편에 선 정권은 해외의 부채에 더 의존해 가게 되고 우리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 거죠.
일전에도 블로그에 글을 올렸었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참 착잡한 마음에 직장 동료들과 술 한 잔 할 때가 있었는데요. 한 후배직원이 그래도 이명박이 경제성장을 이루면 그만큼 좋아지지 않겠느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 성장이 재벌위주의 성장이어서는 곤란한데, 지금 공약을 보면 대기업들 중심으로 성장시키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취업자가 생기고 자연스레 재분배도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그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를 표한 적이 있었어요.
유종일 교수는 경제의 3대 목표로 성장, 분배, 안정을 꼽고 있다. 그리고 현 우리 경제의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와 안정에서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또한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생각과 맥이 닿아 있었죠.

# 한국경제의 반성 
경제의 3대 목표는 성장, 분배, 안정이다. 성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배와 안정도 중요한 것이다. 성장을 위해서 분배나 안정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는 결코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사실 행복의 경제적 조건에 대한 연구들은 행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고, 다음으로 분배가 중요하며, 성장(소득증가)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좀 전에 부동산 문제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는데, 유교수는 외환보유고 4위를 기록하고 있던 우리 나라가 위험에 빠진 이유가 2006년 이후 벌어진 단기외채의 급증 때문이고, 이는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외화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수출 또한 마찬가지로 안좋아지면서 돈줄이 말라가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심각한 상황에서 이자율만 올라가니 내수 자체도 막혀 버렸다는 거죠.
하지만 유교수는 한국경제가 그리 심각한 수준, 그러니깐 국가부도 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외환보유고가 아직은 많이 쌓여 있고, 유가 하락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수입도 줄어들어 경상수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근데, 다른 한 편으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경상수지가 악화되며, 수출은 더더욱 어려워진다고 하니 동일한 현상의 이면으로 낙관과 위기를 동시에 말하니 좀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어쨋든, 글을 읽다보면 현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는 참 난처한 상황에 봉착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소기업을 살리고자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도 은행은 현저히 낮아진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자 돈을 꽁쳐두게 되니 답이 안나오고, 급격하게 부동산 거품과 엄청나게 방만해져 버린 건설사가 일거에 망하는 것을 우려하여 건설사 지원을 하면서도, 나방떼처럼 달겨들어 돈을 갈쿠리로 퍼담았던 건설사들의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하겠다고 하면서도 대운하를 들먹이며 부동산 개발과 거품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답이 안나오고, 오히려 양극화의 폐단을 막기위해서라도 누진세를 좀 더 과감하게 실행해야 하지만 무슨 억하심정인지 과감하게 감세정책을 펼치니 답이 안나오는 것이 현 이명박 정권의 현실입니다.

#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대응
경기부양책의 가장 큰 부분이 감세라는 것은 문제다. ... 경기는 나빠지는데 법인세 깎아준다고 기업들이 투자를 더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우며, 소비자들도 채무상환이 우선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의 감세안은 소득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등 인하의 혜택이 대부분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에 돌아가는 것이어서 경기부양 효과는 더더욱 작을 것이다. 이러한 감세정책은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고통분담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을 유교수는 과거 박정희식의 밀어붙이기 관치모델(관치-재벌-토건)과, 80년대 레이건과 날아드는 운동화로 마감한 부시가 추진했던 공급 중심의 성장모델이 결합되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MB물가지수를 잘 관리해서 놀라운 가격상승을 이끈 대표적 관치의 실패사례가 있고,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은 오히려 고용을 악화시키고 미래의 성장동력인 중소기업들을 압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며, 나아가 수년동안 엄청난 매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용인원이 줄어들었던 대기업 관련 일자리 통계를 인용해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양극화입니다.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다.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 학군들은 줄고 있으며, 부근의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폴 크루그먼 -


이러한 참담한 상황속에서 과연 우리는 민주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유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최장집 교수의 글을 인용해 정치적 민주화 또한 정치적 엘리트들간의 네트워크 내에서의 나눠먹기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는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한국은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경제민주화의 길
경제 민주화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을 확장하는 과정을 일컫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 크게 보아 경제적 평등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기회의 평등, 소득분배의 평등, 의사결정 참여의 평등, 그리고 소유의 평등이다.

유종일 교수가 말하는 경제 민주화라는 것은 바로 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훨씬 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과 분배를 가져오게 하는 복지·실업대책에 예산을 늘리는 일련의 작업들이 그 핵심입니다. 이는 일전에 유시민씨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낸 책 『대한민국 개조론』에서도 줄기차게 강조되었던 내용이기도 했었죠.(그나마 내가 최근 몇 년 내에 읽었던 경제관련 얘기가 언급된 책이 이 책 뿐이라서요.^^) 유교수의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유시민씨는 향후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세, 그리고 세계적으로 복지 분야 시장의 확대 등을 염두해서 지난 노무현 정부가 수립한 '2030 비전'에 이 복지 분야의 시장 확대가 주된 국가중심의 개척 분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저는 그 자료를 자세하게 보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네요. 어쨋든, 아래의 표만 보더라도 현 이명박이 추진하는 토목 건설을 통한 경제적 효과와 비교해서도 훨씬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유교수는 다른 복지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이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누진과세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죠. 미국의 오바마가 추진하려는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 인프라 구축이 주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취임사에서도 부를 독식하는 월가를 향해서 경고의 메세지를 담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대들도 이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라고 말이죠. 

