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장 지글러| 역자 양영란 | 출판사 갈라파고스 (2008)


#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며칠 사이 내 영혼은 너무 지쳤다. 작가의 후기까지 더 이상 읽지 않으려 했다.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을까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도무지 '희망'이란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몰라 이 책을 읽는 며칠동안 깊은 새벽에조차 잠조차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세계가 이렇게 추악한 자본에 의해 신음하고 있는 것을 그냥 추상적으로 느끼고 있을 때와는 내 감정이, 내 분노가 전혀 달랐다. 
이 책에 나와있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충격적으로 접하고 난 후에 내게 찾아온 것은 절망이었다.
아프게, 아프게 '나는 왜 이러한 세상일에 이리도 둔감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라는 자책이 일다가도, 이 세상은 내가 그리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떨려왔다. '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걸까?' 
 
많은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파키스탄 실직자들의 고통스러운 나날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있으며, 따라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와 자신들이 공범 관계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들은 그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며, 그 수치심은 곧 무기력함으로 이어진다. 이들 가운데 에드몽 카이저처럼 불의의 상황에 대해 분연히 반기를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괴로운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럴듯한 정당화 방안을 모색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절망을 박차고 절망의 벽을 부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투쟁의 몸짓들을 내 두눈으로 보고 막연한 '희망'이 아닌 '함께 하는 구체적인' 희망을 접하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희망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쟁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며, 투쟁을 통해서만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 약육강식 체제를 파괴시키는 일이 세계 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너무 과격하다고? IMF 이후 몰아닥친,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알짜배기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해, 그리고 광우병 위협 등 출처도 모를 유전자 조작 식품이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숨막혀 오는 환경오염과 산림파괴, 기후변화에 대해, 곧 우리에게 불어닥칠 물과 의료 민영화에 대해, 엄청난 부를 축적시켜 나가면서 국가를, 법을 쥐락펴락하는 삼성 등 세계적 다국적 기업에 대해(삼성이, 현대가 해외로 이전한다고 하면 어쩌나? 우린 언제부턴가 그런 걱정을 하며 지내지 않는가?), 엄청난 청년 실업에 대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가난한 농촌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이도 저도 관심 없다면 바로 위에서 인용한 브라질의 한 엄마의 심정에 대해 마음이 잠시나마 움직였다면, 그냥 우리가 숨 한 번 깊게 들어마시고 내뱉는 매 7초라는 시간에 세계에서 10세 미만의 아이 한 명씩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움찔하다면, 잠깐동안만이라도 이 '투쟁'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말고 장 지글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줄 것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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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는 이 책 『탐욕의 시대』를 펼쳐나가는 첫 단추를 200여년 전에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에서 찾는다. 어쩐 일인지 나에게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숭고한 가치와 더불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막을 내린,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처참한 붕괴와 함께 '그래, 세상은 어쩔 수 없어'라는 체념을 심어주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많은 이들(그들 중 대부분은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이 가졌던 희망의 메세지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세계가 바로 그 때 혁명으로 무너져버린 앙시엥 레짐(구체제), 아니 그보다 더 혹독한 앙시엥 레짐 속에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혁명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매우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프랑스 혁명 당시) 자크 루의 주장을 들어보자.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 ... 지금까지 법은 항상 가난한 자들에게는 혹독했다. 부자들에 의해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오, 분노여, 오, 수치여! 나라 밖의 독재군주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프랑스 민중의 대표들이 나라 안의 독재자들을 타도하지 못할 정도로 용렬하다면 그 누가 우리의 말을 곧이듣겠는가?"

#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
오늘날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냉소적이며, 예전에 비해 한결 야만적이고 교활한 새로운 봉건 지배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바로 제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이다. ... 나는 이처럼 새로 등장한 봉건 군주들을 코스모크라트(cosmocrate), 즉 세계화 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

