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을 연다. 사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매번 문 앞에서 서성이기만 하고 열어보지 못했던 문이다. 삐걱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오랜 먼지들이 빛속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괜히 열었을까? 내가 한 때나마 의욕적으로 쌓아놓았던 갖가지 삶의 더미들이 나를 날카롭게 쏘아본다.
무책임했다. 이 공간이 외로왔던 기간 나의 삶은 온갖 핑계로 덕지덕지 더러워졌다.

굳게 닫힌 문앞에 잠시 머물렀다가 스산한 분위기만 느낀채 돌아간 자들에게도 미안함이 생기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여기에 한 글 한 글 쳐 넣는 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에 고개를 들 수도 없다.

이야기 할 것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휑뎅그렁하게 내팽겨쳐진 공간에 오랜만에 빛을 쏘이고 문 앞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더미들도 비질하여 정돈해 놓기에는 버거워 한 숨만 나온다.

향후에라도 이전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전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기에 그 동안 나와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본다.  

난 계속 숨쉬며 살을 찌우며 살았다. 이젠 더는 숨쉬기가 거북해질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안토니오는 3월에 어린이집에 들어선 후 잘 적응하면서 쑥쑥 컸다.
그러던 중 10월에 신종플루에 걸려 봄과 여름 내내 살찌웠던 몸무게가 다시 빠졌다. 무서운 고열이었지만 잘 견뎌줬다. 병원엘 가지 않고 약간의 해열제와 한약을 복용하여 스스로 병을 이겨냈다.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아이를 믿고 옆에서 지켜봤더니 기어이 툭툭 털고 일어난 녀석은 이전보다 부쩍 큰 느낌이다.

눈큰이는 최근에 일이 많아졌다. 옆에서 근무하던 동료직원이 타부서로 인사이동되면서 그 직원 일까지 혼자 다 떠 안았다고 한다. 올 한해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이 있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안토니오가 급작스레 신종플루에 걸려버려 시험 당일날 집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했다. 많이 아쉬웠을거다. 그리고 올 한 해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일본여행도 가지 못했다.

고작 오랜만에 문을 열고 빗자루로 내 기억의 장소를 쓸고 모아보니 급작스레 기억나는 일들은 이게 전부이다. 문 밖에 대충대충 쌓아놓은 책들에 대한 메모들은 언제 차곡차곡 정리해서 방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무슨 생각에 이러저러한 메모를 해 놓고 비공개로 덮어 놓았는지 모르니 주인 잃은 글자들은 썩어가고 있다. 몇 가지 건질 수는 있을런지.
 
제목을 회귀(回歸)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내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록하지 못한 나의 삶은 고스란히 증발했고, 난 여기에 내 기록을 담아내지 못한 만큼 어딘가 뭉텅 내 삶을 도둑맞은 느낌마져 든다. 어쨋든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이다.

그 사이,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나의 소개글로 다시 돌아와 문을 열어본다. 아마도 안토니오에게 들려주는 아빠의 옛 이야기 중 하나 정도로 삼아야 할 성 싶다.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난 내일도 이 공간을 보면서 더욱 나 스스로를 망가뜨릴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마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결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자.
 
이 글의 제목은 '몸의 연주 - 체벌에 대한 기억'으로 했었다. 어린이집 홈페이지에 일주일 씩 돌아가면서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 중 첫 머리를 이 기억으로 담아낸 것은 아마도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버거움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함께 듣는 음악은 Beth Nielsen Chapman의 『Deeper Still』(2003) 앨범 중 3번 곡 'Every December Sky'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