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추천
형수님의 추진력으로 지난 주 가족들이 다 모이는 휴가여행을 계획했었다. 총합 9명. 약 한 달 전부터 형수님이 인터넷을 뒤져 담양에 있는 황토랑이라는 곳을 예약하고 가족 모두가 은근히 기대하고 휴가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깊은 산골에 흙으로 만든 집이라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뭔가 대안적 삶의 방식을 택한 이가 준비한 쉼터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 눈큰이와 나도 금요일 휴가를 내고 일찌감치 안토니오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휴가여행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서 식구들이 모두 도착해서 다음 날 일찍 떠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그러니깐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이었다. 아파트 베란다 창을 때리는 비소리와 천둥 소리에 잠을 자다 깨다 하면서 '이상하다! 분명 비는 일요일부터 내린다고 했는데...'하며 모처럼의 가족 휴가여행이 무산될까봐 걱정을 많이 하며 뒤척였다.
역시나 아침에 깨어났는데도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굵은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아기들이 있는데다가, 가는 곳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한 단양 월악산 근처 산골이라 더이상 여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수님이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한 참 전화를 걸면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니 우리가 가기 싫어 못가는 게 아니라, 지금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고, 또 내일까지 계속 내린다고 하는데 그곳에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요지는 그러니깐 일단 천재지변으로 보고 계약했던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아마도 날짜를 연기해서 잡으라고 한 모양이다. 안그러면 위약금으로 받고 돌려줄 수 없다고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달 전부터 흩어져 있는 가족들의 날짜 맞추기도 어려웠는데 바로 어떻게 날짜를 잡아 알려줄 것이고, 더군다나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휴가철로 접어드는 데 날짜를 박기가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 나는 그 집도 이런 집 지어서 돈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할텐데 이렇게 계약을 망치면 그 주 수입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 그냥 위약금으로 줘 버리라고 형수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날 내내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리고 뉴스에 계곡에 고립된 가족 소식을 접하면서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천재지변 맞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계약대로 오던지 (여기 일정은 고려치 않은 채) 날짜를 다시 잡아 그 산골로 와야 한다고 말하는 그 황토랑 주인장의 논리가 참 괘씸하네' 라는 생각 말이다.
여기서 단양의 황토랑까지 가는데 최소 잡아야 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이고, 더군다나 황토랑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니 만일 그런 대안적인 집을 지어 산골속에서 사는 사람 정도면 '아이고, 여기 너무 비가 와서 아무래도 오시는 게 위험하겠습니다. 저희가 일단은 보내주신 계약금을 돌려드릴테니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아 주세요. 우리로서도 참 안타깝습니다.'라는 전화 한 통 날려주었다면? !!!  가뜩이나 그 산골 집에 대한 매력과 함께 쥔장 또한 숲을 닮은 멋진 분이다라고 생각하고 향후에라도 어떻게 해서든 다시 시간이 되어 가족여행을 떠날 때가 오면 반드시 찾아갔을 것 아닌가!

쥔장 입장에서는 손님도 안받고 5만원이라는 계약금을 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챙겼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의 입장에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가족 전체 휴가 계획을 세워 들떠있다 떠나지 못해 실망한데다가 위약금 일로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끝났으니, 일차로는 다시는 우리의 여행 계획에 단양 황토랑을 가지 않으리라는 생각만 갖게 하고, 정감있는 흙집 쉼터를 기대했던 내가 이렇게 공개적인 석상에서 그 아쉬움을 토로할 지경이 되었으니 오히려 더 손해가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런 감정상한 전화통화로 끝맺은 쥔장의 마음도 좋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서도 말이다. 조금만 더 긴 안목을 가지고 약간의 사려깊은 배려만 있었어도 오래 기억에 남을 휴가지로 기억되고 찾아갔을텐데 말이다.

# 추천
그렇게 9명의 가족들은 지난 토요일 하루를 거침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집에 꽁꽁 갖혀 있었어야만 했다. 저녁 때 그 비속을 뚫고 잠시 시내에 나가서 어죽을 사먹고 돌아온 것 외에는 말이다. 그 사이 잠깐 집안일로 작은 아버님을 만났는데 비가 오더라도 내일 충남 아산 도고 파라다이스 호텔에 스파가 새로 생긴 지 얼마 안됐으니 그리로 가보라고 추천을 하셨다. 잠깐 동안의 가족회의 끝에 일단 어렵게 모였으니 그리라도 다녀오자고 해서 다음날 일요일 아침 일찍 도고 스파에 갔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여행이었기에 모두들 수영복을 빌리고 안토니오 수영복만 새로 하나 장만했다.
별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도고 스파는 의외로 참 좋았다. 두 돌을 갓넘긴 안토니오에게 튜브를 사서 태워줬더니 몇 시간이 되어도 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각종 미끄럼 기구를 반복해서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물 위에서 튜브를 타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까지 하는 거였다. ^^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들이 너무나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셨다. 거기서 거의 세 시간을 있었을 거다. 어른들은 다들 지쳤고, 결국에는 다 불어서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튜브를 꼭 잡고는 안가겠다며 울며 불며 난리를 치는 안토니오를 강제로 안고 나왔다. 크지도 않고 아담한데다 비가 억수로 내려서인지 사람들도 그리 많지가 않아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 맛집 예촌을 찾아가 붕어찜과 녹두전, 매기 매운탕을 시켜서 가족들 모두 배가 터지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모두 늦은 낫잠을 거나하게 주무시고... 아! 하루여행치고 휴식까지 완벽했다. 모두들 정말 의외의 하루일정에 만족해했다. 평소 밖으로 쏘다니는 걸 낭비라고 생각해서 여행같은 건 왠만해서 잘 가지 않으시던 어머님께서도 손주들이 활짝 핀 얼굴로 정신없이 물놀이를 하는 걸 보고 꽤나 즐거우셨는지 다음에 또 가자는 데 이견이 없으시다.  

그 날 저녁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와이퍼 속에서 번뜩거리는 앞 차들의 빨간 불빛에 눈이 피로하면서도 예쁘장한 수영모를 쓰고 자기 덩치보다 큰 튜브를 들고 비틀거리면서 다시 미끄럼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안토니오의 모습, 기분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 안나가겠다면서 울어재끼던 모습들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다행스런 가족 휴가였다.

비가 많이 내린다. 함께 듣는 음악은 Uriah Heep의 "The Magician's Birthday"(1972)앨범에 있는 5번 곡 "Rain"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