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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결국 눈큰이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나 : 오늘 용산에 좀 들르자. 가슴이 너무 답답해
눈큰이 : 내일 가면 안될까?
나 : 어. 오늘 가야겠어.
눈큰이 : ... 그래

아침밥을 먹으면서 듣는 라디오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유독 그날따라 교통방송하듯 한강로 쪽이 꽉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안내 멘트가 많았다. 그 때만 해도 '무엇 때문에' 차선이 다 봉쇄되었는지 보다는 '차선이 다 봉쇄되었으니' 돌아가라는 안내 멘트만 기억이 났다.  사고가 났나?
그렇게 아침에 회사에 들러 인터넷으로 하루 세상 이야기를 잠깐 보기 위해 즐겨 보던 인터넷 언론사이트를 들어갔을 때 속보가 떴다.
'철거민 5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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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 기사에 '늦딸을 난 50대 가장'이 죽었다는 기사를 훑었다. 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내가 갖게 되는 강한 전이 현상이다. 그냥 '죽었다'는 사실보다는 더 힘들게 남겨질 그 늦딸과 그 엄마가 떠올랐다. 
오랜 동안 시당국에 적절한 생계 보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 누구도 새로 웅장하게 들어선 신용산역 앞에 이런 처절한 생존의 요구가 있으리라고 알지 못했고, 또 설령 알았더라도 그냥 스쳐 지나갈 작은 박스 기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는, 아무리 보도자료를 내면서 요청을 해도 어느 것 하나 보도가 안 나. 그런데 언론이 카메라 들고 올 때가 있어요. '화염병 들고 쇠파이프 든다, 내일 집회에서' 하면 공중파 3개사가 카메라 들고 다 쫓아오고, 언론이 다 들고 온다 말이에요. ... 이제는 뭐냐. "안되면 내 목숨을 내놓고 분신을 하든지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한다." ... 그러다보니까 정부는 '이러다간 잘못하면 진짜 누구 하나 죽겠구나.' 막말로 죽으면 사회적인 여파들 지들도 [감당해야 하니까], '아 이 문제 해결해야겠구나.' ... 최고조에 달했을 때 어쨌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러면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결국 폭도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언론을 타야 되는 거야, 언론빨을 받아야 되는 거야. 사회쟁점화시키기 위해서. (…) 그렇게 해야, 쟁점화돼야 결국은 뭐냐면 뭐라도 돌아온다는 거죠. 최소한. ...    [조영훈(가명), 42세, 노동운동가]   
                                                     -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창비,2007) 중 인터뷰 내용 중에서 - 

그들이 왜 그곳에 '골리앗'(망루)를 쌓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갈 일이다. 아마도 무참하게 진압한 그들도 왜 그들이 그 길을 선택했는지 모르지 않았으리라. 

