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3일
이제 28개월이 넘었다.
소변은 성공적으로 보는 안티니오. 문제는 대변이었다.
똥이 마려운 경우 집안 이곳저곳을 달려다니면서 뭔가 다급한 것에 쫒기는 인상을 하고 괴로와했다. 그러다가 바지에 싸던가 그냥 방바닥 아무곳에 떨구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떨어지는 똥을 내가 손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나마 운 좋은 경우였다. ^^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깐 추석 전날 안토니오가 똥이 마렵다고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안토니오를 급히 안고 안토니오 책방으로 가서 추석 선물로 사다 준 '안녕! 바나나달' 책을 가지고 와 베란다에 있는 아기 변기에 앉혔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안토니오는 관심있게 보다가 가끔 힘을 주듯이 약간의 인상을 쓰곤 했다. 조만간 은은한(?) 똥 냄새가 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어줄 때까지 꼼짝 안하고 있던 안토니오! 아주 큼직하고 예쁜 똥을 변기에 깨끗이 보았다.
난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주빈이가 눈 똥을 보여주었다.
마침 점심 식사를 막 시작한 시간이었다.
모두 주빈이 똥을 감상하며 박수를 쳐 주고 식사를 계속했다.

14일도, 15일도 이런 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기다리면 아이들은 그때마다 '아이! 잘했어요' 하고 엄마, 아빠에게 선물 하나씩을 안긴다.

8월 28일 제주 표선해수욕장에서




# 9월 14일
추석 당일. 친척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우리 가족만 남았다. 하나뿐인 조카 시언이와 안토니오를 데리고 형과 형수님, 나와 눈큰이가 아파트 놀이터에 잠시 들렀다. 어느 아이들이 놓고 간 장난감 삽과 장난감 쟁기를 가지고 시언이와 안토니오가 재미있게 소꿉놀이를 한다.
(시언) 엄마! 내가 미역국 끓여줄께.
삽 가득 흙을 퍼담아서 먹으라고 형수님에게 갖다댄다. 옆에서 그 장면을 보던 안토니오는 금방 누나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눈큰이에게 포크에 흙을 담아 갖다댄다.
(눈큰이) 아휴~ 맛있어. 고맙습니다.
(시언) 안토니오! 누나가 케잌 만들어줄께?
(안토니오) 응~
아무래도 포크보다는 삽이 흙이 잘 떠진다. 결국 안토니오는 시언이 누나가 가지고 있는 삽을 달라고 조른다. 시언이가 잘 퍼지는 삽을 동생에게 줄 리가 없다. 한창 미역국에다 케잌에다 잘 만들어 가족들을 먹이고 있는데... 안토니오는 그런 시언이에게 매달리면서 칭얼대기 시작한다.
(안토니오) 나도 숟가락 할래...
보다 못한 형이 안토니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안토니오가 팽개친 포크를 들고 안토니오를 달래기 시작한다. 
(형) '안토니오! 큰 아빠가 고기 구워줄께. 아! 맛있게다. 자 먹어봐~'
쪼그리고 앉아 커다란 포크를 안토니오에게 갖다댄다.

시언이하구 즐겁게 흙을 퍼담으면서 밥이니, 미역국이니, 케잌이니 하면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안토니오! 그러나 형의 눈을 뚤어져다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그. 그거 흙인데?" 
잠시 침묵이 흐르고... 시언이만 빼고는 모두 뒤로 넘어갔다. 
형은 철저하게 아이들에게 따 당하고 물러나야 했다.


# 10월 2-5일
모처럼 안토니오가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께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안토니오를 우리에게 안겨주고 바로 5분 후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 가셨다. 집에 가는 버스가 끊긴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자식된 입장에서, 더군다나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너무 난감하고 죄송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
일주일만에 보는 안토니오를 이리저리 보느라 또 다시 얼이 빠진다. 어른들이 그런다. 서네살 때 말 배울 때가 너무 귀여운 때라고. 그 때 자식이 평생 효도할만큼은 다 하는 거라고. 안토니오가 단어를 조합해서 질문하고 표정짓는 그 소리,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버지께서 기차를 갈아타는 사이 용산역 개찰구에 있는 어린이 방 안을 간유리로 보고는 어린이 방에 가자고 졸라댔다. 
"안토니오! 할아버지 떠나시는 거 보고 가자!" 
한 순간도 할아버지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안토니오가 할어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한다.
"하버지! 어여 가!"