만약 힘 있는 자에 의해서 재산권과 인권이 손쉽게 침해당할 수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힘 있는 자에 의해서 경쟁이 제한되거나 불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효율적인 자에게 자원이 배분된다는 시장의 효율성은 왜곡되고 만다.

용산 참사가 있고 난 후에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일 때 추진했던 뉴타운 사업과 현재 추진하는 대운하를 통해 전 국토를 부동산 열풍의 도가니로 만들고자 하는 눈에 뻔히 보이는 정책들과 의지 속에서, 신음하고 생을 저주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루어진 부동산 열풍과 묻지마 주식투자 등은 이미 우리 사회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이유'를 앗아갔으며, 그들 또한 눈멀게 만들었습니다. 그 모든 고통의 짐은 최하층위 사람들에게 가중되었고, 이제 점점 그들로 하여금 생을 포기해야 할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견하는 올 봄의 사태는 또한 어떻습니까?  
이명박 정권 이전에 그래도 2007년 노무현 정권의 경우 복지지출은 그나마 약 7퍼센트로 증가하였는데, 그 때에도 OECD 평균의 약 3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토목공사 비용 마련을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댄 분야가 복지지출 감소였습니다. 심지어는 생존을 위한 최저비용이 너무 높다고 낮추기까지 했으니 참...  

#한국의 경제발전과 경제민주화의 좌절
재벌총수들의 대형 경제범죄에 대해 법원은 거듭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정부는 신속하게 사면조치를 취하고 있다. ... 대기업 등 경제적 강자에 의한 시장교란 행위나 경제적 약자의 권리침해 행위가 일관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있다. ... 재벌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는 다양하게 이루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납품업체에 대한 횡포다. 최근 대기업들이 국제 원자재의 가격상승과 환율인상에 따른 원가상승 부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 주지 않아 중소기업들의 경영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고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신분이 고착화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들은 노동시장에서의 기회 평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지분야와 교육분야의 투자와 인력양성이 주가되는 경제민주화의 3대 과제로서 유교수는 공정한 시장 확립과 국가의 장기적 관점에서의 역할(인적자원개발, 평생교육체제 확립 등), 경제 거버넌스(governance)로 명칭되어지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의의 네트워크 마련을 통한 효과적인 자원배분, 그리고 적절한 속도와 범위를 갖는 전략적 개방을 꼽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책들을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주장했던 내용을 단지 재정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는 어떤 뾰족한 대안을 찾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최근 경제위기에 따라 많은 언론에서 경제 관련 진단기사들을 그 어느때보다 많이 내보냈고, 그런 기사들을 일정정도 서당개처럼 곁눈질로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총 3장 중 미국의 경제위기와 한국의 경제위기를 다룬 2장의 내용은 별도로 다루기 보다는 하나로 연결시켜 보다 더 말끔히 다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두 장에서는 서로 중복되어 이야기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책을 의도적으로 얇게 만들고, 가독성을 높이고자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처럼 좀 경제지식이 얕은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각종 인용된 도표들중 상당수가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채 영어 그대로 싣고 있고, 알트에이(Alt-A) 시장, 프라임 시장, 기업여신, PF 부실,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제도, 외화가변예치제 등과 같이 조금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무 각주 설명 없이 기술되어 있어 가독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던 것은 편집에 있어서 조금 더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목차를 보면서 혹시 '너무 거시적이어서, 그래서 너무 와닿지 않는' 그런 대안을 담은 책이면 어쩌지? 하는 우려를 표했었는데, 사실 그 우려가 그리 크게 빗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긴 호흡으로 우리 경제를 대하고 그로부터 각론적인 정책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장기적 비전과 철학이겠죠. 그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경제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 조차도 지금 이명박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책들이 일정정도 정리되어 이해되었고, 그렇게 이해되고 나니 향후 이러한 정책들로 인해 우리 경제, 우리 사회가 입게 될 피해가 어떨 지 참 더없이 걱정이 된다는 점이었어요. 더군다나 지금 세계 경제는 혹독한 어려움을 기회로 다시 새롭게 판을 짜고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가 개입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마당에 과거 실패한 경제정책들만 골라서 펼치고 있으니...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유교수의 글 곳곳에서 한 숨 소리가 가득 묻어나는 것도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막연한 비판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제대로된 경제적 비전과 철학을 위해서도 좀 더 경제와 관련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구요.
친구야~ 열심히 공부해서 보다 건설적인 토론이 다음 술자리에서는 이뤄지도록 노력할께. ^^

함께 듣는 음악은 Tom Waits의 『SwordFishTrombones』(1983) 앨범 중 1번 곡 "Underground"입니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