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의 두시간 밖에 안되는 너무나 짧은 강의를 들은지 벌써 몇 주가 흘렀건만, 아직도 선생님이 발산했던 그 열정이 제 마음속에서 쿵쾅거리고 있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그 날고 뛴다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서울에는 생각도 못했던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을 운영하고 계신 것 자체가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으니까요.
우선은 선생님께서 인디고 서원을 출발하게 된 그 동기와 그 이후의 열정적인 활동 중 일부를 여기에 담고 난 이후 그 다음 선생님께서 추천한 책을 가지고 저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 2004년 첫 해외여행: 6개 대학 도시 작은 서점 구경
얼핏 강의에서 듣기로는 선생님은 90학번이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아마 대학 교정에서 만났다면 고학번의 선배 또는 누나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군요. ^^ 그런 선생님이 2004년이 되어서야 해외여행을 처음으로 갔다고 그러셨던 것 같은데 이것도 확실치가 않습니다. 어쨋든, 여행의 주제는 대학 주변의 도서관을 구경하는 걸로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여행을 하던 중 소르본느 대학 근처의 한 작은 서점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죠? 거기서 오랜 시간을 있다가 그냥 나오기 뭐해서 샤르트르(이것도 확실치 않네요)의 책 한 권을 집어들고 주인이 있는 책상으로 가서 몇 개 알지 못하는 불어 중 하나인 '이거 얼마예요?'를 물으셨다죠? 그 서점은 우리나라 서점과는 달리 카운터가 별도로 없고, 서점 중앙에 서점 주인이 책을 읽으면서 작업하는 큰 탁자가 놓여있었어요. 주인에게 책이 얼마냐고 묻는 순간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던 주인이 손가락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 '쉿~'이라고 했다죠? 순간 선생님은 얼음 땡 놀이할 때 얼음 한 것마냥 묻는 순간의 동작 그대로 멈춰 있었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서 주인은 작업을 다 마치고 난 이후에야 친절하게 책 값을 계산했다구요. 
그렇게 책방을 나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갑자기 몰려온 질문은 '내가 왜 그 순간 얼어붙듯 멈춰 있었을까?' 였다죠? 한 작은 서점에서 선생님은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권위'에 분노감이 섞인 부러움과 나약함(이 표현이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그 때 기분을 알것 같습니다)을 느꼈습니다. 그 작은 충격이 '인디고 서원'의 문을 열게 된 첫 동기가 되었다죠? 이런 문화적 권위를 우리 한국, 그리고 선생님이 발딛고 서있는 부산에서 발산시키고자 말이죠. 제 말이 선생님이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그 초반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어~ 꽤 젊어보이는 저 분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여기 내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하는 의심섞인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 르브르 박물관에서 엉엉 울다
같은 여행에서 시간을 쪼개어 누구나 프랑스에 가면 본다는 르브루 박물관을 아무 생각없이 찾았다죠. 그런데 거기 입구에 들어서면서 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 인도여성이 어린 아이들을 무려 넷이나 혼자 힘들게 끌고 선생님의 앞에 걸어가고 있었어요. 정통 인도의상을 하고는 등에 갓난아이 하나, 앞에도 갓난아이 하나를 들쳐 안고 나머지 두 아이는 양쪽으로 걷게 하여 걸어가고 있었다죠? 선생님은 르브르 박물관 안에 들어가서도 작품에는 전혀 관심없이 그 여성을 계속 쳐다봤습니다. 그 여성은 작품앞에서 아이들을 들쳐 안은 상태로 한 참을 서 있곤 했다죠? 그 여성은 분명 인도에서 직접 온 것 같은데, 그 많은 아이들을 대동하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 이 르브르를 찾은 그 여성을 보고 선생님은 깊은 문화적 충격을 얻었다죠. 잠시 후 르브르 박물관 어느 구석에서 엉엉 울고있는 자신을 만나야 했다고... 저 아이 엄마를 삶을 무겁게 통째로 들고 여기까지 저렇게 오게 한 게 뭘까? 그리고 자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들이 교차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고. 

그리고 그 여행을 마치고 부산에 돌아와서 며칠을 고민하다 바로 일주일도 안되어 건물을 계약하고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게 바로 '인디고 서원'입니다. 

# 인디고 서원
강의 중 텔레비젼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동영상을 몇 편 보여주셨죠? 그 방송 동영상의 출발은 한결같이 "부산 000, 학원가가 즐비한 그곳에 한 특이한 서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여느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참고서, 문제집 같은 것은 없습니다."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서점에는 여섯개의 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이 문학, 역사·사회, 철학, 예술, 교육, 생태·환경 등의 인문학 서적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과 같이 인문학 책들을 같이 읽으면서 토론을 하는 장을 꾸준히 열어왔고, 어느 덧 그렇게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 천명이 넘어간다고 그러셨죠? 그렇게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한국 최초의 인문학 서점'으로 사람들에게 점점 알려지게 되었다죠. 저는 사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받은 리플렛을 통해 인디고 서원을 처음 접했습니다. 너무 늦게 이런 가슴 찡한 명소를 알게 되어 아쉬움이 더 컸죠. 선생님이 르브루 박물관에서 터져나왔던 그 감정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책 읽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 땅의 청소년들은 무한 경쟁 속에 내던져져서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성장은 돌보지 못한 채 온전하게 꿈을 꾸지도 못한 채 혼돈의 시간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도 문학은 여전히 가장 오랜 연원을 지닌 인류의 교육과정이며 자아성장의 훌륭한 매체이며 동반자입니다. ... 인디고 서원은 꿈꾸는 청소년을 길러낼 것입니다. 아름다운 감성을 기반으로 역사에 발붙이고 살아있는 사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을 통해, 청소년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정신의 토양을 제공할 것입니다.
......
가까운 미래에 동네마다 빼곡히 들어선 학원과 교습소 자리에 도서관과 작은 책방들이 세워져서 학교를 마친 이 땅의 청소년들이 도서관과 작은 책방으로 몰려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옹기종기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하고 늦은 밤 별에게, 달에게 자신의 꿈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또한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거대하고 오만한 서울의 문화인들에게 인디고 서원의 이름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 인디고 서원을 열며. '04.8.28. 허아람 -


