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료 직원 문단호씨(가명)는 항상 단호하게 "앞으로는 ~ 하겠습니다", "그건 확실히 잘못된 겁니다" 등... 끝맺음이 확신형으로 끝난다. 직접 말을 들을 때는 화통하고 정말 저런 표현을 자신있게 한다는 게 부럽기만 하다.  

반면 소심쟁이 나는 항상 "앞으로는 ~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건 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등 끝이 항상 열려있는, 그래서 '소신 없는' 형으로 마무리 발언을 하기 일쑤다. 내가 무의식중이거나 의식중에서도 즐겨하는 소리이다.

언제부턴가 방송에서는 "~ 하는 것 같아요"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 ~합니다"로 바꿔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니 상황인즉, 문씨의 표현은 늘 부럽고 나의 마무리에는 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한 방송에서 팔라우에서 해양레저관광을 가이드하는 한 여인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녀의 모든 대답은 "~ 한 거 같아요"로 끝을 맺는다. 방송의 의도된 주제와는 다르게 나와 비슷한 표현을 너무나도 익숙하게 쓰는 주인공 여인의 말버릇이 형편없다는 생각을 방송 내내 계속 했다. 그치만 그녀의 삶이 결코 우유부단한 형이 아니었다. 그렇게 홀로 팔라우라는 곳에 가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정말 화나는 것은 확신형으로 말해놓고 실제로는 그에 대한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모습을 볼 때이다. 난들 왜 확신형으로 말하지 못하겠는가? 다 그것이 나 혼자 바꾸고 변화시켜 가기 어려운 상황의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 아닌가 말이다. 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 해도 절벽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을 많이 봐 온 내가 쓰는 상황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걸 다 떠나서 말이다.  단정을 짓는다는 것은 더 없이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어디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있는가?

근데, 마치 자기가 하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자신있게 말하고 나서는 나중에 가서는 그 action마저 취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나는 이 확신형의 표현이 과연 이 세상에서 옳은 표현인가 의심스러워진다.

세상은 자신있게, 확실하게 표현하라 하지만, 난 점점 이 세상에서 자신있고, 확실한 것이 있을까 의심스러워진다.

의뭉스러움 이것도 나약한 내가 세상의 네트워크에서 낑겨 살아갈 수 있는 한 방식 아니겠는가?

마치 그동안 남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봄'을 각인받아야 했던 여자들이 그 세상에서 견뎌내는 방식의 하나였던 '교태'처럼 말이다. 'Yes'와 'NO' 사이의 줄다리타기...

#2.

아끼는 후배 둘이 같은 날 한 시간 간격을 두고 결혼을 한다고 며칠 간격으로 연락을 해왔다. 엠에센을 통해서 결혼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중 한 후배가 내가 갔던 신혼여행 코스와 똑같이 동유럽을 여행할 예정이라고 해서 몇 해 전 나도 결혼했었고, 저 멀리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서 시간이 아까워라 하며, 오돌오돌 떨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잰걸음으로 돌아다녔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회사 서랍을 뒤져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청첩장을 찾아내어 다시 꺼내보게 만들었다. 서랍에 넣어둔 봉합되어진 청첩장을 뜯어 펼쳐본다. 낯이 뜨거워진다.

산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산을 더욱 사랑하게 된 남자가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음악을 더욱 사랑하게 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나무가 되고 싶어하고
그는 새가 되고 싶어합니다.

눈 녹는 산 속,
곧은 나무 하나에 둥지를 튼 새 한마리가
봄을 맞이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따스한 봄 볕 내리는 저 남쪽 00에서
서로의 꿈을 보듬어주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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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결혼하기 한 해 전이었나? 겨울 안면도 숲을 걸으면서 자신의 사후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난 그런 그녀때문에 그만 둥지를 튼 새가 되어 때로 느낄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다고 속으로 오래오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틀에 박힌 청첩장 인사말은 싫었고... 그 때 그 겨울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눈길 거닐며 얘기했던 이야기가 생각났고 영원히 다시 태어나는 새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천년만년 그곳에 나무로 서 있다면...  이 표현 하나나마 참 단호하게 쓰고 싶다. ^^;

함께 듣는 음악은 Newtrolls의 "Concerto Grosso 1"(1971) 중 2번 곡 "Adagio(Shadows)"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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