'에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더 많은 부를 획득하는 건 당연하잖어. 굳이 돈 많이 번다고 옛날 봉건 군주의 잔혹함에 빗대서 말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아?'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저 굶주리는 브라질 엄마들의 상황과 이들 배부른 다국적 민간기업들을 대립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상황을 너무 호도하는 억지 아닐까 하고. 오랜동안 유엔 특별식량조산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는 나의 이런 부정적 시각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그가 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잠깐, 이 가난과 새로운 코스모크라트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장 지글러가 보는 새로운 봉건 제후들, 즉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생리를 살펴보자. 그는 현재의 세계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결핍'의 시대가 아니라,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재화와 부'가 차고 넘치는 세계라고 말한다. 대형 마트에 천장 꼭대기까지 쌓여있는 온갖 상품들을 보라. 그것들은 언제고 팔려나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풍요와 무료라는 두 가지 개념은 이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한다. 오직 희귀성만이 이익을 보장한다! 그러니 희귀성을 만들어내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특히 자연이 선사한 무상성이라면 질색이다. 이들은 자연의 무상성을 일종의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한다. 생물, 즉 유전자를 변형한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특허권, 수자원의 사유화 등은 참을 수 없는 이 같은 무상성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안간힘의 결과다.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는 심지어 이웃 농지에서 바람에 의해 날라온 유전자변형식물을 키웠다는 이유로 캐나다의 한 농부가 그 식물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몬산토사에 고발조치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단지 특허 식물을 비용지불 없이 경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여러 농민들이 동일한 이유로 소송중에 있다. 더 이야기 해볼까? 수자원의 민영화 이후 농부들은 빗물을 받아서조차 물을 사용할 수 없고, 동네 우물물조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 수자원 민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네슬레다. 지난 6~7월 촛불정국에서 수자원 민영화와 의료민영화도 거리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점을 떠올려보자. 이명박 정부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세계는 다국적 기업에게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다. 꼭 해외 다국적 기업을 볼 것이 아니라 물 사업에 당장이라도 뛰어들 태새를 갖추고 있는 두산, 웅진 등의 대기업들을 떠올려보라. 오직 그들에게는 최대의 이윤추구만이 지상과제이다.
이제 다시 오늘날 우리 세계가 어떤 상황인지 보자.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들 중에서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6개국에서 발생한다. 희생자들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의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이 아이들의 생명은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이 아니라,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 다시 말해 인위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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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사람은 4억명이었으나, 현재는 8억 5,400만 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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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저개발 상황은 마치 감옥처럼 사람들을 짓누른다.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경제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 없는 삶 속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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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금 상태는 언제까지고 지속되며,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이란 불가능하고, 따라서 고통은 끝이 없다. 극소수만이 기적적으로 철창을 부수고 나올 수 있다. ......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그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저개발 경제의 현실은, 학교 교육 부재(따라서 사회 계층 간의 이동 불가능), 병원과 의료 부재(따라서 건강 유지 불가능), 지속적인 영양 공급 부재,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 부재, 치안 부재, 개인의 자율성 부재로 요약될 수 있다.
"가난은 지옥이다"라고 찰스 디킨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들을 위해서 UN에서는 평화유지군을 비롯해 각종 원조를 엄청난 규모로 하지 않는가?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이 민중들의 고혈을 짜 부를 획득하는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서 나름 제국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 많은 원조는? 물론, 많은 이들이 나의 이 질문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이미 이라크 전쟁은 미국에 있는 석유 회사와 군수산업체에서 지속적이고 엄청난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벌인 전쟁이라는 것이 만 천하에 공개되었으니 말이다.

# 제국의 존재 이유, 전쟁과 폭력
다국적 기업인 핼리버튼,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 셰버런-텍사코 등이 미국이 이라크의 유전을 상대로 강도짓을 벌이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부통력 딕체니는 핼리버튼 사의 회장이었으며, 국무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는 전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마찬가지로 셰브런을 이끌었다. 대통령 조지 W. 부시로 말하면 그는 본인이 소유한 텍사스 유전 덕분에 엄청난 부를 쌓았다.  ...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국의 대형 TV 방송국들의 상당수(이들의 시청자 수를 모두 합하면 수천만 명에 달한다)가 무기 제조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NBC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군수산업체 중의 하나인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소유물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전 세계적인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일상적인 자잘한 거짓말에서부터 국가의 거짓말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공포심 조장과 타인 배척, 외국인 혐오, 인종 차별주의 등을 마음대로 구사하는 조작을 자행한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다.

최근 한 신문에서 보도되었던 내용인데,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알짜배기 사업체들을 한 입에 먹기 편하도록 IMF는 물론, 미 정부당국과 주한 미대사관은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관련된 모든 규제 요건을 완화시키도록 했다는 문서가 공개된 적이 있다. 그 결과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가 그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부를 챙겨주고 그들이 그 부를 한터럭도 안흘리고 먹튀할 때 우리 국민들은 그냥 입만 벌린 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였으며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일까?  장 지글러는 이들 제국이 벌이는 폭력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를 뉴욕 유엔본부 건물 안에 있는 거대한 벽에 세워져 있는 표를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다.

2001년 유엔 건물에 수치화되어 있던 역피라미드



오늘날엔 극단적인 폭력의 행사가 오히려 문화행위처럼 인식되고 있다. 폭력이 지속적으로 주인 행세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폭력은 봉건화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이념적,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표현이다. 요컨대 폭력이 세계의 질서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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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2006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850억 달러씩 10년 동안 투자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 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은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 그래 우리에게는 UN이 있지 않는가?' 세계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UN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겨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 또한 UN의 이름으로 전세계 빈곤의 현장을 각 국가의 국내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우리 국제연합 국민들은..."을 표방하는 UN은 돈 긁어모으는데 환장한 다국적 기업과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제국의 갈퀴에 떳떳하게 맞서고 있는가?

