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들로 가득찬 한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그런 글이 있었다. 카테고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음악을 올리는 데 장애가 된다고...
나 또한 몇 개의 글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카테고리에 갇혀 글쓰기를 주저하게 된다.
나의 일상을 어느 한 카테고리에 담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오늘만도 그렇다. 밤늦게 야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청에 들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최하는 시국미사에 참여하고, 을지로 입구 역에서 학원을 다녀오는 눈큰이를 기다리면서 노숙자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자원봉사단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서서 책을 읽다가 눈큰이를 만나 지하철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멀쩡하게 생긴 노인 양반이 삶이 괴로워서 그러는데 천원만 달라고 그래서 엉겹결에 지갑을 열어 천원을 주고, 아차~ 낮에는 우연치 않게 서강대 유석진 교수님의 '촛불과 인터넷'이라는 주제의 짧은 강의를 재미있게 듣고...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딱히 하나의 주제를 잡고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블로그에 들어와 안토니오의 이야기가 뜸한 것에 죄책감을 느껴 이 카테고리 속에 들어와 글을 적으려니 억지로 생각을 떠올리는, 오히려 처음 의도했던 방향과는 어긋나게 부자연스러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주저주저하면서 간간이 책 소개 정도의 글을 싣는 사이, 매주 주말마다 만나는 안토니오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익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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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토니오! 오늘 아이스크림 먹었어?"
"애기 아이스크림 먹었쪄"

"안토니오 '엄마! 사랑해' 해봐"
"엄마 사랑해!"

요즘들어 부쩍 장난식으로든 아니든 부정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안토니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배가 아야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엄마, 아빠에게 할머니가 준 아이스크림을 안먹었다고 거짓말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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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기억력은 정말 놀랍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꼭 방문하는 교보문고에 가서 한 번은 권정생 선생이 쓴 "엄마 까투리"라는 그림책을 눈큰이가 잠시 보여준 적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지난 주에 서점에 들렀더니 엄마에게 "까츄리 어딨어?"하면서 묻더란다. 까맣게 잊고 있던 눈큰이는 그냥 "응~ 그래 안토니오"하면서 얼버무렸는데 나중에야 그 동화책을 잠깐 읽어준 게 기억나 찾아다가 보여줬는데, 엄마가 책장을 넘기니깐 자기가 "불났어, 까츄리가 넘어졌어" 하면서 한 번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이야기하더란다.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정말 하나 하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뇌리에 오래 박힌다는 생각이 드니 섣불리 아이 앞에서 괜한 소리를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콧소리를 내며 '응?'하고 계속 되묻는 안토니오를 보면서 요즘들어 나도 안토니오를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전 묵혀놓았던 '아빠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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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출판사에 다니는 대학선배를 촛불집회에서 만나서 같이 행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요즘 촛불집회 때문에 책 판매부수가 굉장히 줄었다고, 대표적인 예로 교보문고의 매출이 급격하게 줄은 것을 얘기해줬다. 아마도 춧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여 출판사에서 많은 구조조정을 통해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평일에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에는 잠깐이라도 촛불집회에 나가다 보니 집에서 책 읽는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자립형 사립고 열풍으로 초등학생들까지 사립고를 진학할 목적으로 밤늦도록 학원을 다닌다는 얘기와 함께, 기숙형 사립고의 경우 등록금이 400만원인가 하고, 매달 80만원씩을 내야 한다는 '뉴스 후' 방송 얘기를 하면서 이 땅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 형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히 일례로 든 것이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강남의 한 초등학교 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국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답한 반면, 강북의 한 저소득층 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니 '도덕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빈부격차가 결국 교육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이 그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눈큰이와 나는 둘 다 농촌에서 자란 탓인지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할 생각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하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일 방과 후에도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가버리고 혼자가 된다면, 또 초등학교에 실컷 뛰놀면서 지내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의 학력 격차에 충격을 받고 괴로워 한다면 어쩌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마땅하게 대책이 안선다. 이곳 서울에서는 말이다.
대안 학교라고 하는 곳들도 대부분은 귀족학교가 되었고, 심지어 공동육아마져도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교육열 높은 계층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이 세상에서 어찌 저 환한 웃음과 티없는 표정들을 지켜줄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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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은 안토니오는 얼마 안있어 할아버지와 함께 한 여름 뙤약볕 산길을 걷고, 오후에 할아버지가 잠시 학교에 가신 사이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는 또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산책을 한다. 아직은 지방 중소도시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지라 안토니오는 자연과 친숙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편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에 대한 의존이 심해진다면서 아버님이 걱정을 하셨다. 주변 동네 어린이집에 잠시 동안이라도 보내서 아이가 사교성을 익혀야 되지 않을까 고민된다고 말씀하신다. 요즘들어 내가 봐도 안토니오는 이미 사리분별이 제법 명확해 졌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서도 "안토니오! 이젠 컵에다 쉬~ 해야지" 하면 "아니~ 기저귀에다 할래" 또는 "낼부터~"라고 말하는 걸 보면 조만간 기저귀를 뗄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젠 서울로 데리고 올라올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도...  함께 지낼 수 있어 너무 기쁘면서도 가슴 한 켠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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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이젠 아빠하고 엄마하고 서울로 올라가야 해! 가서 열심히 일하고 토욜날 또 올께?"
"음~ 아빠만 가~"
"안돼! 엄마도 가서 일하고 와야 해~ 울지말고 잘 지내고 있어?"
"응~ 아빠, 엄마 서울간다"
늘 이렇게 주말마다 이별을 안겨주는 우리 마음이 아프다.

오래전부터 안토니오가 울거나 보채면 할아버지는 컴퓨터에 있는 동요싸이트에 들어가서 음악을 들려주곤 하셨다. 그래서 요즘에도 틈만 나면 노래를 틀어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안토니오가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엄마~' 하면서 엉엉 서럽게 울더란다. 깜짝 놀라 할아버지가 가 보니 그 노래는 "가을밤"이라는 노래였단다.
http://kr.infant.kids.yahoo.com/infantzone/index.html?service=song&mode=view&contents_no=12530&sort=latest&endpg=13&pg=1
주말에 내려가 안토니오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이 노래를 틀어주는데, 아가가 그네를 타면서 저 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는데 얼핏 얼핏 엄마 아빠가 오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 때 안토니오가 의자에 앉아서 "엄마다~ 엄마!"하고 외쳐댔다. 옆에 같이 앉아서 그 노래와 영상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콧등이 시큰해져와 안토니오를 꼭 품에 안았다. 이 노래가 이렇게 슬펐던가 이제서야 깨달았다.

미안하다. 안토니오!
매주 잠깐 만나고 길게 이별하는 것에 익숙해 진 안토니오에게 작은 생채기가 남겨질 것이다. 앞으로 이 땅에 살면서 안토니오가 받아야 할 더 큰 상처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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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듣는 음악은 Pat Metheny Group의 "Offramp"(1982)앨범 중 2번 곡 "Are you going with me?"이다.
가끔 밤늦은 퀭한 도시속을 운전하면서 지나갈 때 이 음반이 떠오른다. 도시속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들의 음악이 요즘들어 공감을 준다. 이젠 영낙없는 대도시 속 떠다니는 부초인생이다.  우리에게도 출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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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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