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포장마차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다.

포장마차에 대한 각인은 나의 대학생활로 올라간다.
지방이 집이었던 나는 한두달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갈 때 일찌감치 내려가기보다는 늦은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일찍 내려가 저녁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뵙고 식사도 하고 대학얘기를 풀어놓았을 법도 했을텐데 아무래도 그렇게 야간 열차를 타고 점점이 켜져 있는 불빛들 사이로 책을 읽으며 집에 내려가는 것이 멋스럽게 느껴졌었나 보다. 그러나 대부분 영등포 역을 출발하면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

역을 나서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붉은 천막들이 넘실대곤 했었다. 100미터 정도 양편에 늘어선 포장마차 속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일고 있었고, 사람들은 좁은 테이블에 앉아 빨갛게 무쳐진 무엇인가를 나무젓가락으로 휘져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나누는 들리지 않는 소곤거림 또는 큰 소리들은 왠지 삶의 무게가 있어 보였고, 그들의 휘어진 등은 포장마차의 붉은 빛과 어우러져 약간은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그곳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이면서도 그냥 두리번거리며 구경만 할 뿐 발걸음을 멈춘 적은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생이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일찌감치 군대를 간 나는 복한 한 후 외로움을 탔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자취집에 들어설 때 비탈길로 붉은 포장마차가 보였다. 물론, 마음은 안주 하나 시켜 소주를 들이켜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으나 정작 포장을 열고 들어가서는 "국수 하나 주세요" 하고 주변 두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힐끗 힐끗 구경을 하는 정도로 포장마차의 분위기를 익혔다.

그리고는 몇 번 포장마차에 들어가 국수를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술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나이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콜콜콜콜 따라보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포장마차 신이 나올때마다 눈큰이에게 "아~ 나도 포장마차가서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하곤 했는데, 드디어 어제 야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큰이와 함께 작정하고 포장마차를 들렀다.

추리닝 차림에 앞치마를 두르고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아줌마.
"수주, 맥주?"
"소주 주세요"
"안주는?"
"뭐가 맛있어요? 처음인데... " 정말 기대 만빵으로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드세요" 소주를 가져다 주며 너무나도 무덤덤히 말하는 아줌마때문에 기대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적어도 모락모락 나는 김처럼 온기있는 아줌마가 웃으며 손님을 맞으리라 기대했었나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마차 앞에 나열되어 있는 안주들을 살펴봤다.
역시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 솥과 유리판넬 속에 닭발, 오돌뼈, 소속을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꼬치, 제육 볶음, 닭똥집 그리고 왼편에 해산물이 몇 종류 보였다.
"오돌뼈하구요. 오뎅 한 그릇, 그리고 국수 하나 말아주세요"
눈큰이가 눈을 더 크게 뜨고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냐?"라고 묻는다.
"호기심이 앞서 너무 많이 시켰나?"
탁자는 오랜 세월 쌓인 기름때로 보기만 해도 찐득찐득한 느낌에 팔을 괼 수도 없었다. 눈큰이는 빈 속에 술마시지 않겠다고 하여 나 혼자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완샷을 한다.
차갑고 쓰린 느낌이 가슴으로 번진다. 캬~ 이런 맛이었을까? 밖에서 보던 포장마차의 술맛이?

옆 테이블에 손님들이 우르르 떠나자마자 우리처럼 남녀 한쌍이 들어왔는데 여자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화요일날 본 피디수첩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소고기 정말 못먹겠다'고, '이명박 정말 나쁜 놈인 거 같다'고, (그런 정치얘기는 자기는 관심없다고 심드렁하게 말한 남자에게) '너같은 놈때문에 그렇게 대통령이 국민들 무시하는 거다'라고 대거리를 해댄다.

붉은 포장 속에서는 이야기도 빨리 전염되나? 눈큰이와 나도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그리고 곧 있을 쇠고기 반대집회에 대해서 우리 후세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한 한시간 정도 앉아있었나 우리는 말보다는 놓여진 국수며 오뎅이며 오돌뼈를 엄청난 속도로 먹었다. 결국 안주는 바닥을 훤하게 드러냈는데 소주는 한 병을 채 못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마셔보는 소주가 쓰지 않아 몇 잔 연거푸 마셨는데 금방 얼굴이 붉어지고, 어느새 머리속에 심장이 놀러와서 펌프질을 해댔다.

눈큰이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안주 안까운 줄은 아는데, 술 아까운 줄은 모른다.
결국 깨끗이 비운 안주 접시와 바닥이 보일락 말락 하는 소주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마예요?" (아마도 싸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만팔천원요"
눈큰이는 포차를 나오면서 한 마디 한다.
"비싸네?"

집에서 꽤 떨어져 있던 거리였지만, 안토니오를 만나고 매번 서울집으로 올라오는 주말에 그 길을 지나면서 언젠가 꼭 가보자 했던 붉은 포장마차를 드디어 찾아갔지만, 호기심만 사라졌지 옛날의 그 마음에 그리던 따뜻함과 삶의 무게, 그리고 나즈막히 읊조리는 슬픈 사연들은 내 상상이 만들어놓은 포차의 추억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나중에라도 그 포장마차는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 몇 명과 함께 포차에 앉아서 웃고 떠들고 심각해하고 싶은 기대는 사라지지는 않았다.
포장마차... 아마도 평생 나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을테니...

ps. 포장마차를 들른 건 어제 밤의 일이었다. 맨정신으로 그 때의 기분을 살려서 내 심정을 풀어내자니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시다 남은 소주를 따라서 고추와 고추장을 안주삼아 홀짝 마시고 어그적 씹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눈큰이가 책읽다가  그 장면을 보면서 데굴데굴 구른다. ^^

함께 듣는 음악은 Angelo Branduardi의 "Branduardi Canta Yeats"(1986)앨범 중 1번 곡 "I Cigni Di Coo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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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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