# 죽음으로 내몰린 국제법
2004년 9월 18일, 미국 대통령은 국내법 혹은 국제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특공대 육성을 허가하는 비밀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 더욱 놀라운 사실도 있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 관계 당국에 의해 체포된 포로 중에서 누구는 제네바 협약 및 첨부 의정서, 혹은 보다 광범위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원칙의 적용을 받을 것이고, 누구는 '합법적으로' 포로 감시인들의 임의적인 처분에 맡길 것인가를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 펜타곤 법률가들의 논리는 이렇다. 유엔이 정한 고문 방지에 관한 모든 법과 협약 조항은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속한 제헌 권한'에 의해 무효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그런가 하면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또 다른 연합 세력인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은 체첸 공화국에서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점령군에 의해 18만 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이는 체첸 공화국 전체 인구의 17퍼센트에 해당한다.

더러운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미국내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남긴 것은 수많은 이라크 민중들의 시체와 살아남은 자들의 끔찍한 고문이었다. 이스라엘 가나 지구에 엄청난 담장이 올라서고 이스라엘 군에 의해 팔레스타인들이 무차별 살해당하는 지속적 학살의 현장에서 UN은? 올해 체첸이 러시아 군대의 무차별 폭격을 받을 때 UN은 어디에 있었는가? 

워싱턴 정부는 유엔의 일반 운영 예산의 26퍼센트, 평화 유지 작전에 소요되는 특별 예산의 상당부분, 그리고 22개에 달하는 전문기구 운영예산의 적지 않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2004년 한 해 동안 9.100만 명에게 식량을 공급한 세계식량계획의 경우, 미국 정부가 경비의 60퍼센트를 지원한다. 이는 주로 미국의 잉여 농산물에서 선취한 현물 형태로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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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이 운영되는 방식...P-5급 이상 되는 유엔 공무원들 중에 백악관의 확실한 동의 없이 승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유엔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의 어느 곳에서 일하건, 출신 국가가 어디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이 원칙이 적용된다. ... 백악관 지하엔 고위 공무원들과 외교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일하는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팀의 주요 업무는 유엔 또는 유엔 산하 전문 기관의 주요 책임자들 개개인의 활동 사항 및 경력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유엔이라는 체제 안에서 살아남을 가망성이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은 당장 해고를 당하거나, 문제의 백악관 지하실 팀이 내민 함정에 걸려 고꾸라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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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오늘날 유엔은 전염병 퇴치, 식량보급, 빈곤층 자녀 학교 보내기 등의 기술적인 활동에만 치중할 뿐, 과거의 명성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나약한 기구로 추락했다.
2007년 6월, 유엔은 창립 62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앞으로 그리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반기문씨가 UN사무총장으로 된 일은 나에게도 참 의외스러운 일이었다. 뭐,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면서도, 국제사회에 제대로 기여한 경력도 없는 나라의 외무부장관이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반기문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한국이 미국 워싱턴 지하 사무실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니 참 씁쓸했다. 장지글러가 아는 스웨덴(?) 사람도 젊은 시절 베트남전에 반대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미국의 반대로 UN 주요 요직에 임명되지 못했다고 그러지 않는가! 반기문의 자서전이 우리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반기문 그 개인을 내가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UN의 사무총장이 되었을까? 젊은 시절 (5.18학살의 원흉이었다고 해서 그랬던가?) 미 대사관 담장을 넘으려 했다는 이유로 20년이 넘게 비자발급을 받지 못한 그 선배는 요즘 술마시는 게 좀 줄었을까? 

이제 장 지글러는 본격적으로 (이 책의 부제인)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의 물음에 답한다. 그 원인은 한가지다. 다름아닌 제국과 그 제후들(다국적 기업과 추악한 민간은행들)이 이자놀음하고 있는 '부채'때문이라고 확신있게 말한다.

# 부채, 그 추악한 악성 종양의 실체
가난한 나라들은 해마다 부자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자신들이 투자나 협력 차관, 인도주의적 지원 또는 개발 지원 등의 형태로 받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한다.
2006년 북반구 선진 산업국가들이 제3세계 122개국의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은 580억 달러였다. 같은 해 제3세계 122개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환 명목으로 북반구 은행에 포진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5,010억 달러를 지급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부채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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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1980년대 초반, 국제통화기금은 브라질에서 유난히 가혹한 구조조정 계획을 요구했다. 지출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브라질 정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벌이던 홍역 예방주사 접종 사업을 중단했다. 그로 인해서 브라질에서는 정확하게 1984년 이 전염병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갔다.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홍역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부채가 그 아이들을 죽였다.
쥐빌레2000은 2006년의 경우,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부채 때문에 죽어간다고 계산했다.

