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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 또한 가슴속 시큰한 통증과 함께 코끝이 벌름거려지고 왼쪽 눈에서 먼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할아버지가 '워낭'을 손에 들고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가끔 맑은 워낭소리가 울리며 "이 영화를 우리를 위해 고생하신 이 땅의 아버님, 어머님과 소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엔딩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옵니다. 

"너 울었지?" 
"우는게 뭐 어때서?"  
"아니, 누가 뭐랬어? 울었냐구만 물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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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살고 있는 누나가 방학을 이용해 잠시 서울에서 있는 연수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집에 묵었습니다.
"눈큰이가 누나한테 저녁 사준다는데 시간 좀 내줘"
"음~ 그럼 이렇게 하자. 홍대에서 저녁을 먹고 마침 좋은 다큐 영화를 하니 그걸 같이 보자" 
"영화? 홍대에서?" 
"어. 상상마당에서 하는데 꼭 보고싶었던 다큐멘터리야" 
"제목이 뭔데?"
"『워 낭 소 리』" 


평일에는 둘 다 직장인이랍시고, 그런대로 적당히 지쳐서 집에 들어와 널브러져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게 우리 부부의 일상입니다. 더구나 눈큰이의 경우는 일주일에 며칠은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니 ... 가끔, 그러니깐 한 석달에 한 번씩 정도는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곤 할 뿐이죠. 주말은 안토니오를 만나러 지방으로 내려가구요.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영화, 연극, 공연 등의 문화생활'은 이미 옛날 얘기가 된 지 오래입니다. 
직장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면 '내가 어제 최신 영화를 봤는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그건 지하철 역앞에 있는 비디오 가게에 있는 한 1~2년은 족히 된 DVD를 말하는 거라는 건 이젠 다들 이해하고 넘깁니다. ^^;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본 우리의 최신 영화(^^;)는 로빈윌리엄스가 나오는 '어거스트 러쉬'와 조지 클루니가 출연하는 '마이클 클레이튼'이었어요. '마이클~'의 경우 눈큰이는 영화 시작 30분도 안되서 곯아 떨어지고, 저는 이미 기스가 갈 때로 간 디브이디라서 그런지 끝에서 그 살인을 지시한 여자와 조지 클루니가 나누는 이야기 장면부터는 아예 화면이 정지되서 보지도 못했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끝나는 건지... 끙~ 
그런 차에 누나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영화 한 편을 추천했습니다. 


1월 15일. 그날이 바로 이 영화 '워낭소리'의 개봉 첫날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상상마당 지하 4층에 있는 극장에 입장한 시간은 7시 55분 정도? 
팜플릿을 보고 있자니 옆자리에 앉아있는 중년의 남녀가 이야기하는 대화가 자연스레 귀에 들려왔습니다. 
"난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왔잖아. 그래서 친구가 무슨 영화보냐구 그러길래 제목은 생각 안나구 '왜 있잖아. 그거~ 그 인간하구 소 나오는거' 하니깐 '그게 뭔데?'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아이 참~ 그 왜 인간하구 소하구 사랑하는 영화~' 그랬더니 대뜸 소리를 지르며 '무슨 그런 이상한 영화를 보냐?' 하더라니깐?"
"니가 잘 못 설명해줬네. 오해할 만 하다."
옆에서 나도 쿡쿡 웃었습니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포스터




팜플릿에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워낭 : 명사,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영화는 영화 끝 장면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가 한 오래된 워낭을 손에 들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워낭소리와 함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005년 모내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시절로 갑니다. 
다 지칠대로 지친 소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것조차 위태로와 보입니다. 그 소의 나이는 그 해 39세였습니다. 나보다 많은 나이죠. 그 소의 주인인 할아버지는 연세가 80. 오직 40년 가까이 저 소와 함께 새벽부터 일어나 농사일을 해 오신 경북 봉화에 있는 한 산골 마을 토박이 농사꾼입니다. 할아버지도 다리 한 쪽을 거의 못쓰셔서 지팡이를 집고 다니시면서 벼를 심고, 밭을 가꿉니다.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농사 도구가 늙은 소죠. 할아버지 또한 몸이 지칠대로 지쳐 소리도 잘 못 들으시고, 눈도 가물가물하십니다.
"할아버지, 이 소 이제 1년 밖에 못 삽니더"
소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온 수의사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보통 소의 평균 연령은 15세라고 하니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젠 다 커서 모두 떠나버린 그 노인네 집의 자식들보다 더 오래 산 셈이죠.
 그렇게 영화는 그 노인과 그 소와 함께 생활하는 1년을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매번 할아버지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 밭에서 꼴을 베고, 나무를 하고 또 소는 소대로 지쳐버려 언제 쓰러질 지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영화 내내 관객의 가슴을 졸이게 만듭니다. 

