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클레이 서키 | 역자 송연석 | 출판사 갤리온 (2008)

인터넷, 휴대폰 등의 정보통신기구의  발달로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 바뀌었는지 여기서 자세히 기술할 필요는 없다. 
대학에 입학했을 90년대 초반만 해도 졸업 후 동기들과 꾸준히 연락한다 해도 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반이 넘는 동기들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매일매일 소통하고 있고 그로 인해 실제 모임을 갖는 횟수도 많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SNS(Social Network Service)로 인해 가족의 소소한 일상부터 거대한 정치적 견해까지 일상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빈번해졌다. 


대학동기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자신의 일과 생각을 이야기하다가 일정정도 공감대가 모여져서, 서로 기쁠때 함께 웃고 힘들때 서로 돕자고 월 일정액을 상조회비로 내기로 하고 실질적으로 돈이 모이고 있다. 상조회비가 어느 정도 모이면, 이후에는 이 금액들이 보다 뜻있는 일에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기들의 마음을 모아 어려운 누군가에게 작은 격려의 마음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한 사교성의 차원이 무궁무진한 새로운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하나의 자잘한 예에 불과하다. 이 작은 사례만으로도 함께 모일 수 있다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킹이 가능하기 전에는 이러한 작은 모임을 하나 성사시키기 위해 (아주 잘 조직된 모임이 아니라면) 누구 한 사람이 자기 시간과 에너지, 돈 등을 일정정도 희생하는 것이 필요했다. 조금 확대시켜 보면 결국 이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물적,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쉽게 손 댈 수 없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은 현재의 환경에 못마땅해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들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삭막한 경쟁사회 속에서 그러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두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 개개인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로 바로 연결되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그들은 보다 쉽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하나의 집단을 만들 수 있고 나아가 '행동'을 계획할 수 있고 결국 '행동'하게 된다. 

여기 이 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인터넷을 통한 무한한 정보교류를 통해 무언가 혁명이 이뤄지고 있고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개인의 삶을 틀어쥐고 있던 독점적 힘이나, 사회를 장악하던 권력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힘은 이동하고 흩어지는 반면,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지식검색이나 '트위터'같은 불특정 다수들과 함께하는 열려진 광장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예전의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어느 네트워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작년에 트위터가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직장 후배로부터 소개를 받아 나또한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다. 뭐랄까? 처음에는 그냥 짧은 글로 잠깐 잠깐의 내 생각과 일들을 메모해두는 정도에서만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점점 사용이 익숙해지면서 트위터는 부족한 정보를 누군가가 순식간에 채워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바로바로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존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적 망 속에 '로그인'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접하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들이라던가, 지향점 등에 공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팔로잉'(Following)만 하면 그들의 정보와 고민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 물론 나의 고민들도 내가 의도한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트위터에서 알게 된 몇몇 사람들를 통해 추천을 받고 읽었다. 