장 지글러는 늦게 세계화에 합류하고, 자본주의라는 생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저개발국가, 특히 농업이 주를 이루는 국가에서 부채는 하나의 필연적 구조라고 본다. 그 곳에서 오랜 세력을 형성한 지배계급은 결코 자신들의 많은 세금을 들여 국가를 개발시키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손쉽게 도입하는 것이 외국 은행을 통한 차관이다. 차관을 얻으면 또한 이 지배계급에게 떡고물이 다닥다닥 붙어나온다. 이 빚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돌아간다. 대부분이 농민인 그들은 더 많은 생산물을 내기 위해 농기계며 화학 비료 등을 해외에서 다시 수입하지만  농기계 등의 가격은 20년동안 6배 뛰어올랐지만 농산물 가격은 지속적으로 내려간다. 그 사이 이자와 원금은 눈덩이처럼 쌓여만 간다.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또 부채의 덫에 손을 댄다. 


장 지글러는 아주 단호하게 이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만이 이들 부채의 짐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수억의 '우리 UN 연합국 국민'들이 최소한도로라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부채를 '합리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채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니 자본주의 용병들이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하는 "누구든 부채를 문제 삼는 자는 세계경제를 파멸로 이끈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 이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본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연적인 법칙'이라는 이론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제3세계 국가들을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만든 체제를 문제 삼지 못하도록 하는 이 이론은 제대로 된 분석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론이다. ... 지난 10년간 제3세계의 122개국에서 부채에 대한 이자 및 원금 상환을 위해 북반구 국가와 이들 나라의 은행으로 송금한 돈의 총액은 채권국 전체의 국민총생산을 합한 액수의 2퍼센트에 약간 못 미친다. ...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전 세계 증권거래소에 몰아친 강력한 충격으로 수천억 달러의 자산이 증발하면서 거의 모든 지역의 금융업계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 ... 이 기간 동안 증권거래소에서 증발한 가치는 제3세계 122개국의 외채를 모두 합한 액수보다 무려 70배나 큰 액수였다. ... 그렇다면 왜 부채 탕감을 추진할 수 없다는 말인가? ...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제3세계 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는 외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완전히 탕감하더라도 산업사회의 경제와 그 경제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의 복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로 남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약간 덜 가난해질 뿐이다.

쥐빌레2000이라는 유럽의 단체에서는 부채경감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운동의 출발점은 오늘날 최빈국 49개국의 외채를 모두 더한 액수가 이들 국가의 국민총생산량을 더한 액수의 124퍼센트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라고 지글러는 설명한다. 이들을 가난과 기아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면 바로 이들 국가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장 지글러가 '추악한 부채'의 예로 든 르완다의 사례를 보고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문명의 제국 프랑스가 한 일을, 그리고 UN의 안전보장이사회가 한 짓을, 부채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의 집요함을 대하며 진저리가 쳐졌다.

1994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르완다의 구릉지대에는 정규군과 인터함웨 용병들이 투치족의 어린이, 성인 남녀들과 정권에 대항하는 후투족 수천 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 이 무렵 유엔은 르완다에 1,300명이 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 대학살이 자행되던 무렵, 수만 명의 투치족들이 치안이 안전한 유엔 평화유지군 영내에 피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군대의 사령부 측은 시종일관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는 뉴욕의 안전보장이사회측이 유엔 평화유지군 부사령관격인 코피 아난을 통해 전달한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집단 학살극이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4년 4월 21일에 의결된 912호 결의안에 따라 르완다 주둔 평화유지군의 병력을 반으로 줄였다. ... 이렇게 해서 100일 사이에 남녀노소 구별없이 대략 80만 명에서 100만 명의 투치족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뿐이다.
1990년에서 94년 사이에 르완다에 외채와 무기를 제공한 나라는 프랑스,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중국 등이다. ... 1993년부터 94년 사이에는 중국이 50만점의 칼을 키갈리 정부에 제공했다. 집단학살이 이미 시작된 뒤에도 프랑스로부터 빌린 돈으로 대금이 지불된 칼이 가득 들어찬 상자들이 캄팔라와 몸바사 항구를 통해서 르완다로 물밀듯이 흘러들어왔다. ... 미테랑 대통령 시절, 프랑스는 르완다에서 특별히 끔찍한 역할을 자처했다. ... 이들이 패배하자 급기야 살인마들과 그들을 정치적으로 사주한 자들을 탈출시킨 것이다. ... 후투족 출신인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의 독재정권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정권이었다. 그런데 그 정권을 쓰러뜨린 르완다 애국전선은 우간다로 피난을 간 투치족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영어를 사용하는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푸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어를 지키기 위해 집단학살을 자행한 살인마 집단에게 무조건적인 지원을 보냈다는 말이다. ... 르완다에 새로이 들어선 정권은 약 1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이어받았다. 내란으로 국내 사정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데다 자신들의 어머니와 동생들, 자식들을 죽이는 데 사용된 칼을 사기 위해 끌어들인 외채를 갚아야할 도덕적 의무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새 정권은 채권단에게 부채 상환을 중지, 아니 아예 무효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주도한 채권단은 협력 자금 공급을 끊거나 르완다를 재정적으로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그러한 요청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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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제3세계 국가들의 모든 채무, 즉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국민들을 노예 상태에 붙잡아두며 기아로 인간을 파괴하는 모든 부채는 '추악한 부채'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 르완다의 잔혹상은 우리가 90년 이후 신문에서 Tv에서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곳의 오늘의 풍경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부채로 인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가 '그래도 세계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 간다'고 믿고 싶었고, 믿었던 나지만 지글러의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계는 지금 생지옥으로 굴러떨어져 가고 있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자 고리의 부채를 강요하는 현대판 봉건지주들이 저지르는 살인행위는 더 이상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감각하게 느껴질정도로 처참하다.

