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애란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2007)


뭐랄까? 단편들 하나하나 속에서 옛 추억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고나 할까?
80년대 학번들에게는 사회참여의 분위기를 짙게 내는 참여 소설들이 있다면, 이 김애란의 단편들 속에서는 우리의 약간은 들뜬, 부유하는 90년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방에서의 어린 시절 삶들의 단편들도 언뜻 언뜻 비춰지는 것이 그런 대목을 만날때면 나 스스로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딱히 명확히 규정짓기 어려운 시대의 분위기를 조심스레 단편마다 배치하고 있다.

 

#1
연습이 지루할 때면 각 소리의 표정을 그려봤다. 레는 곁눈질하는 느낌이고, 솔은 까치발 선 인상을 줬다. 미는 시치미를 잘 떼고, 파는 솔보다 낮지만 쾌활할 것 같았다. 나는 다섯 음에 적응해갔다. 피아노는 건반 자체가 아닌 자기 내부의 어떤 것을 '때려서' 음을 만든다는 것도 이해했다. 높은 음일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도, 음마다 자기 시간을 따로 갖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 각 음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건, 여러 개의 시간이 만나 벌어지는 어떤 일일지도 몰랐다.


작가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겠거니 하면서 옮겨놨던 거 같다. 각각의 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피아노 건반을 울리며 세상에 흩뿌려진 여러 삶들을 들여다 봤을까?
재미있는 묘사이다.


#2.
어쨌든 나는 아홉 살이었고, 내겐 연주를 할 시간보다 말썽을 피울 시간이 많았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거나 언니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엄마는 만두피를 빚다 말고 잽싸게 달려와 우리를 두들겨 팬 뒤, 다시 쏜살같이 달려가 만두를 쪘다. 엄마는 늘 바빴다. 애들은 빨리 때려서 빨리 키워야 했고, 만두는 그보다 더 빨리 쪄내야 했다. 엄마의 만두 방망이가 내 몸을 때릴 때마다 사방에선 풀썩풀썩 밀가루 먼지가 피어났다. 나는 음악을 좀 알았지만, 매 앞에선 여전히 입을 벌린 채 으앙 - 하고 울었다. 한번은 피아노 악보 받침대가 부러져, 방망이 대신 그걸로 맞은 적도 있다. 나는 좀 컸다고 '으앙'하고 울지 않고 '훌쩍훌쩍' 울어댔다. 악기가 무섭게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익살스런 이 표현이 나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악보 받침대로 맞았다는 표현 속에서 나 또한 옛날 기억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음악부터 운동까지 못하시는게 없는 팔방미인이셨다. 그러다보니, 집으로 가져온 악기만도 바이올린, 아코디언, 드럼 등 다양했던 거 같다. 내가 왜 이런 악기들을 기억하냐면, 어머니가 터리개('먼지떨이'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대신 즐겨 사용하던 매가 바로 이 바이올린 채라던지 북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께 농담삼아 "엄마가 그런 악기로 나를 때려서 내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곤 웃곤 한다. 대신 악기들로 두들겨 맞아서 단 하루라도 음악이 없으면 못살 정도가 되버렸지만 말이다.^^


#3.
나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불을 이고 집을 떠나온 이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복작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서, 이 거리에서, 이 시장과 저 공장에서, 이 골목과 저 복도에서, 그늘에서, 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 - 도 - 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퇴근길에 신호에 막혀 잠시 정차를 하고 있으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양이 떠오른다. 리어커를 한 손으로 밀며 내 차앞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한 아저씨의 모습, 또 하얀 마스크를 끼고 핸들에는 검은 비닐 봉다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나즈막한 비탈길을 덤덤히 오르는 아저씨의 모습... 도~ 도~ 하고 우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파장이 내게 느껴져 그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게 된다. 작게나마 내 마음속에서도 낮은 '시'음이 울렸던가?