# 소셜 소프트웨어, 소셜 미디어, 소셜 컴퓨팅 - 폭발적 감소와 폭발적 증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사회적 능력에 맞는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갖게 되었고, 그러한 변화를 이용한 새로운 행동 조율 방식의 확산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은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려 왔는데 소셜 소프트웨어 Social software,  소셜 미디어 Social media, 소셜 컴퓨팅 Social computing  등이 그런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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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유, 협력, 집단행동의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전통적인 제도와 조직의 틀 발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트위터와 구글 독스를 이용하여 전국에서 맛있는 떡볶이 집 추천을 받고, 전국에 있는 트위터리안들이 각자 맛집을 추천해 이틀 사이에 수백개가 넘는 '전국 떡볶이 맛집 목록'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구글 지도정보를 이용하여 위치까지 정확하게 입력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은 예만 봐도 이전과는 놀랄만큼 상황이 다르다. 이전 출판 방식을 따른다면, 맛집 목록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 출판사가 한사람 혹은 몇몇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오랜 기간 공을 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가장 거대하고 놀라운 예는 역시 위키피디아의 개미군단이 백과사전으로 명성이 있던 브리태니커 회사를 무너뜨렸다는 잘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정보를 독점하려는 소수의 권력집단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무수한 사람들이 맞장을 뜨는 세상이 온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집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변화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될 것이고, 그에 따라 현재의 경제 시스템 자체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 변화의 사다리 - 공유, 협력, 집단행동
지난 100년간 조직을 둘러싼 커다란 화두는,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이를 국가가 지휘하는 게 최선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맡는 게 최선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논쟁의 밑바탕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룹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보편적이고도 암묵적인 가정이 깔려 있었다. 시장과 관리 둘 중에서만 선택하려 했을 뿐, 세 번째 대안은 없다고 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우리의 네트워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제도권 그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범위도 워낙 넓어 현재의 패러다임의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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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될 정도로 쉬운 그룹 형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룹의 일원이 되어 공유, 협력, 집단행동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그동안 늘 거래비용 때문에 제약을 받아 왔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이제는 그룹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일에서 이토록 쉬운 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그룹 및 그룹의 새로운 종류에 관한 실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도 이러한 새로운 Social Software에 선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후배 직원이 있다. 그 친구를 통해 트위터를 시작으로, 구글 독스, 플리커, 야머 등의 무수한 공유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직장 내에서도 (아직은 젊은 직원들에 한정되지만) 평소에는 대회의실이나 회식자리 같은 경우를 통해서 나누었을 집단 대화를 하루 종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이 그냥 '쓰잘데기 없는'(?)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이러한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느덧 업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이에 대한 조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집단 대화에 쏠리게 되면 새로운 방향의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게 된다. 
심지어는 조직 내에서 인정받지 못한 일들을 오히려 조직 밖의 사람들로부터 트위터를 통해 격려받고 아이디어를 받는 경우까지 생겨난다. 이러한 상황이 된다면, 즉 아이디어나 업무에 대한 지원과 협력이 기존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조직 밖의 무수한 익명의 네트워킹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기존의 '조직'이라는 테두리는 더이상 한 개인에게나 그 조직에게나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보기는 더 이상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 영구적 정체성이 아닌 일시적 행동으로서의 소비자
우리의 사회적 도구는 현대사회를 개선한 게 아니라, 오히려 현대사회에 도전하고 있다. 신기술은 새로운 것을 가능케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신기술이 등장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 불가능한 일들 중 중요한 일들이 충분히 많이, 무더기로, 빠르게 일어날 경우, 변화는 혁명이 된다. ... 오늘날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많은 조직들은 상당한 수정을 거치지 않는 한 이 변화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정보를 핵심 제품으로 하고 있고, 그에 대한 의존도가 큰 조직이나 산업일수록 더 크고 더 철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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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조직과 무너지는 원칙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나 또한 아직까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그리고 열광하는 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분명 확연히 달라져가고 있다. 
평소에는 만나지도 못했을 무수한 세계의 사람들과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고, 이러한 도구들에 익숙해 진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열광'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일견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가슴을 들뜨게 한다.
기존의 자본과 유통 인프라를 독점하고 있던 기업조직들과 당당히 맞짱을 뜨면서 많은 개미군단들이 서로가 가진 작은 정보들을 나누고 함께 조합하여 놀라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 물론, 완전 공짜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의 사례는 순수한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고 있다.   

# 소비와 생산과 공유의 트라이앵글
우리의 지나간 100년은 주로 소비 활동에 쓰였지만, 이제는 소비는 물론 생산과 공유 활동 또한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이를 지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는 작은 일은 사랑 때문에, 큰 일은 돈 때문에 이뤄지는 세계였다. 사랑은 사람들에게 빵을 구울 동기를, 돈은 사전을 만들 동기를 부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 때문에도 큰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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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위키피디아의 자발적 분업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 위키가 가진 뛰어난 능력은 비금전적 동기들이 모여 범세계적 의미를 갖게 만들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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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눅스의 성공 - 새로운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운 최초
1991년 리너스 토바즈Linus Torvalds라는 젊은 핀란드 프로그래머가 ... 간단한 메모를 올린다.