# 기아,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
2001년엔 7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8억 2,6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에 걸려 불구자가 되었다. 그 숫자는 현재 8억 5,400만 명으로 증가했다. 1995년에서 2004년 사이에 만성적인 영양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2,800만명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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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대략 6,200만 명, 즉 전 세계 인구의 1퍼센트 정도가 해마다 무슨 이유로건 사망한다. 2006년의 경우, 이중에서 3,600만 명 이상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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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이 2006년 3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조르다니와 가자 지구에 사는 10세 미만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15퍼센트 이상이 만성적으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 소아 영양 결핍의 결과가 빚어낸 참상으로, 팔레스타인 영아 수천명은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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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49개국의 경우, 30퍼센트의 영유아가 철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아이들은 평생 정신 장애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해마다 약 60만 명의 여성이 임신 기간 중에 심각한 철분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다. 출산 중에 죽는 산모들의 20퍼센트는 철분 부족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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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비타민 A의 부족으로 4분마다 한 명씩 시력을 잃는다. 5세 미만의 어린이 4천만 명이 비타민 A 결핍으로 고생한다. 이 가운데 1,300만 명이 해마다 시력을 잃는다. 

이들 국가들의 농산품의 가격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다름 아닌 세계 농산물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들의 매출액은 해마다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는 반면, 그 원재료인 농산품 가격은 폭락하거나 거북이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들은 결국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빈민이 되고 성매매와 구걸로 하루하루 연명하게 된다. 가족은 산산조각이 나고 이들에게는 에이즈 등의 각종 질병, 기아와 영양결핍에 허덕이게 된다.
책 중반을 넘겨 읽어갈 즈음 나는 늦은 밤까지 뒤척이게 되었다. 난 그리 별난 세계주의자도 아니다. 가끔 마음이 쓰이는 곳에 내가 가진 돈의 아주 극히 일부분을 제공하고 잠깐 마음 뿌듯해 하며 사는, 그러면서도 세 살된 우리 안토니오의 하루하루에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월급봉투 바라보며 월급액수가 몇 만원 올라 통장에 찍혀나오면 기분 좋아하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보여주는 세상은 나란 존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참혹하게 나아가고 있다. 나란 존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말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났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냐? 우리나라를 보라구, 위대한 지도자를 만난 덕에 몇 십년 전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고 폐허에서 출발한 우리는 세계 11위 경제강국이 되었잖아?' 누구나 쉽게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을 흘려 키운 (우리의 노동자들은 최장시간 최저임금으로, 농민들은 몇십년 동안 생산원가를 밑도는 농산물가격으로 그들을 살찌웠다. 그들은 부패한 정치세력과 권력자들에게 사과를 선물하면 그만이었다) 삼성과 현대 등의 족벌 대기업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그 허상을 쫓은 결과 다시 삽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의 물길을 수조원의 돈을 쏟아부으며 뒤집을 판이다. 『88만원 세대』저자인 우석훈 선생은 최근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이미 중남미형 빈곤형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아직 더 배가 고프다'며 보수 언론과 제계는 '경제살리기'라는 허상을 만들어내며 분배 쪽에 비중을 아주 쬐끔씩 두기 시작했던 정권을 갈아엎고 새벽종을 쳐대며 삽을 들고 나가자고 소리치는 독재자를 양산했다. 돈이 증발해 버린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선택할 것은 뻔하다. 장 지글러가 설명한 대로 이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을 한 푼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이들이 정권을 잡고 한 종부세 철폐, 양도세 완화 등의 정책을 보라) 결국 쉽게 얻을 수 있는 IMF와 외국 민간은행의 차관을 도입할 것이고, 그 이후는 위에서 설명한 방식의 절차를 고스란히 밟게 될 수도 있다. 너무 심한 판단이라고? 지금 청년 실업과 줄줄이 도산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97년 IMF의 상황보다 더 험악해져 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 현실을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냈다.   
이런, 세계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다시 나는 국내 상황에 게거품을 물고 이러고 있다. 세계 11위 경제강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라고 해봐야 1면은 주로 남한 내부 정치 상황, 기껏해야 남북관계, 한국-일본 관계, 아 맞다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답게 가끔은 한-미 관계가 장식한다. 이러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세계 전체의  주요 일인 것마냥 떠든다'고 비아냥대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리만치 세계를 향한 여론의 문을 닫고 있다. G8 회담에 반대하기 위해 세계에서 무려 15만명이 모여들어 텐트를 치고 몇날 며칠 밤을 세계 기아와 부채 문제, 환경오염과 수자원 민영화 문제,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토론하는 곳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는가? 정작 지글러의 글에서는 내내 불편해 하다가도 한국 이야기가 나오니깐 제 물 만난 것마냥 장문의 글을 쉼없이 써대고 있지 않은가? 

