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 블로그를 기웃거리면서 감탄을 연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인간고수들이 도처에 널렸다는 것. 그것도 어느 평론가들 못지않게 책에 대한 평을 더 문학적으로, 더 진솔하게, 그 책들보다 훨씬 더 공감가게, 언어를 아끼면서 한 자 한 자 핵심을 찍은 것처럼 써내려간 글들로 덮인 블로그를 발견하면 내가 이 블로그를 만들면서 '공감이 있는, 울림이 있는 내 삶이고 싶다'던 바람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x팔림으로 어디 굴 속으로 숨어들고 싶어진다.

그러한 글들을 써내려가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고, 또 그러한 세심한 리뷰를 할 수 있도록 얼마나 정성껏 작품들을 읽어내려갔을 지 저절로 감탄이 흘러 나온다.

그런 고수들이 있는 하늘 아래서 나는 늘 나 스스로를 게으르게 굴렸고, 거기에 더해 난 생각할 만큼 생각해왔다는 망상에 젖어 산 지 오래되었으니 이런 낭패감을 맛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서 이전에는 절대 접할 수 없었던 일, 가령 똑같은 작품을 두고 짧은 시간에 다채로운 개인향기 물씬나는 리뷰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눈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요즘에 새롭게 책을 고르는 방식은 이런 인터넷의 장점을 십분 살려 결정한 것이다. 아니, 결정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평들을 읽으면서 어느 날 강렬하게 그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책을 주문한 날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신문에 실리는 책 소개 코너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책들을 고르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매주 책 기사에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라서 서점에 가면 점점 책 고르는 것이 힘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전 학교생활을 할 때는 등하교길에 작은 사회과학 서점에 들러 이것저것 들춰보는 버릇이 있어서 책 고르기가 수월했었다. 특히 돈은 많이 없고 시간도 많이 없을 경우에는 가장 쉽게 살펴보고 고르는 것이 시집이었다. 취직한 이후에는 큰 대형 서점에 가끔 가더라도 더 이상 내 끌림에 의해 시집을 고를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이 바빠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매말라져서일까? 지금도 한 해 전쯤 서점에서 골랐던 김지하 시집을 몇 편 읽다가 멈춘 지 오래다.

얘기가 샜는데, 다시 나의 요즘의 책고르는 방식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책을 읽고 나서 내 나름대로의 평을 하고 난 후 그와 관련된 블로그 글들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과 비슷하거나, 혹은 내가 전혀 염두해 두지 못했던 측면들로 책을 다시 새롭게 느끼게끔 하는 블로그를 발견하면 그가 읽은 다른 책들을 살짝 엿보고 읽고 싶은 느낌이 강렬하게 드는 책을 다음 읽을 책으로 고르는 식이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즐겨찾기를 해 놓은 블로그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모두가 정말 '사부'라고 부르고 싶은 고수들이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글을 통해 공감을 자아내게 할 수 있다는 그들의 능력이 너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나도 자극이 되어 자꾸 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글이라든가, 찰나의 생각들, 심지어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들도 되도록이면 잊어버리지 않고 메모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새로 생겼다. 물론 책 욕심도 이전보다 많아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데, 단점이 또 생겼다. 자꾸 그런 고수들이 남긴 자취를 더듬다 보니 정작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고수들의 글자취를 쫓는 일을 더 즐기더란 말이다. 또한 글쓰기가 예전처럼 수월해지지 않게 되었다. 자꾸 내 감정 그대로도 아닌 것이 무척 어설프게 글이 써지는 것이다. 마치 공부는 재미있게 해 놓고, 논문은 너무나도 딱딱하게 써내려갔던 것처럼 ...

고수 쫒아가다 가지랑이 찢어져 암것도 못하게 생겼다.

자고로 균형감각과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 문명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즐겨야 한다.

함께 듣는 음악은 Ithamara Koorax의 "Serenade in Blue"(1999)앨범 중 2번 곡 "Moon River"이다. '이타마라 쿠락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젠 익숙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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