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목)부터 헬스장에 가서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9개월동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다리에 근육을 붙이고 나름대로 옛 운동능력을 복원시킨다는 데 있지만, 실제로는 당장 시급한 뱃살을 빼는 것이다.
5월 초부터 보조기를 떼면서부터는 원래 입던 양복을 입고 다니는데, 세상에나 ... 그 사이 뱃살이 360도 구석구석 놀라울 만큼 성장하여 양복바지를 입으면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선적으로 런닝머신에서 약 40분동안을 잰걸음으로 걷고, 곧바로 다리 강화용 운동기구를 골고루 3회씩 반복하고 난 후, 시간이 남으면 상체운동을 약간정도씩 하는 걸로 잡았는데 하다보면 1시간을 훌쩍 넘겨버려 이 운동시간의 확보가 하루 스케즐 중 중요한 일이 되었다.

토요일, 일요일의 경우 안토니오를 보러 지방에 내려가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 어제같은 경우에는 쇠고기 협상 문제때문에 눈큰이와 함께 청계 광장에 가서 두시간 정도를 앉아서 촛불이 다 타들어갈때까지 구호를 외치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왔으니, 이 평일날조차도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상태로는 조만간 양복바지를 들고 옷수선집에 가서 허리를 늘려달라고 해야 할 판인데... 평소에도 놀라운 허리치수를 자랑했었는데 허리둘레를 또 늘리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눈큰이 또한 내가 운동을 못한 지난 9개월동안 병간호하랴, 집안 살림하랴, 직장생활하랴, 공부하랴 운동을 못하고 있던 차에 나의 운동 재기에 자극받아 어제 줄넘기를 사서 첫날 목표 50개를 가볍게 끝내버렸다. 오~ 그대는 아직 살아있구려. 다리 운동을 할 때면 다친 왼다리는 고작 5Kg의 무게도 버거워하며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바들바들 떤다. 아~ 어쩌다 내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래도 이렇게 보조기 없이 걷고, 심지어 헬스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다리를 다친 이후 달라진 것 하나는 내 몸에 정확한 일기예측기가 달렸다는 것이다. 오늘같이 찌푸둥하고 무언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에는 왼쪽 다리가 뻐근하고 약간씩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잠시 다리를 풀려고 밖에 나가면 그때서야 하늘이 찌푸둥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 뭐 이런 식이다.

한창 안토니오가 걸음마를 배우고 걷기에 재미가 들릴 무렵이었던 작년 8월에 다쳤으니, 그 활동량이 갑자기 늘어난 안토니오를 상대한 건 할아버지였다. 그 이후 안토니오는 아빠에게서 멀어졌다. 흑흑... 한참 안아주고 같이 뛰어놀아야 할 아빠가 다리가 다쳐있으니 자신에게도 썩 도움이 될 인간같아보이지 않았으리라. 놀라운 건 안아달라고 하더라도, '아! 아빠가 다리가 아파서 이제 고만 안자'하면 바로 몸을 비틀어서 내품에서 빠져 스스로 걷는 안토니오에게 늘 미안했었다. 가끔은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내 왼쪽 무릎을 어루만지면서 "아빠 다리 아포" 하면서 호~ 불어주기까지 하니 이런 순간이 되면 난 완전 감동하여 안토니오를 품 안에 터질 듯 끌어안고는 했다.

이제 다리가 많이 나아져 녀석을 다시 안아주고 목말도 태워주니 아빠에 대한 위상이 한껏 올라간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눈큰이의 부동의 1위 자리는 넘볼 수 없겠지만... ^^

실제 운동을 한 건 이틀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신감과 조만간 달릴 수 있다는, 그리고 기어이 이놈의 뱃살을 빼고 말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은 내 일상의 여타 생활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한다. 어제는 눈큰이가 줄넘기를 사자 마자 오늘은 50번해야지 했을 때, '어휴~ 며칠이나 가나 함 보자' '웃기지마! 오랜만에 운동하면서 무슨 50번을 한다고'라고 무심코 내뱉었다가 '선배는 요즘들어 무슨 말만 하면 비관적으로 말해. 특히 나한테 말할 때는 더 심해. 때론 옆에서 보면 다른 사람과 말할 때조차도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 것 같아'라는 쓴 소리 직격탄을 맞고 휘청했더랬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신경질이 부쩍 늘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무거워지는 매일매일에 화가나곤 했었는데... 하나의 습관이 되버린 것 같다.

재활운동을 계기로 내 마음도 다시 다잡아야겠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니... 끔찍하다. 내 뱃살보다 더...    

* 이 날적이를 썼던 날은 아마도 27일이었을게다. 그러나 그 이후 미 쇠고기 고시가 임박하여 매일 늦게까지 촛불집회에 나갔었고, 급기야는 어제 고시가 강행되어 또 밤늦게까지 거리에서 "고시철회, 협상 무효"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그러니깐 이번 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항상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안토니오는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를 해서 천상의 목소리로 나와 눈큰이에게 노래를 수십곡씩 불러준다. 전화기로 들리는 그 소리는 우리 부부의 하루의 피곤을 씻어주는 청량제이다. 하루 중 유일하게 안토니오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린들 어찌 마다하겠는가마는 확률이 낮다뿐이지 누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미 쇠고기를 통한 광우병 공포는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안토니오를 위해서도 반드시 막아야하겠기에 우리로 하여금 매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절박한 시민들과 함께 하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고시를 강행한 어제 하이힐을 신고 나간 눈큰이는 더이상 못겄겠다고 나자빠지고, 나또한 오늘 하루종일 다리의 통증을 느끼면서 지내야했다. 피곤할 때 생기는 입안 염증도 다시 도졌다.
결국, 체력이 바닥난 오늘은 시청광장엘 가지 못하고 일찍 집에 와서 쉴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만은 쉴 수가 없어 계속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는 등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아침일찍 안토니오를 만나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지만 그 지방에서 열리는 촛불 문화제에 안토니오와 함께 참여를 할 생각이다.
참, 예상은 했지만 이리저리 고달프게 만드는 이명박 정권이다.

함께 듣는 음악은 영화 "Innocence"의 Ost 앨범(2004) 중에서 Kimiko Itoh가 부른 12번 곡 "Follow 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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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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