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가네시로 가즈키, 역자 김난주 | 출판사 북폴리오 (2008)

위의 책 광고 카피를 보니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05년 눈큰이와 결혼한 후 눈큰이를 통해 알게 된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들은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 접했던 『Go』에서부터 『플라이, 대디, 플라이』,『Speed』,『레벌루션 No.3』... 내가 누군가의 작품을 이리 많이 읽은 건 아마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에 대한 서평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유인 즉슨, 스크랩을 할 여유가 없이 빨려들어가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것이 무척 더딘 나이지만 만사 다 제쳐두고 침대에서, 책상에서, 거실 바닥에서, 화장실에서 손을 떼지 않고 읽게 만든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 도대체 그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비상하고 싶은 꿈'을 어떤 브레이크도 없이 펼쳐 보여주는 통쾌함이 아니었을까? 펄펄 날아올라도 모자랐을 청춘시절을 떠올리면서,  비린내 나는 세상에 거침없이 침을 뱉고 반란을 일으키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무언가 가슴이 뻥 뚤리는 쾌감을 맛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휴~ 나도 저래봤으면...' 하고...  

이번에 소개하는 책 『영화처럼』또한 이전 작품들이 풍기는 인상과 다르지 않다. 각각의 단편에서 주변인으로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재일조선인, 가정주부, 별볼일없는 학생들, 상처입은 아줌마 등)이 세상이 가한 차별과 억압에 웅크려졌던 몸을 펴고 비상하는 이야기이다.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묶여 있는데, 각각의 소설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영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각각의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서로 잠시 스쳐지나가든지 하는 식으로 엮이고, 서로 다른 스토리를 가진 각 단편의 등장인물들이 구민회관에서 상영하는 '로마의 휴일'을 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단편 '태양은 가득히'에는 재일조선인인 작가 본인의 자전적 소설처럼 보이는데 거기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 이야기의 힘은 개똥 같은 현실이 강요하는 결말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죽은 자가 되살아나고, 마치 언제 죽었냐는 듯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도 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현실이 이야기의 힘에 굴복해, 우리들의 이야기가 사실로 회자되기 시작할 것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이 이야기들이 '사실로 회자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 책에 몰입하였다. 때론 억눌리고 상처받는 주인공의 모습에 같이 상처받고 분개하다가 그들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면서 '통쾌하게' 주먹을 내뻗을 때 같이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마치 내 주변에도 '더 좀비스' 같은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든든함(?)을 갖게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처럼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계는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더 이상 용감한 영웅이 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세상에, 그런 나약해지는 내 자신에게 강력하게 어퍼컷, 아니 똥침을 날려보고픈 욕구가 생긴다면 대리만족이라고 하지만 그 어찌 의미가 없겠는가?

이후 접하게 될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에 대해 다시 서평을 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로 하여금 노란 이소룡 옷을 입고 '아효~' 하면서 콧잔등을 치고 발차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그의 소설은 가끔씩이라도 계속 접하게 될 것 같다. ^^  


함께 듣는 음악은 Ketil Bjornstad의 피아노와 David Darling의 첼로로 어우러진 『The River』(1997) 앨범 중 1번 곡 'The River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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