#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아직 소개시켜드리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 소와 할아버지의 위태위태한 순간들의 긴장감을 덜어주며 우리에게 풋풋한 웃음을 선사하는 이삼순 할머니, 그러니깐 할아버지의 부인입니다. 연세는 77세.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저 양반 소랑 결혼했어!'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소 팔어"라고 외쳐댑니다. 
불편한 다리를 가진 할아버지와 다 늙어가는 소를 대신해 죽어라 일만 하는 분은 다름 아닌 할머니. '기계를 사서 밭을 경작하자', '농약을 쳐서 일 좀 덜자'고 고래고래 김을 매며, 벼를 심으며 불평섞인 외침을 지르는 할머니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아이고 내 팔자야'로 끝나버립니다. 그 말씀이 어찌나 구수한 지 관객들은 언제 불행이 올지 초긴장하다가도 그만 박장대소를 터뜨립니다.  할머니는 카메라 찍는 감독에게 말합니다.
"농약치면 소한테 (농약친 꼴을) 못 먹인다고 저랜대요. 이이구 소 귀한 줄만 알고 마누라 귀한 줄은 모르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할머니께서 말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건지 못들으신 척 하는 건지 가만히 촛점없는 눈으로 힘겹게 숨을 토하시는 할아버지는 유독 늙은 소의 목에서 울리는 워낭 소리만 들리면 다 꺼져가던 눈빛이 반짝거리며 시선이 바로 소에게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소를 위해 꼴을 베고, 소 여물을 끓입니다. 그렇게 40년입니다. 세월은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 질긴 인연의 줄을 워낭과 함께 소 목에 둘러져 있는 오랜 가죽 끈처럼 질기디 질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결국 명절에 집을 찾은 자식들은 '이렇게 일하시다가는 안되겠으니, 이젠 소를 팔자. 소를 팔아야지 아버지가 일 안하실 거 아니냐' 하면서 소를 팔기로 자기네들끼리 결정해버리고, 할아버지는 결국 소를 데리고 우시장엘 찾아갑니다.   
우시장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소를 보면서 다 비웃습니다. '누가 이딴 소를 사요?' '거져 줘도 안사요.' '질겨서 어디 먹기나 하겠어?' '장사 방해하지 말고 어서 가이소' 하면서 비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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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리 외할아버지 댁에서도 소를 키웠습니다. 외할아버지 댁은 그 마을에서는 많은 논을 소유한 가장 큰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외할아버지 논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외할아버지 집 주변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중풍으로 오래 앓으시고 계셔서 내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찾아간 외할머니 댁은 덩치는 컸지만 왠지 황폐해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어요.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댁의 모습은 이미 급작스런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외할머니의 중풍 병환으로 가세는 기울기 시작한 이후였죠. 그 때 안방에 혼자 있으면 중풍으로 누워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웃는 표정같기도 하고 우는 표정 같기도 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시는 게 무서워 대청마루로 나와 그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영'이라는 이름의 개였는데, 무려 14년을 살았답니다)와 놀거나 외양간에 있는 소에게 짚을 먹여주곤 했는데,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우적우적 짚을 순식간에 입 안으로 빨아들이는 게 재미있어 일부러 서로 밀고 당기며 소와 장난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아침이 되면 군불을 땐 가마솥에서 나던 그 구수한 여물냄새가 어찌나 좋았는지, 그리고 소는 어찌 그리 맛있게 먹는지, 여러번 나도 저 여물을 먹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그 때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떠올랐어요. 고스란히...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소가 결국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다그쳐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다급해집니다.  
"할아버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결국, 임종의 순간입니다. 
소의 죽음을 눈앞에 둔 할머니는 "에이고, 주인 잘 못 만나 너도 참 고생 많았데이" 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평소 말이 없던 할아버지께서도 결국 한 마디를 하십니다. 
"좋은 데 가거레이"
소는 그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눈을 몇 번 천천히 껌벅이고는 ... 

이 마지막 순간을 글로 옮기면서도 가슴 속이 울컥해져 옵니다. 


영화가 끝나고 택시를 탔습니다. 
앞 보조석에 앉아 내가 이야기합니다. 
"영화 끝나고 기억나는 말들이 할머니가 하신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마른 논에 물 들어오는 거 하고, 자식들 입 속에 밥 들어가는 거,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딛노' 하는 대사하고 할아버지께서 소에게 마지막으로 한 '좋은 데 가거레이'라는 말야"
그러자, 갑자기 택시 아저씨가 끼어듭니다. 
"그 영화 볼 만 해요?" 
"아~ 네~ 아세요?" 
"네. 김미화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그 감독인가랑 인터뷰해서 들었는데, 나도 낼 모래 휴일인데 그거 한 번 보러갈려구요." 
"아~ 네~ " 
나는 차마 그 영화가 '재밌다'. '볼만하다'라는 표현으로 말 하기가 머뭇거려졌습니다다. 
왠지 그런 표현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표현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시간 되시면 꼭 보세요." 


벌써, 이 글을 쓴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어요. 영화시간 보다 더 길게 생각하고 더 오래 그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쓴 셈입니다.  장면 장면 하나 하나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세대의 이야기, 환경의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이야기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내가 다 소개시켜 주지 못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준 마지막 감동적인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꼭 영화관을 찾으세요. 꼭요~ ^^


함께 듣는 음악은 Rod Mckuen의 『After Midnight』(1988) 앨범 중 5번 곡 'Solitude's my home'입니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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