# 꿈을 초대하다 - 2008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
참,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인디고'(Indigo)가 무슨 뜻인지 알려드려야겠죠? 인디고는 허선생님이 평소에도 머리속에 담고 있던 '쪽빛'이라는 말이래요. 어느나라 말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서원書園을 붙여 '쪽빛 책 정원'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갖게 됐죠. 위의 인디고 서원을 열며 쓴 다짐들은 단순히 말로 그칠 수도 있는 (말 속에서만) 아름다운 표현들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흥~ 말로는 누군 못해!"라고 오히려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인디고 서원을 찾는 청소년들과 함께 그 꿈을 부산 인디고 서원으로 초대했습니다. 바로 책을 읽으면서 만나고 싶었던 세계 각국의 저자들을 직접 초대하였죠. 책을 읽고 선생님과 청소년 친구들은 가방을 꾸려 각 대륙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각 대륙별로 인디고 서원의 6개 책장 주제별 저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초대를 했던 거죠. 와~ 정말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을 겁니다. 
그 각각의 대륙별 대표저자를 만나는 얘기를 하실 때 가장 인상깊었던 분은 아프리카를 대표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학자 마크 호너Mark Horner였습니다. 여기서 다 설명드릴 수 없기 때문에 이 분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유스 북페어의 소개를 대신 하려 합니다. 
어느날 마크 호너는 과학강연을 끝내고 청중석에 남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아이들 무리를 발견합니다. 마크는 아이들이 뭘 그리 열심히 적는지 궁금해서 그 아이들에게로 가서 물었지요. "우리는 저 지방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 대표로 왔어요. 우리 학교는 교과서가 없어서 우리가 여기서 배운 내용을 적어서 친구들에게 전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들었던 내용들을 빠트리지 않고 적으려고 하고 있어요" 마크는 이 아이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동료 과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그들로 하여금 일부분 씩을 맡아 교과서를 집필하게 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질좋은 교과서를 공급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고 아마도 지금쯤이면 그가 만든 교과서가 아이들 손에 쥐어져 있을 것입니다. 
작은 파문이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켜가듯이, 인디고 서원에 모여 책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작은 꿈들이 모여 세상의 보석과 같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해서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희망에 대해 얘기하는 모임을 개최한 것이죠. 정말 이 행사를 소개할 때 선생님의 표정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 '그날이 오면' 
서울대 고시촌으로 뒤덮여 있는 골목에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는 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 운영의 어려움을 맞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이 모여 있고, 이 나라의 미래의 리더가 될 인재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의 유일한 인문학 서점이 위기라는 것에 가슴아파 하셨습니다. '그날이 오면' 문턱이 닳고 닳아 없어지고, 그 서점에서는 늘 한국의 미래와 나아가 세계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해야 할 곳에 파리만 날리고, 고시촌에서 고시 관련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요란한 '서울대 풍경'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디고 서원은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부산에서 그 파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선생님과 함께 밤늦도록 토론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법의 정의를 세우겠다는 젊은 고시생들에게 '한 시대를 고민하고,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분노에 가깝게 이명박정권의 교육정책을 말할 때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라고...  가슴이 한 없이 답답해져 오더군요. 

# 그러나 희망.
선생님께서 교육을 위해 정리해오신 발제문 첫 장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희망은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힘든 일 속에만 남아 있다.
그 바닥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
죽어 가는 사회 안에,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 알베르 카뮈 -         

그래요. 그럼에도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제 목소리를 잊어버리고 목이 하얗게 쉬어가면서 세상에 희망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저 또한 부푼 마음을 안고 인디고 서원을 다시 한 번 제 목소리로 소리내어 불러보는 것일테죠. 그리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이렇게 짧은 글이나마 따라 걸어보고 싶어하는 것이겟죠.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저 또한 선생님과 인디고 서원을 거쳐간 아이들이 수 놓은 별들에서 이만 큼 떨어져서나마 별자리의 한 구석을 빛내게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디고 서원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아니, 선생님이 늘 행복하시기를... 그게 곧 희망이 계속 살아있는 증거일테니까요. ^^ 

ps. 세상과 결혼했고, 책과 결혼했고, 꿈꾸는 아이들과 결혼했다는 선생님~ 부디 선생님처럼 뜨거운 열정과 실행력을 갖춘 멋진 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희망이 더 강력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포기하지 마세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요. ^^


함께 듣는 음악은 윤도현 밴드의 라이브 2집 "Live is Life"(2002)앨범의 6번 곡 "사랑 Two"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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