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윌킨스 / 김홍수영 옮김 / 후마니타스(2008)

'평등해야 건강하다'? 영어 원제는 "The impact of inequality"(불평등의 영향)이다.

너무 뻔한 제목을 붙인 것은 일단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굵직한 책 한 권 공부하는 셈 치고 선택했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영국 노팅엄 대학의 사회역학 교수로 재임 중인 리처드 윌킨스는 국가간, 국가 내에서의 지역간, 선진국간 불평등의 정도에 따라 사망연령대가 달라진다는 여러 통계자료를 이용하면서 불평등이 기실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일찍 죽게 만드는 일종의 눈에 띄지 않는 살상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또한 불평등으로 인해 저소득층들은 현대의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며 그로 인해 각종 혈관 질환 및 비만 등의 여러 질병을 앓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곧 불평등이 심한 국가, 지역일수록 그 사회는 질병에, 폭력에,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실종에 심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 불평등을 경험한 아이들의 경우 성장해서는 그 후유증을 심하게 겪게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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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이전 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안락, 사치, 안전을 누리고 있지만, 마치 지금 이 상태를 견디는 것조차 힘들다는 듯이 '스트레스'나 '생존'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내뱉곤 한다. 과거에 비하면 노동은 육체적으로 훨씬 수월해졌고 물리적인 근무 시간도 단축되었다. 그러나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병가를 내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 이제 어디서든 우리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인내력과 대처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고 느끼며, 살아갈 의지를 포기하거나 쉽게 망상에 빠지고, 소외되어 혼자 지내거나, 때로는 괴상하고 위험한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기실 우리의 생활은 이전 아버지, 어머니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해졌다. 대중교통을 포함한 이동의 편리성은 이전 반나절이 넘게 쌀가마를 지고 산을 몇등성이 걸어서 넘어야 했던 아버지 세대의 고단함과 팍팍함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전염병이나 질병에 의한 사망률 또한 획기적으로 낮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정말 '살기가 힘들다' '각개전투로 살아가는 전장터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등 삭막한 말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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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매우 중요한 사회 지표인 이유는, 한 인간이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며 고통스러워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질병에 걸릴 위험의 정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의 심리사회적 측면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사회적 의미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고혈압, 동맥경화증, 혈관 질환의 비율이 놀랄만큼 높아졌다고, 그 원인이 바로 이 스트레스고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불평등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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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당하고 고문당하며 실종되는 인권 침해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건강 불평등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어떤 무자비한 정권이, 건강 불평등으로 인해 줄어든 빈곤층의 수명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강제로 감금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은 감금보다 더 심한 사형 집행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 불평등을, 매년 정부가 자의적으로 상당수의 국민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인권 침해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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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더 자기중심적이고, 덜 친화적이며, 반사회적이고, 스트레스를 더 받게 하고, 폭력 수준을 높이며, 공동체적 결속을 약화시키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사회 전략들을 부추긴다. 한편 평등한 사회는 친화적이며, 덜 폭력적이고, 상호 지지적이며, 포용적이고, 좀 더 나은 건강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성격은 위 두 가지 특성의 혼합으로 이루어지는데, 혼합의 비율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우 유동적이다. 따라서 인간성은 타인에 대한 감정 이입이 제한적이며 공공선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반사회적인 성격에서부터 그와는 정반대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불평등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국 사회와 현재로서의 평등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가 줄곧 비교되곤 한다. 놀랍게도 미국은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경제 대국이지만 기실 사망연령에 있어서는 선진국들 중에서도 25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례가 인상적이다. 그 차이의 원인은 바로 불평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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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하고 위계 서열이 강한 사회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남성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이기 쉽다. 불평등한 사회는 반사회적이며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비단 인류만이 아니다. 서열이 중시되는 영장류 사회에서도 지배적인 동물에게 모욕을 당했던 동물은 자신보다 약하고 여린 동물에게 이른바 '전위된 공격 행동displaced aggression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 테오드르 아도르노 Theodor Adorno는 나치의 희생양이 된 유대인들을 연구하면서 이런 부작용을 '자전거 타기 반응'bicycling reac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왜냐하면 강력한 서열 체계를 가진 권위주의적인 사회 구조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전거를 탈 때의 자세처럼 윗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는 반면 아랫사람들은 발로 차서 뒤로 넘어뜨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왜 여성이나 종교적,인종적 소수자가 더 심한 차별을 당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자전거 타기 반응'에 의해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성적 차별, 인종적 차별, 계층별 차별 등 갖가지 차별이 더 극성을 부린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이고 배타적인 풍토가 자리잡게 된다. 우리 한국의 상황과 바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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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증가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다. 불평등은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기며,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소비에 집착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이는 계속 솟구치는 경제 성장, 자원고갈, 환경오염으로 이어졌다.


