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예를 들면, 선거 때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이 부동산과 교육 불평등 문제죠. 이게 젠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계급 문제와 교육(학벌)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을 다 강제로 취업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여성들이 교육수준은 엄청 높은데, 노동시장 진출률이나 그 질은 전 세계 최하위거든요. 그러면 그 여성들이 어디로 흡수되겠습니까? 노동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은 혹은 못한,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에서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그런 구조를 막아야 여성도 아이도 삽니다. 지금 교육을 통한 계급 고착화가 말도 못하게 심각하잖아요?


'서울대가 죽어야 교육이 산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일견 성역화되어 있는 서울대의 학맥과 인맥을 한국 사회에서 끊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곧 새로운 인맥과 학맥이 생겨날 터... 그럼 또 그 대학을 없애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었다. 사실은 이런 시각으로 교육문제를 바라보려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가뜩이나 차별받는 여자라는 젠더에게 가혹한 멍애가 아닐까 싶어 되도록이면 생각에서 지우곤 했다. 한 386세대 아이 엄마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한탄은 다음과 같았다. "옛날에 운동하던 친구들이 이젠 모두 애 엄마가 되었는데, 그 누구보다 아이 교육열에 더 열성이다. 옛날 대학 다닐때의 꿈과 이상은 온데간데 없고 사교육 시장을 부추기는 이들이 바로 386세대라는 것에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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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개 남자 아이에게는 하늘색 내복을 입히고 여자 아이한테는 분홍색 내복을 입히죠.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요. ... 그런데 문제는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때가 쏙 비트'라든가 '강력 슈퍼타이'같은 세제의 포장지는 다 푸른색이에요. 강력함을 나타낼 때는 푸른색을 쓰죠. 그런데 '울샴프'같은 섬유 유연제들은 다 분홍색이거든요. 어린아이들에게 성별에 따라 내복을 입힐 때는 그 자체가 사회적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지요. 그런데 푸른색이 힘을 상징하면서부터는 사회적 의미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남성성하고 연결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름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는,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종속적 범주로 만들어내는 모든 권력에 대해 저항할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 어쨋든 여성주의는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는 다양한 권력관계의 복잡한 맥락과 모순에 대해 사유하고 견디는 힘을 준다는 것이지, 무슨 문제를 갑자기 직접 해결하고 해소하려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차이를 종속적 범주로 만들어내는 모든 권력에 대해 저항할 것' 이것이 정희진의 책에서 관통하고 있는 흐름이라는 걸 느낀다.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읽을 때 모든 사회현상을 바로 이 프리즘을 통해 비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세탁기를 돌리다가 선반 위 세제통과 섬유유연제 통을 살펴봤다. 분홍빛 섬유 유연액과 푸른 알갱이가 눈에 띄는 세재가루를 잠시 바라봤다. 참... 세상은 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것 같다. 과연 이 권력을 금가게 할 틈이 있기는 한 걸까? 정희진같은 사람이 더 많이 나오고 그 독자들도 더 많아져야 한다. 메트릭스를 깨치기 위해서라도 ...

#3.
어떤 면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가 맥락적 사고를 못해서 망친 대표적인 정부잖아요. 노무현 씨는 정체성의 정치를 잘못 이해하셨죠. 경상도의 지역주의와 전라도의 지역주의를 같은 지역주의라고 봤기 때문에 (민주당과) 분당한 거죠. 그것은 마치 "남성도 성차별 당한다", "백인도 인종차별 당한다", "여학생 휴게실은 있는데, 왜 남학생 휴게실은 없냐", "왜 남성부는 없냐", "매 맞는 남편도 있다" 등등의 논리와 똑같거든요. 강자의 정체성의 정치와 약자의 정체성의 정치는 정치적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 그걸 같은 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죠.

 
늘상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객관적' 또는 '평균적' 잣대를 견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똑같이 양비론적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며 나 자신을 의심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 부산에서 그리 고생을 했으니, 그가 생각하는 지역감정이란 '(그것이 가해자의 감정이든, 피해자의 감정이든) 모두 해소하고 넘어가야 할 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늘상 했었다. 정말 정희진의 말대로 노무현은 '평균적 객관성'이라는, 사실은 몰역사적 시각에 빠져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역겨운 경상도 정치세력만큼이나 그에 대항하는 전라도 정치세력 또한 너무 오랜시간 대립각을 세우다 보니 서로 닮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남과 북이 지난 역사동안 거울효과처럼 서로 독재의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언제가 되서야 약자의 정체성의 정치로서의 전라도 지역감정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말이다. 