#4.
국민체조 음악이 흘러나온다. 모두 음악에 맞춰 어색하게 걷는 시늉을 한다. 음악 중간마다 '하나 둘 셋 넷'하는 구령에서부터 '옆구리!' '숨쉬기!' 등 전투적인 추임새가 나온다. 그녀는 국민체조 음악을 유치원 때부터 들어왔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상쾌해지다 어느새 경건해지곤 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체조 절정 부분에서 사내가 '온몸운동!' 하고 외치는 순간, 비장한 선율에 맞춰 고작 노 젓는 시늉이나 하자니 웃겨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구절에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어린 시절 정말 클라이막스를 향하는 음악과 함께 마이크에서 '온몸운동!'외치면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경건하게 노젓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동안 그 국민체조 음악이 그리웠었는데, 얼마전에 어느 방송에서 그 음악을 정말 십수년만에 들었는데 막상 들을때는 그리워하던 그 마음만큼이나 울림이 있지 않았다. 그리움은 그리운 만큼만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5.
"어릴 때 말이야"
"...... 응."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 받고 그랬잖아."
"..... 응."
"그런데 난 참 이상했어."
동생이 등을 돌리며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뭐가?"
사내는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게 예쁘게 포장돼 있었잖아. 그것도 꼭 장식된 전나무 밑에 놓여 있고, 거기 나오는 선물들은 전부 커다랗고 근사한 박스 안에 들어 있었잖아.정말 산타가 준 선물같이."
동생이 점점 흐려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 응."
"근데 우리 머리 위에 있던 선물은 왜 항상 까만 봉다리 속에 들어 있나, 나는 그게 참 이상했었어."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오후 형이 나와 누나를 불러다 아주 능글맞게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냐?"
"그럼" 누나와 나는 둘 다 진심어린 대답을 했으리라.
"웃기지마! 그거 다 엄마하구 아빠가 주는 거야"
"말도 안돼,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잠든 사이에 몰래 오셔서 주시고 가는 거야"
더욱 신이 난 형은 우헤헤 웃어재끼면서 실눈을 게슴치레 뜨고
"그럼 가서 부엌 찬장 뒤져봐! 분명 선물이 있을꺼야"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말도안되는 형의 입을 막기위해서라도, 그러나 속은 설마설마 조마조마해하며 엄마가 없는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찬장에서 그날 밤에 받았어야 할 장난감 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나와 나는 둘 다 억장이 무너지게 울어댔고, 형은 너무 너무 신나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산타가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난 국민학교 3학년, 누나는 5학년, 그리고 형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6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 수색에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서울에 올라와 산 지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 서울을 친근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어딜 가든 낯설고 잠깐 머물다 지나갈 곳이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한다. 아마도 내 집이라는 걸 갖지 못하고 이곳 저곳 하숙으로, 전월세로 떠돌았던 곳곳이 나를 이방인으로 내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낙인 찍힌 나 자신이 느끼는 이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찾아가는 내 고향에도 옛 고향 크기만한 공간하나가 또 생겨 완전히 새로운 낯선 지역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그나저나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이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7.
어느 날 한 사내가 들어와 국수 두 개를 시켰다. 손님이 방을 원해서 어머니는 안방에 상을 봐줬다. 국수와 고추 다대기,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사내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왜 그런가 싶어 사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는 자기 맞은편 국수 위에 빈 그릇을 엎어놓았다. 혹여 국수가 식을까봐 그러는 거였다. 곧이어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방긋 웃은 뒤 그릇을 걷고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에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 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이 소설에는 특히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마치 작자가 어머니에게서 소설적 영감을 많이 얻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단편들 내내 등장하는 것이 어머니와 '방'이다. 늘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에게 '방'은 어머니의 대역, 즉 자궁을 대신해서 숨고 싶어지는 공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몇 주전  한겨레 신문에서 최재봉 기자가 소설가 김원우씨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21세기 벽두 신예 소설가들에게서 보이는 “억지스러운 말맛, 어휘 취사에서 풍기는 교만” 등은 우리 문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쓴 약’이 아니겠는지... "

정이현의 단편 소설집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읽었던 이 소설속에서도 왠지 너무 예쁘게 포장되어 하나하나 뜯기가 거북했던 일본과자들처럼 맛깔스런 포장만 요란한, 그래서 벗기고 나면 맥이 풀리는 그런 좀 공허한 맛이 난다.  

그러나 이 작품들 속에는 분명 내가 그리워했던, 그래서 늘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나의 옛 추억들이, 마치 한겨울 총총 걸음걸이로 걷다가 슈퍼 앞 찜통에서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던 김과 그 속 하얀 호빵들처럼 놓여져 있어서 침이 고이게 한다. ^^

별점 : 3점    

함께 듣는 음악은 Rainbow의 "Long Live Rock'n'Roll"(1978)앨범 중 8번 곡 "Rainbow Eyes"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