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의로운 세상에 가셔서 환하게 웃으며 맘편히 지내소서.

제대로 손 한 번 잡아 끌어주지 못하고, 

등떠미는 뭇사람들 틈에 끼어 나 또한 당신을 벼랑으로 밀어낸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침통합니다. 

토요일, 안토니오가 부리는 재롱 앞에서도 눈에 초점이 생기지 않고 멍하게 바라봅니다.

답답함. 분노. 무력함... 마음이 수갈래로 흩어져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요.

부디, 부디 평온하소서.

                                     - 5. 23. 12:00 -

새벽 5시에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창문 밖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어슴프레 새 아침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몸에서 열이 났습니다.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해열제를 먹이고 물을 먹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칭얼거리다 방금 전에 다시 잠이 들었어요. 

5시 15분입니다. 당신이 잠못 이루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힘겹게 타자를 치고 있었을 바로 그 시각입니다. 
짠 눈물이 제 뺨을 흘러내립니다. 
아이가 울을 때 '이제 울음 뚝' 이라는 말을 할 때 아이는 울면서 내게 말하곤 합니다. 
'눈물이 그냥 나와' 
님을 황망히 보내며 그동안 그저 놀라고 당황스럽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다 바로 이 순간, 
님이 떠난 지 이틀이 되는 이 새벽에서야 두 뺨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당신을 마음에 담았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5공 청문회 때 청문회 스타로서도 기억이 나지만, 그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광주 학살 주역들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내던 님의 격정적인 울분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때는 여럿 국회의원들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대학생 때였던가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말지였던가? 어느 잡지에서 당신의 인터뷰를 읽었었지요.
당신은 젊은이들에게 말했어요.
'나중에, 나중에 때가 되면 실천하겠다고 하며 미루지 마라. 지금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그 상황에 맞게 실천해라. 그래야 나중에 능력이 넘치고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마음에 담아둔 것을 실천 할 수 있다'고...
늘 '대학가면','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가면', '나중에 돈 벌면' 하면서 현재를 미루면서 살아가던 저에게는 당신의 그 말 한마디가 곧 저의 삶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현재에 충실하자'
물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살면서도 많이 많이 부족한 삶이었습니다. 

당신을 참 좋아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당신을 늘 기억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당신의 뜻을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신뢰했습니다. 
혹여 진보언론지에서조차 당신의 그 '말'을 트집잡아 비판할 때조차도 난 그 이면을 생각하고자 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이미 너무 늦은 고백인걸요. 

5시 30분입니다. 
당신이 가족들에게 남기는 글을 작성하고
저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 뒷산 봉화산을 향했던 시간입니다. 

다시 머리를 쥐어뜯습니다. 
무슨 말을 내가 주절거리고 싶었던 걸까요. 

그것은 '진정성'이었습니다. 
당신을 알고부터 지금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신 그 순간까지 전 당신의 '진정성'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 권력의 개들은 그런 당신의 '진정성'을 가차없이 뭉개고 짓밟았습니다. 
당신이 권력의 최고봉에 올라있을 때는 하염없이 짖어댔습니다. 하염없이...
그리고 당신이 물러나고 그들이 최고봉에 다시 올랐을 때
당신이 진정성을 가지고 만든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어요. 
뭇 사람들이 아우성치자, 그들은 모든 것을 당신탓이라고 하며 또 다시 당신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언젠가 퇴임 전에 오마이 뉴스와 인터뷰하며 당신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퇴임 후에도 무사히 살아나가기 위해서...'라는 말을 해야 할 정도로 당신은 당선 초기부터 검찰과 선 긋기를 했습니다.   
그 말이 그 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최근 먼지털이 식으로 당신과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달겨드는 검찰의 유아적 작태를 보면서 저는 그 말이 얼마나 절박했었던 것이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런 일이... 

정말, 그들은 당신이 죽어줘야, 당신의 피맛을 봐야 만족하며 고개를 돌렸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신의 죽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너무한다' '너무한다'라고만 생각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던 제가 한 없이 옹졸하고 부끄러운 새벽입니다. 

일요일 아침 방송을 보며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공영방송이라고 자처하는 방송들이 앞다투어 세계 역사에서 지도자들의 자살을 끄집어 내 
'봐라. 노무현만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그런 지도자는 많았다'고 보도를 해 댔습니다. 
심지어는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당신의 자살과 그들의 자살을 동일 선상에 놓았습니다. 

단, 하루만에 ... 당신의 진정성을 다룰려는 시도는 찾을 길이 없고, 희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작태를 보며 답답함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대학 동기녀석이 전화를 해 왔습니다. 
황당함과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제게 '이게 뭐냐!'라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6시 20분입니다.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다 오르셨는지요? 아니면 아직 오르고 계셨는지요? 
날은 환하게 밝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부스럭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며칠 밤을 불면의 나날로 지내온 당신에게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이었겠죠? 





당신이 걸었을 그 새벽 한 시간의 산길... 

당신이 애타게 잡고 싶었을 생의 한 순간, 한 순간들...

당신이 떨쳐 버리고 싶었을 악몽들... 

그리고 ... 

온갖 더러운 때로 더럽혀진 개들에게
  
'성찰'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반성'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개들에게 갈가리 찢겨진 당신을 보며 

이 얼룩진 세상속에서 살면서 그래도 지키고 싶었던 무언가가 짓뭉개진 것처럼 가슴이 요동치고 주체할 수 없이 치욕스럽습니다. 

떠나 보내 드려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악몽을 꾸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러겠지요. 이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광장에 나서겠지요.

그러나 두렵습니다. 다시 이 반복되는 악몽을 껴안은 채 살아가야 할 까봐서요. 

6시 40분입니다. 

당신은 세상에 대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가 만든 세상에 대한 수치심으로 방황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나요? 어떻게 우리의 이 수치심을 지울 수 있을까요?  

도저히 이대로는 끝맺는 인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Manos Hadjidakis의 『Through branches of the stars』(2001) 앨범 중 4번 곡 "Sweet mother mine".
어머님의 품에서 평안하기를...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