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출판사 (2007)


회사 정보자료실에서 집어들고 틈나는대로 회사에서 읽고 있는 책이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개최한 특강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다. 오늘은 첫번째 강사인 진중권을 소개한다.  

#1.
제가 이자리에서 말씀드릴 자존심은 일상적인 의미로 말하는 자존심, 예컨대 '내가 이런 지위인데, 어디에 가서 이런 대접을 못 받았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다'라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자기에 대한 존중'이라, 근데 그게 '내가 이런 지위인데...'와 별개로 논의될 수 있는문제일까? 가령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만을 꼭 끄집어내서 홀로 세워두고 정의내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2.
철학에서는 '존재'와 '실존'을 구별하는데, 존재는 그냥 있는 상태이고, 실존은 어떤 것이 자기 규정에 맞게 참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인간관계 망에 의해 만들어지거든요. 또 내가 갖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생각한 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이 이야기를 멋있는 말로 하면, 주체라는 것은 권력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래.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근데 그 사회망 속에서 정의내려지는 주체 속에서 어떻게 나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가 말이다. 니체가 그 속에서 절대적인 실존인 '나'를 찾고자 그랬던 걸까?

#3.
흔히 말하는 자율이란 게 사실은 내면화된 타율에 지나지 않고,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이 내 안에 들어와서 체화된 상태입니다. ... 그래서 푸코가 볼 때는 어떤 면에서 주체라는 것은 권력의 효과이고, 의식이라는 것은 담론의 효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알고 보면 인간이라는 것, 주체라는 것이 거대한 거미줄 망에 걸린 한 마리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


그 누구보다도 내게 푸코를 간단명료하게 소개해 주는 글. 그의 책 "성의 역사 제 1권 앎의 의지'를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 소개를 접하니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푸코를 내 스스로 소개할 날이 있을꺼라 기약하며...  


#4.
그리스 사람들이 덕이라고 이야기하는 아레테(Arete)는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상태, 그 상태가 바로 행복한 것이고, 그런 상태가 바로 아레테라는 것입니다. ...


'아레테'라는 단어가 생소하면서도 심오하여 옮긴 글이다. 진중권 선생이 화내겠지만 이 아레테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진작 알았다면 내 블로그 이름을 아레테로 할 걸'이란 생각만 들었다. ^^


#5.
니체가 '권력의 의지'에 대해 말했을 때, 그 권력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남들에 대해 행하는 의지나 권력이 아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권력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남들을 지배하려 하죠. 정말로 지배할 만한 유일한 게 있다면 자기 자신인 거 같아요. 내가 지배해야 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거죠. ...


니체에 대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쉬운 서적으로 우선 고른 책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이다. 이 사람을 이해해야지만 나와 대학원 시절 2년동안을 함께 했던 Simmel에 대해서 더 깊게 공부할 수 있으리라. 짐멜이 '자기 영혼에 이르는 길'이라고 표현한 궁극적인 것이 바로 이 니체의 자기자신에 대한 권력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6.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그 사람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권력을 행사하려 들고 거들먹거리고 남한테 굽실거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약한 사람들입니다. 내면이 없기 때문에 그럴수록 훨씬 더 밖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 것이겠죠. ...


무척 공감가는 이야기이다. 한국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남성 일반'이 그렇다. 단연코~ 이보게! 이젠 당신의 사이비 권력행사는 끝이 보인다니깐? 그런데 또 하나의 남성인 나 또한 노력하지만 그 '남성 일반'의 무거운 존재지워짐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이비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을 하루에도 수 번 발견한다. 방금 전에도 함께 사는 눈큰이에게 '선배! 요즘 들어 갑자기 욱하고 성질 부리는 때가 많아졌어!'라고 한 소리 들었다. 눈큰이의 말에 나도 뜨끔해졌다.


#7.
어떤 사람의 존재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위험할 때, 어려울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여유 있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도 멋있는 게 아니에요. 전혀 여유가 없고 정말 힘든데 어떤 어려운 결정을 했을 때 그것이 멋있는 것입니다. 원한을 갚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상황에 놓인 자기 삶 자체를 작품으로 끌어올릴 굉장히 중요한 결정적 계기로 여기는 유희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학적 인간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어쨋든, 이 책의 첫 장식을 진중권 선생으로 편집한 일은 잘 한 거 같다. 계속 책을 읽게끔 만들었으니...

그러나! '이 세상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선생이 말하는 자존심을 획득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에는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질 못한다. 하긴 그가 신이 아닌 이상 그런 질문에까지 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그의 탁 터진 입이 얄궂게 느껴졌다.


함께 듣는 음악은 Osana의 "L'uomo"(1971)앨범 중 2번 곡 "L'uomo"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