불평등이 과도한 소비성향을 부추긴다는 건 참 독특한 발견이었다. 환경오염의 문제가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대, 과연 그 해결책을 찾는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작가는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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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보다 사회적 자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소득 불평등이 사회적 자본을 피폐하게 만든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는 불평등 때문에 생기는 불의들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형편없는 사회적 자본도 불평등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회는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적 자본이라 함은 구성원간의 신뢰, 연대의식 등을 총칭해서 쓰는 용어인데, 결국 한국사회에서도 '국민 통합'이야기하면서도 그 구체적 해결방안은 바로 시장에 모든 걸 맡겨버린다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나 의료보험제도 등 이것들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국가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장 기초적인 사회복지제도조차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 토크빌
사람들 사이에 계급이 거의 평등해서 모든 사람이 비슷한 사고방식과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개인들은 단번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속성이나 이면에 숨겨져서 드러나지 않는 비극 따위는 없다. 상대가 이방인이나 원수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상상은 곧바로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서게 할 수 있다. 평등은 상대방의 개인적인 일들에 동정심을 느끼거나, 동료의 육체가 찢겨 나갈 때 자기 자신도 그만큼 고통을 느끼게 해 준다.


토크빌이 본 초기 미국사회의 모습은 상당히 평등한 국가였다. 모두들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에 모여들었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평등했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쏟아낸 것이었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배려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 공공적 신뢰(사회적 자본)가 높아지면서 미국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다고 토크빌은 진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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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리 상태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며 인간 모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사회의 공통적인 관념, 그리고 자신의 감성적,심리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최근 들어 학계가 심리적psychological이라는 표현보다 사회심리적psychosocial이라는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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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해치는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대부분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일을 통제할 만한 권력과 자원이 없을 때, 어떤 일 때문에 열등감이나 적대감을 느끼고 우울해질 때, 자신을 지지해 주는 친구가 없을 때, 우리의 건강은 쉽게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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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 핵심에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평가하는 성찰적 존재이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며, 타인은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대학 다닐 때 사회심리학이라는 심리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난 답답함을 느꼈다. 인간은 분명 사회적 맥락 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모든 것을 개인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이상 나눠지지 않는(in-divide) 개인을 상정하는 서구의 합리주의 세계관에도 일정정도 변화가 필요하고 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인간의 존재를 말 그대로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해왔던 동양적 세계관이 다시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고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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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적 연구들은-평범하거나 미련하거나 못생겼거나 열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을 포함하여-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태도가 현대 사회에서 만성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녀를 둔 학부모가 갖는 스트레스 또한 다른 아이들 또는 학부모들과의 비교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남들과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경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그만큼 따라잡거나 유지할 간극이 크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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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을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놀랍게도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 자살과 폭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갈등이 많은 공격적인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러나 사회질서가 안정되어 있고 도덕적 권위가 높은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탓한다. 사회적 위계질서가 뚜렷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갖게 되는 수치심으로부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나 또한 이런 결과치가 의외로 다가왔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살기가 팍팍해서 자살률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읽고 보니 과연~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유행인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탓, ~때문이라고 비판만 하고 실질적 대안은 내놓지 못하는 한국의 지식사회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가만, 그럼 결국 지식인들의 이런 공허한 경향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해결책은 불평등을 줄여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나? 그렇게 되면 정말 학문적 논쟁이라는 구도가 생겨나고 학자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문풍토가 조성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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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처럼 소득 불평등은 크지만 절대적인 계급 분업이 존재하지 않는 이런 사회는, 아마도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계층적 편견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속물근성,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의 문제, 인종적 편견, 일만 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경험, 개인적 야망과 주식시장의 이윤에 의해 굴러가는 체계,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불합리함, 자기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는 문화적, 교육적 전략, 우울, 폭력, 마약, 학습과 행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모두가 낯익은 모습들이다.
나는 이런 사회에서 느끼게 될 감정을 독자들 대부분이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추측이 옳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달리 말하면, 근대적 계급 체계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과 그것의 문화적 표식이다. 소득 격차가 클수록 지위 격차가 커지고, 분업이 확대되며, 편견과 차별, '우리'와 '그들'의 구분, 우월감과 열등감이 심화된다. 불평등이 계급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관계가 열악해지는지, 그리고 소득 불평등을 줄이려면 왜 계급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근대적 계급분화를 만들어 낸 불평등을 살펴봐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든다.


