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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월요일. 퇴근을 앞두고 대전에 사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형의 연락처를 묻고는 전화를 끊는다. 평소 전화를 이런식으로 하지 않던 누나여서 몇 분 후 내가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어~ 엄마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가셨대. 아빠가 형에게 전화해서 형이 내려갔나봐"

가슴이 쿵~. 다행히 퇴근시간이 다 되어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에 오르고도 한 참이나 불길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앉아서 눈만 껌뻑거린 채 그 생각들을 지우는 데만 전력을 다해야 했다.
기차가 영등포를 출발해서 서서히 제 속도를 내며 서울을 벗어날 즈음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어~ 니 엄마가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지금은 괜찮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그런다. 엄마 말로는 매운 고추를 먹고 너무 매워 물을 들이킨 것 까지 기억이난다고 하는 걸로 봐서 아마 매운 고추를 먹고 실신한 게 아닌가 싶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 저녁 먹으러 안토니오 데리가 가고 있다."
"엄마 바꿔 주세요"
"그려. 괜찮어. 니 아빠가 안토니오 데리고 나갔는데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나도 오지 않아 내가 너무 졸렸어. 졸음이 쏟아져서 잠깐 잠들었던거야. 지금 어죽 먹으러 간다."
"저랑, 안토니오 엄마 이미 기차 탔어요. 우리 상관하지 마시고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왜 그려~ 어제 내려갔다 올라갔으면 됐지 뭔 큰 일도 아닌데 내려오고 지랄여~"

다행이 형이 서울에서 내려가서 같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안토니오를 두 분이 돌보고 계시는데 어머니 쓰러진 이후 아버지 혼자서 감당하기는 당황스럽고 힘드셨을 것이다.

그나마 약간은 힘이 없지만 어머님 목소리를 듣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조금 있으려니 오른쪽 얼굴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미한 마비 증세가 있었다.

역에 내려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가는 도중, 아직 부모님이 식사를 하고 오지 않으셔서 우리도 집 앞 중국집에 들러서 자장면 한그릇씩을 먹고 들어갔다.

집에는 눈큰이와 내가 먼저 도착했다.
쓰러진 이후 집이 어질러져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괜찮으시다는 일차적인 확인이 된 셈이다.
안방에는 안토니오 이불과 어머니 이불이 거리를 두고 깔려 있었다.

바로 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안토니오 얼굴이 뜬다. 내가 바로 '안토니오~ ' 하니깐 잠깐 놀라더니 웃으면서 '아빠~' 한다. 문을 열어주고 엘레베이터 앞까지 가서 기다린다. 문이 열리고 안토니오가 아빠와 엄마를 보더니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한다.
집에 갑자기 들어온 이유를 안토니오에게 설명했더니, 안토니오가 할머니가 쓰러진 장면을 자신이 본 대로 동작을 가미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이케 있는데(앉는다), 이케 쿵 쓰러져쪄" "할머니가 이케 있는데 이케 쿵 쓰러졌어" 하면서 뒤로 쓰러지는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러더니 다시.
오늘 낮에 어제 떠난 엄마, 아빠 마중나가자구 할아버지를 졸랐다는데, 분명 몇 날을 더 자야지 온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와 있으니 신이 나서 엄마, 아빠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노래를 부르며 막춤을 추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의 관심은 그런 안토니오보다는 곧 형과 함께 올라온 어머니에게로 쏠렸다.
"괜찮다는데 피곤할텐데 뭐 하러 와!" 하시는데 가슴이 짠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쓰러지고 그래"
"점심을 먹고 있는데 니 엄마가 갑자기 고목나무 쓰러지듯 뒤로 쾅~ 하고 머리를 부대며 쓰러지는거야. 나도 맨 처음 놀래서 니 엄마를 막 주무르며 한 30초를 있었나? 그랬더니 깨나더라구. 그래서 '괜찮어?' '왜 그래?' 물었는데도 잠시동안에는 '내가 뭘~' '여기가 어디야~'하면서 넋이 나가 있다가 매운 고추를 먹고 매워서 물을 마신 것까지만 기억난다고 그러더라구. 그냥 머리를 바닥에 탕~하고 부딪히면서 쓰러졌을때는 아이구~ 이거 뇌진탕이면 어쩌나 한 걱정했다. 안토니오도 소파에 앉아있다 그 장면을 보고'할머니. 왜그래?' 계속 말하더라구"
차근 차근 설명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긴장하셨다가 풀리셔서 그런 지 힘이 없고 피곤이 잔뜩 묻어나 있다.
"네가 토요일날 먹다가 매워서 고생한 그 고추절임을 먹었는데, 어찌나 매운 지 물을 들이켰는데 배가 꽉 막힌 것 같구 그랬던 거 같은데 그 다음에는 기억이 없다"
"아휴~ 이제 좀 맵고 짠거 그만 드세요"
어머니가 안전한 걸 확인한 후 이젠 난 대들기 시작한다.
"별것도 아닌데 니 작은아버지한테 전화걸구 동네방네 다 전화했어. 니 아부지가~"
"아휴~ 난 그 때는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몰랐어. 그래서 니 형에게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했지"
"병원에서는 순환기 계통의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 혈압은 정상이고. 그래서 아마도 매운 것 드시고 실신한 게 아닌가~ 라고 그러더라구. 일단 일주일 지켜보자구 그러더라구"
형이 응급실 의사의 진단내용을 전해준다.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들 대부분 새끼 의사들야. 정밀검사 받아봐야지"
"아이~ 천천히 다 조사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대잖어. 일단 기다려봐"

집에 간 지 채 20분을 있었나? 그 사이에도 어머니는 일하자마자 내려온 우리가 걱정이 되는지 '뭐 줄까?'라고 묻고 금방이라도 과일을 챙겨올 것마냥 몸을 움직이시려 한다. 집에 더 있어봐야 어머니께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엄마한테 매달려서 꼼짝을 안하는 안토니오에게 금방 떠나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 준다.
"엄마, 아빠가 오늘 할머니가 쿵~ 하고 쓰러지셨다고 그래서 깜딱 놀라서 급하게 온 거야. 봐봐 아빠 옷도 일하는 옷으로 입고 있잖어. 그래서 다시 아빠랑 엄마, 서울 올라가야 해"
안토니오는 다시 울먹울먹 거리면서 엄마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눈큰이가 안토니오에게 전날 먹다 남긴 사탕을 주고 나서야 끝났다.
안토니오가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안토니오! 아빠 뽀뽀~'하면 자연스레 볼이나 입을 아빠에게 향하는 걸로 알 수 있다. 몇 번을 뽀뽀를 거부하더니 기어이 차에 오르기 전에 선선히 볼을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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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차를 얻어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어머니, 아버지의 피곤한 모습이 눈에 계속 밟혔다. 얼마 전 눈큰이가 안토니오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서는 이사를 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내년 초 전세재계약 이전에 미리 집을 알아보자고 했다. 그 때 나는 '그런 것부터가 부모 욕심의 시작이다. 그냥 자연스레 상황이 변하면 그 때 알아보자'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만일 바로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빨리 이사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안토니오 양육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고 싶다. 그래야 여유를 찾고 몸의 이상부위도 천천히 치료하실 생각을 하실 테니 말이다.
마음만 바빠지고 암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서울에 도착했다. 별일 없어야 할텐데...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함께 듣는 음악은 Dorival Caymmi의 90세 헌정 앨범 "Caymmi 90 Anos -Mar e terra"(2004) 중 CD1의 13번 곡 'Saudade de Itapoa"라는 곡이다. Jussara Silveira가 불렀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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