각설하고, 다시 지글러의 이야기로 들어가자. 사실 이 책의 목차를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갖던 부분은 4장의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였다. 2002년 룰라의 당선 이후에, 사실 잘 나간다던 차이나 펀드 투자도 마다하고, 브라질 관련 펀드에 내 뭉치돈을 겁없이 넣었던 것도 사실 룰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그 펀드는 ...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것이다. 어쨋든, 룰라의 최신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 룰라, 가난한 노동자에서 혁명의 지휘관으로!
1964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그는 상베르나르두 두 캄푸의 인두스트리아 빌라리스 공장의 선반공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동료를 대신해서 알루미늄 절단기를 돌리고 있을 때 기계가 말썽을 일으켰고, 룰라는 그 때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 그는 처음엔 인두스트리아 빌라리스의 금속 노동자 지부의 지도자로 시작해서 차츰 상베르나르두 두 캄푸의 모든 공장 노동자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 고용주들은 공장 폐쇄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수입이 한 푼도 없게 된 룰라는 처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 당시 룰라에게는 젊은 아내가 있었다. 첫 아기를 임신한 지 8개월째 되었을 때, 진통이 시작되었다. ... 새벽에 노동조합 동료의 도움으로 룰라는 아내를 상베르나르두 두 캄푸의 공공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당직 의사는 돈을 미리 내라고 요구했다. 룰라도 그의 동료도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그러자 의사는 입원을 거절했다. 룰라의 아내와 뱃속의 아기는 이렇게 해서 병원 복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민중 저 밑바닥의 삶을 살았던 그가 브라질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2002년이었다. 그는 그와 함께 했던 동지들과 더불어 기아에 허덕이고 외채에 등쌀이 휜 브라질을 살리고자 생존적 궁핍을 넘어서 '지식, 건강, 가정, 자유, 존엄성의 결핍'까지 포함하는 '기아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을 가졌다. 그것은 부채에 대한 짐만 없다면 충분히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룰라는 이 지긋지긋한 제 3세계 국가들의 부채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제3세계의 그 어느 국가도 부채를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외채 상환을 계속하는 제3세계 국가는 국민들을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고 믿는다.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전략과 부채 상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즉각적으로 부채 상환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부채 상환을 거부함으로써 절약하게 되는 돈을 가지고 우리는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발전 기금, 교육이나 공중건강, 농업개혁 등 요컨대 제3세계 국가들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발전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정치적인 행동이란 각종 사회운동들의 압력을 가리킨다. 부채문제를 국민 모두가 그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고 덧붙인다.

이 얼마나 멋진 혁명인가? 부채의 구조를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는 자가 바로 이 룰라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연설이었다. 이전 군사독재정권에 엄청난 돈줄을 댔던 IMF와 외국자본세력들이 과연 이 룰라를 가만두었겠는가? 그들은 일시에 브라질 화폐가치를 세계시장에서 똥값으로 하락시키고 모든 돈줄을 죄어댔다. 결국 룰라는 부채와의 전쟁에서 한 발 물러나 그들과 타협하고 말았다. 브라질 아마존의 산림은 이들 외국거대다국적 회사들(여기에도 네슬레는 여지없이 등장한다)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고 그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가는 대신, 그들은 기아를 해결하고자 하는 룰라에게 일정정도의 자본을 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얻은 돈들중 상당부분은 부채를 갚는데 쓰이고 있다. 아마도 장 지글러는 이러한 룰라의 처지를 생각하며 절망에 가까운 한탄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을 것이다.

나에게 항상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장의 신뢰'라는 표현이다. 국가 또는 국민은 세계화된 자본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지 않기 위해서, 자본 앞에서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경제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신뢰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걸까?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를 바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니 오로지 그렇게 할 경우에만 수치의 제국을 움직이는 제후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을 도와주는 은혜를 베푼다.