더이상 마르크스가 말한 '대자적 의식을 가진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더 근원적인 문제는 계급타파가 아닌 불평등에 있다는 강조를 하고 있다. 앗~ 헷갈린다. 이전부터 신분적 계층이 존재하고 불평등이 존재했고, 그게 고스란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소유구조에 따라 착취구조로서의 계급이 생겨나고 불평등이 심화된 게 아닌가? '근대적 계급분화'의 원인은 불평등에 있다? 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쨋든 현재의 계급이라는 개념이 더이상 현실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이 불평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그 설득력과 파급력이 더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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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커질수록, 우리는 서로 돕는 협력의 전략에서 권력과 공격에 기반을 둔 경쟁의 전략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행복이 점점 개인의 물질적 성취에 따라 결정되고, 사회적 관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듦에 따라 인간관계는 좀 더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서로 신뢰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활동에서 멀어지며 공격적 성향이 보편화된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을 때 분노와 수치,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보면 완력과 공격성을 통해 사회적 서열이 결정되었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도 사회적 지배와 복종의 심리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평상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그 원인을 '돈'에서 찾았었다. 돈 자체가 사람과 사람간의 지속적인 관계를 쉽게 끊고 어디서든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개인주의를 널리 확산시켰고, 돈 자체는 토지와 건물 등과는 달리 그 소유의 한계가 끝이 없고, 끊임없이 모든 상품 및 심지어 사람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그 본연의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개인으로 하여금 끝없이 모으려는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불평등에 앞선 출발점으로서 다뤄져야 한다. 이미 화폐경제의 출현 자체가 불평등 이전에 인간관계를 좀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화시킨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저자와 견해를 달리한다. 단, 통제되지 않는 화폐경제로 인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그로 인해 경쟁적 성향과 공격적 성향이 늘어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폐경제를 종식시키는 것만이 대안인가? 난 지금 이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건강악화, 공동체적 유대감의 상실, 소비욕의 증가를 통한 환경파괴 등 지극히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난 당신처럼 궁극적으로는 '화폐경제의 종식'이 해결책이 될 거라는 그런 허접한 이상주의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조금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란 말일세"
라고 ... 할말 없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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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남성의 주도권이 강하며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불평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사망률이다. 마찬가지로 남성들 간의 사회적 관계가 여성들의 사회적 관계보다 불평등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는다. 달리 말하면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남성들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 중심적 지배 체제에서 높은 지위의 특권을 누리는 남성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과열된 지위 경쟁은 남자다움masculinity을 계발하고 과시하도록 부추긴다. 지위 경쟁은 남성들에게 남자라면 모름지기 강인해야 하며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강건해야'한다고 압력을 준다.
......
남성들 사이의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들이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성들보다 처지가 못해서만이 아니다. 자신이 낙오되었다고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 특히 배우자를 복종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욱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는 하향식 차별이라는 좀 더 폭넓은 과정의 일부다. 패배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여성이나 인종적 소수자, 혹은 지위가 낮은 소수자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손상된 자존감을 되찾으려 한다.


