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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책 모임을 하는 직장 동료들 몇과 함께 홍대에 진출했다. 산티라는 식당에서 인도식 커리를 맛있게 먹고 그 앞 찻집에 가서 올해의 베스트와 워스트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친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저의 베스트는 네팔 여행이었어요. 그리고 워스트는 팀장을 만난 거였죠.'
베스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없고, 내 기억에는 워스트에 대한 진한 거부감만이 기억된다.
'저도 유럽여행이 베스트였어요. 근데... 워스트 또한 유럽여행을 같이 간 친구였어요'
역시 베스트는 간단하고 워스트에 선정된 친구에 대해 갖게 된 큰 실망감이 한 참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내 차례가 세번째였는지, 두 번째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우선 나의 워스트는 역시 금년에 받은 2차 수술입니다. 으~ 끔찍했어요. 작년에 워스트는 다리를 다쳐 1차 수술을 받은 거였죠.' 대부분 2월에 받은 수술 때 문병을 와준 사람들이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든, 두 번의 다리 수술은 내 몸이 더이상 내 마음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그 이후 흰머리도 늘어났고, 체중도 내가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어났다. 일 또한 올 한 해 가장 게으름을 많이 피웠으며 끊임없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반년을 넘게 보내야했다. 9월부터 시작한 재활을 통해 이제는 다리도 많이 좋아졌지만 매사 이전처럼 몸에 대한 자신감은 없어졌다. 늘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격하게 움직이는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이젠 걷다가도 달리려고 해도 머리 속에서 '안돼~'하고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니 생활의 자신감 또한 많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모든 일상에서 잦은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경험하곤 하였다.
어쩌면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한 번도 다치지 않은 팔목과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것도 활동적인 것을 멈춰버린 내 몸과 정신의 본능적 반응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그리고 나의 베스트는 매주 만나는 우리의 안토니오입니다. 안토니오 커가는 모습을 통해 늘 새로운 희망과 삶의 에너지를 갖갖게 되니까요.' 역시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짧은 시간동안 생각해서 말한 거였지만, 오래 생각한들 크게 바뀌지 않는 나의 올해의 베스트와 워스트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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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눈큰이의 올해 베스트와 워스트를 물어보았다.
'올해의 베스트는 역시 지난 주에 갔었던 일본 여행이었어. 아이를 낳고, 1년동안 아이를 키우고 다시 복직을 했지만 늘 자신감이 없었거든? 근데, 이번 일본여행동안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고 그러고 왔는데, 이젠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어.'
눈큰이는  짧은 일본여행에서 가장 최고로 꼽은 게 교토의 '철학의 거리'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은 걸 느꼈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가자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서울에 도착해 서울 상공의 뿌연 스모그를 보면서 한 숨 짓던 그 모습을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본 기억이 있다. 제발 이곳 서울에서 잘 살어~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


그런 눈큰이에게 올해의 워스트는 무엇이었을까? 베스트가 안토니오가 안나온게 이상했는데, 안토니오가 그만 올해의 워스트에 등장하고 말았다.
'올해의 워스트는 매주 안토니오랑 헤어지는 거였어'
안토니오는 그리 울음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가 안토니오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는 토요일날 와서, 일요일날 저녁에는 일하러다시 서울로 가야한다'고 '그러니, 아빠 엄마 갈 때 울고 그러면 안돼'라고 다짐을 계속해서 시키셨다고 한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엄마와 헤어지는 때가 오면 마음 속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가만히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엄마! 안가면 안돼? 엄마가면 주빈이가 슬픈데... ' 하면서 쓸쓸하게 웃으면서 엄마를 슬쩍 쳐다보곤 한다. 떼를 쓰면서 우는 모습보다 그렇게 자기 감정을 숨기면서 아쉽게 작별인사를 하는 안토니오를 볼 때 가슴이 더욱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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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안토니오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집주인이예요'
'아. 네. 선생님! 잘 지내시죠?'
'네. 다리는 많이 나으셨어요?'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이제 벌써 2년이 다 되가네요.'
'아. 네. 그러지 않아도 준비를 할려고 합니다'
'뭐. 집을 다시 전세를 낼 예정인데, 알아보니깐 2천만원이 올랐더라구요'
'네. 저희도 맞춰서 살 만한데를 다시 알아보도록 할께요.'
'네. 기한은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알아보세요. 어디 생각해 놓으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아. 네. 아기 어린이집 알아보면서 집도 좀 알아볼려구요' 
'네. 찾아보면 어린이집도 괜찮은 곳 많이 있을 거예요.'(집주인이 전에는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네. 그럼 제가 찾고 연락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연일, 아파트 값이 뚝뚝 떨어진다는 뉴스가 곳곳에서 나오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작년 2년 재계약할 때는 3천을 올렸고, 다시 2천이 또 올랐다. 
결혼해서 집을 구할 때 시중 전세가보다 조금은 싸게 얻었지만, 그래도 4년 사이에 5천이 오른 것은 너무 심한 처사 아닌가? 
물론, 그렇게 치솟는 전세가 때문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 때문에 집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바로 안토니오를 서울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 요량으로 서울에 있는 공동육아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그 곳 근처에 아파트나 연립주택을 알아보려고 생각중이다. 
너무 많은 어린이집이 난립해 있고, 그 중에서도 오래전부터 공동육아 운동을 일궈온 선생님들을 몇 분 알고 있어서 일찌감치 공동육아를 보내고 싶었는데, 막상 알아보니 그것도 경제적으로 만만치가 않다. 
공동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다보니 들어갈 때 거의 600에서 800만원 정도를 어린이집 전세자금으로 내야 하고, 또 가입비가 몇 백이 든다. 그리고 다른 일반 어린이집보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월마다 더 내야 한다. 그러니깐 5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뿐인가? 요즘에는 경쟁률도 높아 대기자 신청을 해 놓고도 언제 아이를 보낼 수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지방에서 크고 있는 안토니오는 매일 매일이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는 게 놀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일반 사설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시간별 프로그램 이런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하루 종일 밖에서 놀릴 수 있는 그런 곳을 찾고 있었고, 그나마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이 오전 내내 밖에서 놀고, 오후에 낮잠자고 나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간단하게 실내에서 공동체 놀이를 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눈큰이와 나 둘 다 농촌에서 자라서인지 공통적인 건 아이의 미래가 어찌됐던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부딪치면서 신나게 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이다 뭐다 해서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보다 길게 보면 훨씬 아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아닐까 하는 부담감도 존재한다. 물론, 그 부담감은 경제적 부담감과 함께 우리 부부가 자기 합리화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논리일 수도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그 비용이 결코 후회할 비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글쎄다. 우리 형편에 이런 공동육아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걱정을 다 떠나더라도. 이젠 새해에는 안토니오를 하루하루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대된다. 매일매일이 나에게는 베스트일 것이며, 눈큰이는 2008년의 워스트는 더이상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 부닥쳐 보는 거다.

함께 듣는 음악은 Beck의 『Odelay』(1996) 앨범 중 3번 곡 "Lord Only Knows"라는 곡이다.
(놀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곡 출발이 이래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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