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자 어빈 얄롬 | 역자 임옥희 | 출판사 리더스북 (2006)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명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브로이어는 잠시 진료를 접고 베네치아에 와서 휴식중이었는데, 루 살로메라는 니체의 친구임을 자처하는 여인이 와서 니체의 절망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찾아와서 부탁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치료해달라고...

"니체는 자신을 종종 '사후 철학자'라고 부른답니다. 세계가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철학자라는 뜻이죠. 사실상 그가 계획하고 있는 새 책은 바로 그런 주제와 더불어 시작하고 있어요.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는 지혜로 충만해 세상 사람들을 계몽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세상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예언자는 자신이 너무 빨리 왔다는 걸 깨닫고 자기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게 돼요."
......
"제가 선생님께 치료를 부탁하는 건 니체 교수의 절망이지, 그의 육체적 질병이 아니예요"
......
"설령 제가 설득해 진찰을 받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에 관한 치료에만 한정할 거예요. 천년이 지난다 해도 그는 결코 박사님께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진 않을 거라는 거죠. 그는 나약함과 권력에 완강한 입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결국 브로이어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빈으로 돌아와 진료실에서 다시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니체와 또 한 친구 파울 레와 함께 사귀고 있었다. 삼각관계인 셈이다. 그러다 니체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고 결국 둘 사이는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니체는 절망하며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루 살로메는 브로이어에게 결코 자신을 만났다는 사실을 니체에게 알게 해선 안된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브로이어에게 당신과도 지적인 깊은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브로이어 또한 이 매력덩어리인 르 살로메에게 점점 이끌림을 당하는 것을 극구 자제하고 있다.

"니체는 권력의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하죠. 자신의 권력을 타인에게 굴복시키는 과정으로 인식하면, 그 어떤 것도 거부할 거예요. 그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매료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아고니스 개념에 빠져 있지요. 아고니스라는 개념은, 인간은 투쟁을 통해서만 주어진 본성을 심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투쟁을 포기하면서 이타주의를 내세우는 사람의 동기를 정말로 불신한답니다. 이 문제의 스승은 바로 쇼펜하우어예요. 그의 지론은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자 하지 않는다는 거죠. 서로 돕기는 커녕 오히려 타인을 지배함으로써 자기 권력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는 남에게 굴복당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어요. ... 지금은 저와의 관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고요."

브로이어에게는 절친한 후배 의학도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로이트다. 브로이어는 프로이트와 꿈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루 살로메와의 만남과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다. 드디어 니체가 브로이어의 진료실을 찾아오는데 작은 논쟁이 벌어진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너 죽을거야'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브로이어는 죽어가는 환자에게 그래도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은 의심과 회의를 통해 도달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어린애 같은 소망을 통해 도달되는 게 아닙니다! 신의 손에 모든 걸 맡기겠다는 환자의 소망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건 단지 유치한 아이의 소망에 불과합니다. ... 죽지 않으려는 소망이자, 우리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영원히 부풀어있는 젖꼭지일 따름이지요.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신의 불필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 우리가 신을 창조했다, 지금은 우리 모두 합심해 신을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
거룩한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입니다! 자기를 탐구하는 것보다 더욱 신성한 행위가 있습니까? 제 철학적인 작업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반박하겠지요. ... 그렇지만 화강암처럼 단단한 문장이 하나 있어요. 바로 '너 자신이 돼라'는 겁니다. 진실 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브로이어)"어쨌거나 오늘 아침 제 환자의 경우는요? 그의 선택의 범위는 뭡니까? 신을 신뢰하는 것 또한 그의 선택이 아닌가요?"
"그건 인간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건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자기 바깥에 있는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지요. 그런 선택은 타자를 위한 선택이며, 초자연적인 선택이어서 언제나 인간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
"나의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제우스가 넣어두었던 악의 세력들이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는데, 거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최후의 악이 바로 희망이라고 했지요. 그때 이후로 인간은 판도라의 상자와 그 안에 담긴 희망을 행운이 담긴 귀중품 금고쯤으로 오해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제우스가 뭘 소망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끝없이 고통받기를 원했으니까요. 희망은 악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끝없이 연장하니까요.

브로이어는 니체와의 대화에 강한 인상을 받고 니체가 남기고 간 두권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생각은 우리 느낌의 그림자다. 언제나 어둡고 더 비어 있고 더 단순하다.
......
해방의 봉인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
뼈와 살, 내장과 혈관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동요와 열정은 허영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견딜 수 있다. 허영은 영혼의 살갗이므로.
 
어느 날 브로이어는 다시 프로이트와 만나 이 철학자의 증상과 그가 말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에 대해서 다시 의논하기 시작한다. 니체의 책에 있는 몇몇 글들을 인용하면서...