난 개인적으로 이렇게 주저 앉는 룰라의 소식을 접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아마도 돈이 없어 죽어가는 아내와 아기를 병원 복도에서 안고 있을, 도시 한복판에서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고 있을 또다른 제2의, 제3의 룰라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평생을 굳게 지켜온 자신의 신념도 '부채와의 전쟁'을 한 국가의 대통령이 선포하는 순간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싸움에서 이들 브라질 국민들에게 닥쳐올 시련들에 대한 생각 앞에서는 부질 없는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동지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지글러 또한 그 룰라의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선택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다시 호소한다.  

부채와의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렇다. 그 전쟁의 결말이 브라질에서 진행 중인 평화스럽고 조용한 혁명의 결말을 말해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결말이 불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같은 맥락이라면 국제사회 시민들, 특히 유럽 시민들이 보여주는 연대감이 브라질이 벌이고 있는 기아와의 전쟁, 부채 탕감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대의식을 고취시키고 시민들을 규합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이 책이 내거는 목적 중의 하나다.

내가 더 이상 지글러가 말하는 신흥 봉건제후, 즉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를 일일이 나열해야 할까? 사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내가 이 책에서 인용해 놓은 글은 지금까지 인용한 구절만큼 더 남아있다. 그만큼 난 이 책을 통해서 알아야 할 것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래서 어쩌자고! 그들이라고 꼭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고 싶겠어? 그들이 꼭 본성이 추악하기 때문에 그런거냐? 이건 자본주의의 생리잖아!' 맞다. 그들은 먹고 먹히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단지 살아남고자 말이다. 그것이 탐욕의 고리를 끊지 못하게 하고 있다. 

# 신흥 봉건제후,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
부채와 기아 덕분에 나날이 번영하고 있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맥락에서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끈끈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이 세운 제국이 와해될 것이고, 반대로 그들이 연민이나 인류애 등을 지옥에 던져버리고 사납고 냉소적인 야수처럼 행동한다면 투자가 증대되고 이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칠 것이며, 발밑엔 시체가 즐비하게 널릴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들 신흥봉건제후들이 그들의 활약을 통해서 거두어들이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고려한다면, 연민의 길을 택해서 제국을 와해시키는 선택은 이들에게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이들의 추악한 만행들 중 지금 우리에게 닥친 절박한 문제 하나만 기억하기로 하자. 우리나라에도 작년부터인가 유전자 조작 농산품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조만간 네슬레처럼 우리 시장에서도 쉽게 그 상표를 찾게 될 회사가 바로 '몬산토'사일 것이다. 바로 유전자변형식품의 최고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다. 그냥 뭐 다들 먹는다고 그러는데 뭐 큰 문제 있겠어? 라고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지글러의 이 책을 꼭 한 번 읽기를 바란다. 누차 지글러가 강조하지만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오직 '이윤 극대화'가 이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 유전자 변형 생물, 불공정 경쟁의 대표주자
식물의 유전자 변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식을 통해 이루어진 염색체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엔 유전자 변형 식물이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특허권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가 지난해의 수확에서 다음 해의 수확을 위해 일정 비율의 종자를 남긴다면, 농부는 이 종자의 특허권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일종의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농부가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되 그 종자가 번식이 불가능한 종자라면('터미네이터' 특허), 농부는 해마다 기업으로부터 새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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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 전체 노동 인구의 60퍼센트는 농부들이다. 앞으로는 특허 사용권을 지불해야 하는 유전자 변형 종자에 이들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신흥 봉건제후들은 유전자 변형물이질이 기아를 퇴치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편이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물(소, 염소, 양, 가금류 등의 가축도 마찬가지다)의 유전자 변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진실 왜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은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관계 부처에서 매일 흘러나온다. 이와 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수십억 달러가 오고 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에 내놓은 세계 식량 불안에 관한 보고서는 상세한 통계수치까지 곁들여가면서 현재의 생산력으로 볼 때 세계 농업은 120억 명까지는 '별문제 없이'(유전자 변형 식품 없이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 그런데 현재 지구상에는 '고작' 62억 명이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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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업계의 선두주자가 바로 몬산토 사다. 백악관에서 이 회사의 입김은 대단하다. 세계유전자 변형 종자시장의 개방이 몬산토 사의 최우선 과제다. 몬산토 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 변형생물(GMO)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천만 헥타르의 GMO 경작지 중의 90퍼센트가 몬산토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 미국이 나서서 식량을 지원할 때, 그 틈을 타서 유전자 변형 종자의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를 파고드는 것이 몬사토 사의 전략이었다. ... "여러분들은 녹색 혁명에 실패했고, 산업혁명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유전자 혁명만큼은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네슬레는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없는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자신들이 만든 분유를 팔게 함으로써 결국 더러운 물에 오염된 우유를 먹게 함으로써 영아 사망률을 높이는 만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깨끗한 물을 갑자기 더러운 물이라고 왜곡된 홍보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후 자신들의 생수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식수 산업의 민영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물값을 2배로 올리는 폭리를 취하면서, 심지어 볼리비아의 경우는 물값이 식품비보다 훨씬 비싼 기현상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자! 우리가 네슬레 식품을 먹는다면 그것은 잠시나마 우리의 몸을 상쾌하게 하지만, 서서히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우리와 우리 자식에게 네슬레 제품을 먹이지 말자.