결혼한 지 이제 4년 째 접어든다.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서 거실에 설치한 CD장 사이사이 공간에 넣을 작은 악세사리를 몇 개 사왔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태어난 이후 그나마 옛 신혼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던 악세사리들이 하나하나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프라하에 있는 크리스탈 제품 매장에서 구입한 물 마시는 한 쌍(그 중의 한 마리는 이미 오래전 안토니오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의 새의 날개며 몸통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해서 '신혼'이라는 말이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구나.
그 대신 안토니오의 커가는 모습과 기억들이 우리 부부의 머리속을 차지하게 되었다.  

3박 4일 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3일 개천절에는 파주 헤이리에 있다는 유아놀이터 딸기마을을 찾았다. 휴일이라서 그랬는지 안토니오나 우리 모두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였다. 평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만 지내던 안토니오도 사람들이 경쟁하듯이 달려드는 놀이기구를 제대로 이용 못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쉽게 자리를 내준다. 아이들과 섞여서 놀지 못하는 안토니오가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할아버지께서도 반나절이라도 놀이방을 보낼까 고민이라고 지나가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게 퍼뜩 기억났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한 낮 동안을 서울숲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저녁에는 한강 고수부지 이촌지구에서 불꽃놀이를 잠깐 봤다. 안토니오가 신기해 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정작 한 20여분 지난 이후에는 재미가 없어졌는지 "엄마 집에 가!"라고 졸라서 다시 되돌아왔다. 아빠 목말을 타기를 좋아하는 안토니오는 이촌역으로 향하는 길을 가득 매운 사람들을 내 어깨위 앉아 내려다보면서 "우와! 사람 많다"를 연신 내뱉는다. 아직 지방도시 변두리에 있는 산 속 아파트에서 드문드문 사람을 대하는 안토니오에게는 불꽃놀이보다 온 거리를 가득 매운 사람들이 더욱 신기했나보다. 기분이 좋았는지 내 머리위에서 연신 노래를 크게 불러댔다.

최대한 '안돼!'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눈큰이와 나는 안토니오 임신 후에 다짐하듯 말하곤 했다. 그러나 머리로는 그러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은 '위험해! 안돼'다. 최근에 안토니오를 서점에 데리고 가며 보여준 책 중에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라는 유아책이 있다. 말 안듣고, 잠 안자는 아이들을 잡아가서 부엉이로 만들어 버리고 입을 바늘로 꿰매는 무서운 할아버지 얘기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밤잠을 안자려고 하면 깜깜한 창밖을 가리키면서 '안토니오! 지금 잘 시간이 넘었어. 근데 이렇게 안자고 있으면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라고 얘기해 주면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불꺼진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효과가 굉장히 좋다. 그런데 이젠 걸핏하면 안토니오가 이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빨 안다그면 망태할아버지 와?" "이거 안 먹으면 망태할아버지 와?"
깜깜한 밤에 같이 누워있으면 "지금 망태할아버지 와 있어?" 모든 게 망태할아버지와 연관시켜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사실 '망태할아버지가 온다'의 진짜 이야기는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입을 꿰메고 박쥐로 만들어버리는 줄 알았던 망태할아버지가 결국에는 "~ ~ 하면 안돼.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가"라고 입에 '안돼'라는 걸 달고 사는 엄마, 아빠들을 잡아가서 가혹하게 벌을 준 후 그런 말을 아이에게 못하게 한다는 후반부 극적 반전이 있는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이다. 매 번 어쩔 수 없이 망태할아버지 이야기를 안토니오에게 꺼내 행동을 제약할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한 건 오히려 눈큰이와 나다. 이젠 우리가 먼저 안토니오에게 '망태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지는 말아야겠다.

그나 저나 이렇게 안토니오와 함께 있다 헤어지고 난 다음날인 월요일이면 온통 안토니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녀석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함께 듣는 음악은 It's A Beautiful Day의 카네기 홀 라이브 앨범 "It's a beautiful day at Carnegie Hall"(1972) 중 마지막 8번 곡 "White Bird"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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