"너무 가까워져서 우리의 우정과 우애에 장애요인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우리 인생에도 있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작은 다리 하나밖에 없었다. 당신이 그 다리 위에 막 올라서려고 하는 찰나, 내가 당신에게 요구했다. 다리를 건너 내게로 오고 싶어?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다리를 건너고 싶지 않게 된다. 내가 다시 한 번 요구하자 당신은 침묵을 지켰다. 그때 이후로 산과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우리 두 사람을 가로막고 서로를 떨어뜨려놓았다. 심지어 우리는 함께 있고 싶은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작은 다리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북받쳐 할 말을 잃고 눈물 흘리면서 놀란다."
...
(브로이어)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지그?"
(프로이트) "정말 기이한 얘기군요. ...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려는 그 순간, 말하자면 타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상대방을 자신의 계획대로 따라오도록 유도하게 된다 이거죠. 그러면 이 사람은 그 다리를 건널 수 없게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요. 외관상 권력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걸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거죠."  
(브로이어) "... 이 책의 다른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네. '우리는 우리의 비밀을 아는 사람에게 증오를 느끼게 된다. 그들이 따스한 감정으로 우리를 사로잡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감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다시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말일세."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에게 니체의 모든 병은 의식 저 뒤쪽에 있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고, 그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고 조언해준다. 브로이어는 의학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식 저편 이야기를 꺼내는 프로이트에게 비판을 하면서도 그의 말을 염두에 두고 니체를 다시 만난다.

"... 정신은 하나의 실체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일부는 다른 부분과 완전히 독자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거든요. 아마도 나와 내 몸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 공모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시다시피 마음은 뒷골목과 몰래 드나드는 들창문을 좋아하니까요."
브로이어는 니체의 진술과 그 전날 말했던 프로이트의 입장이 너무나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
"사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본능에 따라 살아가거든요. 아마도 의식적인 정신적 재현은 사후에 가공된 것들일 겁니다. 우리에게 권력과 통제라는 환상이 심어진 이후에 뒤따라오는 생각들이라는 거지요.... "
......
"내 책을 읽어보았을 테니까 아시겠지만, 내 저술이 성공한다면, 그건 ... 무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위안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를 고립시켜 막강한 악의 경향과 맞서고 기꺼이 그렇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구와 학문은 회의와 더불어 시작합니다. 그러나 회의는 성격상 많은 스트레스를 요합니다. 오직 강자만이 그것을 견딜 수 있지요. 사상가에게 진정한 질문이 뭔지 아십니까? 스트레스를 제거하려는 박사님 환자들의 열망, 즉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열망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이런, 프로이트가 조언한 해결책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바로 니체는 그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신의 지적 탐구와 존재에 대한 완전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포기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엄청난 고통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포기할 수 없다니! 브로이어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다. 결국 심한 말다툼과 함께 니체는 진료를 포기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내일 당장 이 곳 빈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니체는 진료실을 나간다.
그 다음날 새벽! 니체가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니체가 죽어간다면서 찾아왔다. 그는 니체에게 응급처치를 한 후 니체를 머물게 할 요량으로 이상한 거래를 제안한다.

"한 마디로 간단하게 말씀드리죠. 교환을 하자는 겁니다. 다음 한 달 동안 저는 당신의 신체를 치료하는 의사 역할을 하는 겁니다. 오로지 육체적인 증상과 약물투여 문제만 집중할 겁니다. 그 대신 교수님은 내 마음과 영혼의 의사 역할을 해 주십시오.
...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닙니다. 낯설고 야비한  제 마음은 끊임없이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조하게 되고, 제 인격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아내와 자식을 보살피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다는 원망이 들거든요. 저는 용기도 없어요. 제 인생을 바꿀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살기도 그렇고.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집착할 뿐이지요. 날마다 우리는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면서도 막상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마음속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니체를 머물게 할 요량으로 제안한 거래지만 브로이어의 속마음은 진실이 담겨 있었다. 니체는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
니체와 프로이트가 동시에 소설 속에 등장한다. 평소 관심만 있었지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두 거장이 한 얼타래로 얽히는 이 소설 자체가 나에게는 매력덩어리이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 속에서 일단 반 정도를 읽고나서 내 나름대로 향후에 곱씹어 볼 요량으로 몇 문장을 옮겨 봤다. 과연 니체-브로이어-프로이트 간에 어떤 논쟁이 오고 갈 것인가? 정말 두근두근 거린다. ^^  

함께 듣는 음악은  So Pra Contrariar (쏘 쁘라 콘뜨레리알, SPC)의 "Acustico"(2001)앨범 중 1번 곡 "Out Door / E Bom Demais"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