대학 2학년 때였던가? 1학년 때였던가?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읽었던 책이 아사노 마코토라는 일본 정신과 의사가 지은 "그래도 남자는 울 수 없다"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책의 내용은 공적 사회영역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거기에 나오는 환자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 그들의 스트레스의 일정정도를 나도 조금씩 갖고 있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그만큼 여성들의 공적사회진출을 막고 여성들을 차별한 만큼 결국 그만큼의 짐을 더 지게 된 결과라고 해석했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타기 반응'으로 낙오된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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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인종, 종교, 젠더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나누든 간에 취약 집단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평등한 사회에서 어떤 차이들은 전혀 편견이나 분열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격차가 우월과 열등이라는 기준에 따라 각 사회집단의 관계를 주도하게 될 때, 이런 차이는 심각한 공격과 차별의 표적이 된다. ... 우리는 린치같이 너무나 지독한 차별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이, 사회 상층의 온건하고 은근한 사회적 배제나 거만함과 함께 출발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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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성격에 적응하기 위해 그에 맞는 다양한 사회전략과 대응방법을 선택했다. 희소자원의 배분이 권력에 의해 결정되고, 약자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강자들이 배를 채우는 사회가 있다고 치자. 이런 사회에서는 하층 차별이나 편견처럼 자기의 우월감을 표출하려는 다양한 지배 행동이 판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되 다양한 성적 전략들이 사용될 것이다.
 한편, 자원이 위계에 따라 배분되지 않는 체계는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을 얻고, 불평등과 위계질서에 내재해 있는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협력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 때 인간은 호혜, 신뢰, 공정의 원리, 상호원조,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처럼 좀 더 사회적인 전략들을 수행할 수 있다. 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를, 돈과 지위보다는 사회적 자원을 통해 실현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력의 전략은 지배 행동을 제한하고 그 대신 좀 더 사회적인 분배 체계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이 양극단 중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중 복지 및 분배구조를 평등쪽으로 맞춘 국가들의 경우 위의 글 후자의 경우와 같은 특징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주목하고 있다. 자! 이제 불평등의 문제는 충분히 살펴보았으니 그 대안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살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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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재분배를 정부 권력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자주 원성을 사곤 했다. 정당하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득을 독재적인 권력을 사용해서 빼앗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웠던 것이다. 이 문제를 기본부터 민주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평등을 이루기 위한 일차적인 수단으로 더 이상 정부만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정부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자유와 배치된다. ... 시장과 생산체계의 사적 소유를 국가 관리로 대체하면서 이들 정부는 서유럽 정부들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적이고 노동자가 경영하는 기업의 숫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권력의 집중이 아니라 정확히 반대방향, 즉 권력의 이전과 민주주의의 확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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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미국 사람들은 평등은 반드시 자유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한때 자신들이 평등을 지향한다고 여겼지만, 이제 이들에게 평등은 과도한 국가권력이나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는 낯선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평등이 만약 사람들이 직장에서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면, 자유는 평등과 양립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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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많은 부문에서 시장 메커니즘-매매, 자원의 배분, 금전적인 인간관계-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의 사회적 폐단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다. 현대 사회가 시장없이 작동할 수 없다고 해서 시장이 낳는 부작용까지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정부 정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경제 조직과 직장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함으로써 소득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는 인간 해방을 향한 중대한 발걸음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임금 격차를 직접 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많이 갖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평등이 증가하게 되면 공동체 생활이 발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작가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결국 우리사주 주식회사처럼 노동자가 회사 지분의 51%이상을 갖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기업운영형태를 더욱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단지 이런 기업형태로 운영되는 조직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육성시켜 나가는 역할을 통해서 불평등을 해소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만 단기적 이익에 눈먼 개별 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의 배를 탄 구성원들이 공동체적 입장에서 조직을 경영해 나가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지나친 급여차이라던가, 지나친 불평등을 막을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 자본(신뢰)이 더욱 쌓여나간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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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줄여야 할 필요화 함께, 지위를 중시할수록 다른 사람을 경시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소수의 사람이 부유해지면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 이제 삶의 질은 사회적 환경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는 공적 인식이 필요하다. 사회적 환경은 사회적 분열, 편견, 배제라는 물질적 기반과 대립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사회적 환경에 민감한 이유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불안해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불평등, 임금 격차, 특권층의 봉급처럼 큰 문제들뿐 아니라, 개인들 간의 상호 작용이 갖는 특성,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무시당한다거나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가족, 학교, 직장처럼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타인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 세세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나 불평등의 문제 말고도 어린 시절의 경험, 친분관계, 통합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이 단순히 불평등을 경제적 영역에서만 다루었다면 설득력은 있으나, 그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이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불평등이라는 구조가 갖고 온 세부적인 현상들을 조목조목 다뤄가면서 그 해결책 또한 경제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활 문화 저변의 미시적 영역에까지 촉수를 드리우고 대안을 만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경제부문의 불평등의 약화에 있어 '노동자가 운영하는 기업형태'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국가가 이러한 형태로 기업을 유도하고 또 신생기업의 경우 이런 노동자와 경영자가 함께 운영하는 기업을 표방하고 실천하는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와 경영인이 함께 경영에 참여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대기업중심의 족벌경영체제가 한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한국의 열악한 경제구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이런 방향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혁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익에 눈먼 주주들이 돈을 쫓아 이곳 저곳 옮겨다니는 이런 시장의 위험성은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이 작가가 얘기하는 방식으로의 전환밖에는 없는 듯하다. 단지 더 늦기 전에 이런 논의들이 활성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근데, 갑자기 MB생각하니 이런 이야기들도 다들 공허해진다.

함께 듣는 음악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음악 모음집 "Chants Maoris"(2000) 중 8번 곡 "Pokare Kare Ana"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youtube에 해당곡이 없어서 분위기는 다르지만 Hayley Westenra의 음성으로 링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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