   
#4.
이론과 실천, 언어와 행동의 문제를 분리하고 대립시킨 것이 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하지만 이것은 분리되지 않고, 실은 어떤 면에서 언어나 인식이 물리적 현실을 생산해내지요. 마찬가지로 본능과 문화도 어떤 것은 본능으로 어떤 것은 문화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범주 자체가 문화의 영역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본능이고 어떤 것이 본능이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문화죠. 그렇기 때문에 본능이라는 영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요.


성욕을 본능이라고 규정짓는 사회에서 실제로 관심이 적은 남성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라는 말을 이 표현 전에 썼던 걸로 기억한다. 머리속으로 뭉게 뭉게 생기는 성적 관심은 저런 차를 한 번 타봤으면 좋겠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강제하는 상품 구매욕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5
어쨋든 제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는, 남성을 공격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잠시 남성에 대해 관심을 덜 갖는 것입니다.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남성의 관점으로부터 나를 정의하지 않고, 내가 나를 정의해보겠다느 거죠. 곧, 여성주의는 남성의 존재성, 그들의 역사, 그들의 권력을 상대화하고자 합니다. 남성을 미워하고 좋아하고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닐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난 남성이다. 따라서 여성주의라는 몸에 박힌 차별과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으면서도 멀게 느껴지기만 하는 그 불합리성을 도저히 머리속 이외로는 겪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표현대로 '교양 차원'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동등하게 평등하게 살자고 했던 결혼초기의 약속을 깨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를 갖고 난 다음 사회적으로 겪어야 하는 눈큰이와 같은 엄마들의 입장은 이미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벗어나 있다. 그저 옆에서 고개만 끄덕여주고 한숨 쉬어줄 뿐.

#6
연애와 성매매도 연속선상에 있잖아요? 결혼정보회사 문서를 보세요. 결혼정보회사에서 남자 신랑감 1등의 조건이 뭐예요? 직업을 1순위로 봅니다. 여자는 뭐예요? 1위가 외모예요. 더욱 놀라운 것은, 저는 두 번째라도 직업을 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집안이에요. 여자는 본인보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연애나 결혼은 성별화된 매력의 교환입니다. 성별화된 자원이 교환됨으로써 가부장제의 남녀관계가 조직됩니다. 그 성별화된 자원이란, 남자는 돈이나 기술이나 권력이고, 여자는 많은 경우에 외모나 몸이죠. 그런데 문제는, 몸과 기술에 대해서 사회적 평가가 다르잖아요. 몸은 유한하고 소모되는 자원이며 어떤 면에서는 경멸받는 자원이기 때문에, 돈이나 기술, 권력에 비해 사회적 평가가 낮죠. 그렇기 때문에, 돈이나 기술, 권력에 비해 사회적 평가가 낮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아무리 평등한 교환이 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것조차 불가능하지만, 어쨋든 그것이 성별화된 자원인 한에서는 이것이 성차별이며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 글 읽고 놀랬다. 1순위야 우리 사회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던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2순위가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이냐라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1년 전이었나? 회사의 한 후배가 나에게 읽어보라며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넘겨줬을 때에야 정희진이라는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쏟아내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확신있는 관점과 해석에 어안이 벙벙해지거나 혀를 내두른 경험이 있었다. 글 또한 참 재미있고, 단백하게 쓴다. 이번의 강의를 접하고 나니 그녀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다는 아니지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회사에서 틈나는대로 주섬주섬 읽었던 책이지만 생각보다 빨린 읽힌 책이다. 이 밖에도 '하종강', '박노자' 그리고 처음 알게 된 '고미숙'이라는 강사가 생각난다. 하종강 선생님이야 일전에 직접 그분의 강의를 접한 적이 있어서 몇몇 강의 내용은 중복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나 노동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새로울 것 없어야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었던 건 반가운 일이었다.

고미숙도 새로 알게 되었지만 이번 책소개에서는 의도적으로 뺏다. 언제가 그녀가 쓴 책을 꼭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되도록이면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빨리 구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제목은 비록 '21세기'라는 긴 기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바로 지금 이 시점에 적합한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별점 : 3.5점

함께 듣는 음악은 Tino Izzo의 "Greensleeves"(2002) 앨범 중 1번 곡 'Greensleeves'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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