출처 : 연합뉴스





눈큰이와 신용산역을 나와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따라가 그 참혹한 현장에 도착했던 것은 8시가 다 되어서였다. 첫눈에 시민들의 모습보다는 한강로 한 차선을 가득 매운 전경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시민들은 그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의 건물쪽 인도변으로 길게 빽빽하게 서 있었다.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화재 건물 앞에 섰다. 지직거리는 확성기에서는 울분에 찬 사람의 절규가 들려왔고, 곧 이어 한 시인이 목이 쉬어라 자신이 쓴 자작시를 부르짖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산산이 부서져 나간 그 건물의 위를 올려다보았다. 건물 사이로 뻥 뚫린 하늘은 그저 담담히, 조용히 어두워 있었다. '평온했다'라는 표현이 부적절한 줄 알지만 전경과 바로 코앞에 대치하고 있고, 확성기에서는 찢어지는 절규가 흘러나오는 그 순간 바라다 본 하늘이 왠지 평온했다. 
앞에서 국화꽃을 한 사람이 나누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그에게서 하얀 국화꽃 두 송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한 시대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빚진 마음을' 헌화와 묵념으로 대신하고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뒤에 섰다. 
그 때 즈음 집회는 종료가 되고 행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우리 바로 옆에서 심한 몸싸움이 붙기 시작했다. 그 전경들 수라면 여기 참여한 사람들을 가둬 토끼몰이식으로 진압하고도 남을 충분한 수였다. 몸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묵념하는 사람들은 그 건물 앞에서 꽤 오랜동안 서 있어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 뒤에 줄 선 사람들 중 어느 여성분이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서럽게 울었다. 서럽게 속으로 꾹꾹 참아내면서 울어 그 슬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상황이 점점 험악해진다. 눈큰이와 나는 결국 줄에서 빠져나와 그 건물을 가리고 있는 천에 구멍을 뚫고 국화 줄기를 우겨 넣는다. 그리고 잠시 묵념을 했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구두 밑으로 깨진 유리들이 서걱거렸고, 새벽에 쏟아부은 물 때문인지 땅이 질퍽질퍽했다. 어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냥 마음이 둥둥 떠있는...
등뒤 차로에서는 욕이 나오고 '저 새끼가 방패로 찍었어. 아휴 어떻게'하면서 사람들이 감정이 높아질대로 높아졌다. 눈큰이가 내 팔을 잡는다. 겁에 잔뜩 질린 눈이다. 새까만 전경들과 그 방패가 불과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가자. 자기야. 무서워' 
괜찮다. 이 사람들과 같이 있지 않느냐?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온 지 아직 한 시간도 안됐다. 마음 속에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순간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새벽 새까만 경찰특공대와 살수차 들로 빼곡히 들어선 저 곳에서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길을 빠져 나오면서 길 후미에 몇 몇 아저씨들이 보도블록을 열심히 깨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좀 가려주세요. 돌 좀 깨게' 하면서 씩 ~ 웃음을 짖는다. '저러면 안될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어둠 속에서 투석전이 일어나면 특히 시민들이 많이 다칠 것이 분명했다. 그 웃음이 별로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말릴 분위기도 아니었다. '사람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게 무서워 돌을 못 깨겠는가?' 그들은 몸으로 그렇게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 종종걸음으로 저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눈큰이를 따라서 걸었다. 또 다시 무기력해졌다. 
이 무기력함이 재촉하는 눈큰이에게로 자꾸 향하려 했다. 화가 막 치밀려고 했지만, 그런 나는 뭔가? 
험악한 지상에서 내 시선은 다시 그 휑한 건물을 훑었다. 
'저 ~ 저거 뭐야! 아이 저거 뭐야! 사람이 있는데 ... 사람이 있어... 어흑 이 새끼들아. 저기 사람있어. 사람있다구' 
오늘 회사에서 본 동영상에서 골리앗(망루) 속에서 갑자기 화염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카메라 옆에 있던 어떤 이가 말문이 막혀 짐승처럼 꾸억 꾸억 내뱉었던 말들이다.  
그러나 반 나절이 지난 지금 그 건물 꼭대기, 그 시커멓던 연기로 뒤덮였던 하늘은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멍~ 해진다. 


가슴 가운데가 꾹꾹 답답해져 찾은 용산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답답함은 더 심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한 많은 세상 잊고 편안히 잠드소서'라는 흔한 묵념 구절조차 마음속에서 읊어지지가 않았다.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을, 그리고 그 죽은 이 옆에서 또 더한 아픔과 고통으로 살아갈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들을 위해 무슨 위로의 기도를 할 수 있었겠는가 싶다. 
오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인 조세희 선생님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영상 기사가 실렸다. 

"30년 전 그 때만 해도 용역 깡패들이 철거민들을 향해 도끼를 들고 내려칠 기세로 달려들다가도 막상 그들의 눈과 마주치면 물러서고 그랬어. 자기가 때려야 할 사람이 인간이란 걸 그들도 감지한 거지" 
 

출처 - 프레시안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재개발이든, 주식투자든 뭐든 그만 우리의 탐욕을 놓아버렸으면 좋겠다. 살 땅 한 덩어리 없어 저리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 조금 더 배부르기 위해 하루하루 생존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하는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최소한도라도 살게 하자'는 이 너무나도 소박한 말이 이상주의적인, 세상물정 모르는 정신나간 말이라고 하지 말자. 

글도 마음도 힘이 없고 아프다. 그냥 사람들이 무섭다. 그 속에 낑겨 살고 있는 나도 무섭다. 
 

Sigvart Dagsland의 『Stup』(1994) 앨범 중 4번 곡 "Ild og vann"

출처 : 안토니오 서재

 youtube에서 해당 곡을 찾을 수 없어 다른 곡을 링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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