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야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눈큰이의 전화를 회사에서 받았다.
"거실이 완전 물바다야"
수도가 터진걸까? 보일러 배관이 터진걸까?
오늘 오전에 배관 전문가가 와서 누수탐지기로 열심히 찾았지만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하수관 하나가 얼어붙어서 윗층에서 오는 싱크대 개숫물이 가장 낮은 층인 우리집 거실로 역류한 것이다.
하루종일 거실의 하수물을 퍼내고 윗층 집에 연락을 취해 싱크대 사용을 못하게 하고 거실을 여러번 닦아냈다.
주말이지만 쉬지 못하고 극도로 긴장상태에 있어서 그랬는지 이 지긋지긋한 추위가 누그러졌다고 하지만 막상 목이 칼칼한 것이 감기증세가 느껴진다.

그 녀석! 거실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상황에서 눈큰이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물을 퍼내는 상황에서도 안토니오는 장난감 전화로 "아~ 여보세요? 거기 소방서죠? 네네. 우리집에 물이 가득 찼어요. 네네. 지금 좀 바로 와주세요" 하고 연락하는 등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자못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안토니오~

새해 첫 출근을 하는 전날밤부터는 음식을 잘 못 먹고 급체를 하여 밤새 내내 토하고 울고 하는 바람에 눈큰이는 휴가를 내야했고, 난 시무식이 끝난 다음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가서 눈이 수북히 쌓인 길을 토하느라 지쳐 '펑펑 쏟아지즌' 눈을 보고도 암말도 못하는 아이를 들춰업고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말길도 알아듣고 이젠 다 컸구나 마음을 놓았는데 새해 벽두부터 우리에게 경고하듯이 며칠동안을 밥도 못 먹은 채 끙끙 앓아누웠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한 해, 우리의 기쁨과 걱정을 쥐락펴락 했던 녀석은 다름아닌 안토니오였다.
이곳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도 나중에 안토니오가 먼 훗날 아빠, 엄마의 한 시기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게으른 아빠는 지난 한 해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고, 그래서 잊혀질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쳐버렸다. 그 때 그 때의 나의 생각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 무엇보다 함께 서울생활을 시작한 안토니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

그래서 아쉬우나마 안토니오의 한 해 동안의 이야기를 여기에 뭉뜽그려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이 글 역시 지난 년말에 안토니오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소식지를 만든다고 글을 써달라고 그래서 쓴 글이다. 끙...

안토니오! 미안해! 



지면의 한계도 있었고, 부분적으로는 억지로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여름동안의 일들은 뭉텅 잘라 버렸다. 
무엇보다도, 10월에 어린이집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신종플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집 부모들끼리 아주 적극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함께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으면서 신종플루만큼이나 무서운 타미플루라는 약의 처방을 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그 병을 이겨냈던 감동적인 사연조차 넣지 못했다.

며칠간 해열제를 먹여도 떨어지지 않던 고열 속에서 눈큰이와 나는 정말 타미플루처방을 받지 않고 이렇게 아이에게 버티게 했던 선택이 잘 한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갈등했는데, 어린이집에서 함께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을 낫게 하려는 부모들의 정보 교류가 없었다면 도저히 그리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10월 23일 신종플루를 스스로 이겨낸 안토니오^^



안토니오! 때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뜨거운 너의 몸을 닦아내며 수도없이 기도하게 만들며 가슴졸이게도 만들었지만, 지난 한 해동안 우리에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일상을 선사해준 너에게 고맙고 또 고맙단다.  

새해에는 더 자주 너의 소식을 기록해 놓을께. ^^

함께 듣는 음악는 Curtis Fuller의 『Blues-ette』(1991) 앨범 중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이다. 1959년에 연주한 앨범이라고 하는데...


                  

'between antonio and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토니오 태어난 날  (4) 2011.05.10
적응하기 - Everything's Alright  (6) 2009.04.04
설 이야기 - Cinema Paradiso  (6) 2009.02.20
제주도 - Sonet  (7) 2009.01.12
2008 Best&Worst - Lord Only Knows  (4) 2008.12.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