저는 (공짜) 운영 체제를 만들고 있는데요(취미일 뿐 ... 전문적인 대형 작업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기능들을 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떤 의견도 모두 환영입니다만 그것들을 모두 구현할 거라는 약속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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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리눅스 개선작업을 도와, 결국에는 리눅스가 취미 프로젝트에서 디지털 인프라의 핵심요소로 바뀌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블로그에 메모를 해 둔 게 작년 6월 초였다. 그 때는 사실 이 책의 저자가 흥분하고 들떠 이야기하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아는 것은 전세계의 수많은 네티즌들이 위키피디아의 내용들을 채워나갔으며 기존의 세계적인 백과사전 회사를 하루아침에 문닫게 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놀라고 있었을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불과 일년도 안돼서 우리의 세상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주변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반응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 번째 반응은 이러한 변화의 기운을 일찌감치 흡수하고 그 영향에 열광한다. 그 반대로 두 번째 반응은 매일 새로워지는 이러한 각종 도구들에 대해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너무 요란떤다'라는 투로 오히려 적극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세 번째 반응은? 글쎄 ... 뭔가 굉장하게 변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도 못하고 그냥 어~ 어~ 하면서 휩쓸려가며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사람들에게서도 이 세가지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실, 버겁다. 이러한 도구들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버겁다. 때로는 그냥 눈딱감고 자꾸 자꾸 새로워지는 도구들에 손사래질을 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뭔가 엄청난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금년들어 내가 업무를 위해 만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업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마케팅 방식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저자 또한 이 변화를 목도하는 우리들이 각기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충분히 예측하고 있다. 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통한 혁명이 이뤄지던 시기 그러한 변화를 거부했던 자들이(인쇄술이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 역사속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거 이거 은근한 협박 아닌가?  

# 오직 한 가지 중요한 질문 -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사회적 도구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이런 도구에 대한 통제는 카약 조종과 훨씬 더 비슷해졌다. 기술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물길을 따라, 빠르게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도구들의 확산에 대해 약간의 통제력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되돌리거나, 멈추거나, 하다못해 홱 돌릴 수 있는 정도의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목적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고 몸을 똑바로 세우는 일이다. ...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런 도구들이 확산될 것인가", 또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는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가"이다. 

# 마누치오가 전해 주는 교훈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모르는 신출내기인 젊은이들에 비해, 유리한 입장일 때가 많다. 신출내기들이 범하는 실수는 경험 부족에서 나온다. 이들은 단순한 유행을 과대평가해 온 세상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실수를 수천 번 거친 뒤에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나 혁명의 시대에는 경험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의 실수를 한다. 평생 한 번 있을 법한 진정한 변화가 찾아와도 단순한 유행쯤으로 치부하고 말 위험이 있는 것이다.  

난 이 책에서 '혁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억지로 '변화'로 유화시켜 계속 표현했다. 그런 내 표현 속에는 일정정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거대한 '혁명'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내적인 저항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나의 생 동안에는 기존의 사회적 경험에 의존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던 느낌. 즉, '이 거대한 변화에 그냥 떠밀려가서 허우적 거리지 말고 이 혁명의 시대에 빨리 적응하여 이 혁명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리드해 가는 게 이로울 거다'라는 저자가 전혀 의도치 않은 '협박'에도 괜히 배짱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보게. 자네가 말한 대로 무언가 세상이 크게 요동치고 변화할 거라는 거 인정은 하겠는데. 날 내버려 두겠나? 이상하게 피곤해 지니 말일세." 

함께 듣는 음악은 거대한 혁명을 표현한다기 보다는 그냥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표현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음악이다. ^^;  Didier Squiban의 『Porz Gwenn』(1999) 앨범 중 5번 곡 "Petit Air Mar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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