이왕 길어진 글이니 마지막으로 장지글러의 혁명과 희망을 얘기하기 전에 웃지 못할 코메디 한편을 소개한다. 그동안 여기까지 이 책소개글을 읽은 이들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내가 다시 옮기는 글이다.

# 인권도 좋지만, 시장이 더 좋아!
세계화 지상주의자에게 유엔 헌장에 명시된 원칙들을 존중하도록 권유하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코피 아난은 이들과 일종의 타협을 맺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즉 유엔과 주요 다국적 기업 간에 체결된 일반 협약이다. ... 이에 서명한 다국적 기업들이 채택된 협약 내용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지를 감시하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
이들로서는 협약에 서명하는 것이 금송아지를 얻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기업 이미지 제고 면에서만 보더라도 와전히 남는 장사임에는 틀림없었다. 코피 아난 덕분에 이들은 수천만 달러의 광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협약에 서명한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기업 브로셔나 광고 전단 등에 자신들이 일반 협약에 서명했음을 강조했고, 유엔 로고까지 가져다 쓸 수 있는 굉장한 덤을 얻었다. 
......
2004년 6월 24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코피 아난의 주재로 일반 협약에 서명한 다국적 기업 대표들이 모였다. 5년 동안의 성과를 알아보는 자리였다. 비정부기구들의 압력에 따라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서명자들이 협약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준수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한 국제적인 모니터링 기관을 창설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제안의 골자였다. 
......
코피 아난의 새로운 제안은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장 지글러는 단호히 혁명, 즉 '세계화 지상주의자들과의 단호한 전쟁'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너무나도 매끄럽게 번역한 양영란 선생 또한 지글러의 혁명에 동참하고 싶고 그런 뜻에서 혁명가이고 싶다고 역자 후기에 남기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 책을 읽고 창과 곡괭이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죽창을 만들어 들고 저 다국적 대기업을 향해, 이들의 피를 공유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집을 향해 뛰쳐들어갈 것인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혼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네슬레 상품은 절대 먹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몬산토와 미국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한 소비자로서, 소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들이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공정무역을 통해 제대로 된 커피원료 값을 원산지 농민들에게 주는 '아름다운 커피' 와 '바리의 꿈'과 같은 콩 식품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지글러는 사실을 정확히 목도한 우리의 마음이 그 출발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파도는 이미 너울을 이루고 있다고 우리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 저자 후기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복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카를 마르크스는 "혁명가는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마,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한 책에 대해서 길게 글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내가 주저리주저리 읊어대고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꼭 알아야 할 내용들,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열정이 세계의 고통과 연대하여 함께 아파하고 함께 치료하는 다리를 놔줄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절망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명확히 알았기에, 그래서 그 밑바닥을 처절하게 보았기에 그 바닥을 차고 비상하여 이 '탐욕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날을 향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의 보고서이다.
난 이 책이 많은 젊은이들이 읽고 토론하고,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투쟁(그렇다. 투쟁은 우리의 일상의 변화까지 모두 포괄하는 단어이다)을 다짐하고 일상의 작은 반란, 작은 혁명을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이들과 함께 만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음과 같은 지글러의 마지막 표현은 잠시동안 내 온몸을 소름 돋게 했다.

투쟁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다. 일찍이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꺽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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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비밀댓글로 위드블로그의 베타 테스트에 참여해 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500명의 블로거를 선별해서 테스트에 참여하게 하는데 그 기회를 나한테 준다는 것이었다. 블로그에 대해서는 글 쓰고 내가 추천하는 음악을 한 곡씩 올리는 거 외에는 전혀 모르는 나는 혹시 이상한 데 낚이는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댓글이 별로 없는 내 블로그까지 와서 글을 남겨준 정성이 고마워 속는 셈 치고 아직은 엉성해 보이는 위드블로그 싸이트에 가입을 하였다. 방식은 어떤 신상품에 대해 그 신상품을 미리 무료로 받고 제한된 기한 내에 그 상품에 대한 리뷰를 내 블로그에 작성하고, 위의 배너를 올리면 된다. 책 읽는 시간이 더딘 나로서는 리뷰하고 글 올리는 기간이 짧다고 느껴져서 신청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이 책에 관심이 있어 처음으로 신청했는데 고맙게도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만일 위드블로그가 아니었으면 난  이 책 또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처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다 못 읽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무료로 책을 보내준 고마움보다 이 책을 내가 읽을 수 있게 해 줬다는 게 위드 블로그에 더욱 고맙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번창하시기를... ^^

함께 듣는 음악은 Holly Cole의 라이브 앨범『It happened one night』(1996) 앨범의 8번 곡 "Calling You"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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