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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연 / 삼성출판사(2007)


안토니오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나 말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많아지면서 아기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요즘들어 고민이 되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힘으로서 아이를 제압하려고도 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나 또한 준비안된 아빠로서 퍼뜩 놀랄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밥먹을 때 이리저리 돌아다녀 밥 먹이기가 힘들어 "안토니오! 여기 앉아서 밥 먹어"하고 내 딴에는 제법 화난 것처럼 말했더니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내 옆에 턱 하니 앉는 것이었다. 뭐 그 기간이야 오래가지 않았지만 안토니오도 이제 아빠라는 존재의 권위(?)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시도한 것에 나도 맛들렸는지 안토니오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는 이전처럼 따라다니면서 "안토니오? 이러면 ~하니깐 안되지?"라고 달래는 방식보다는 소파에 앉아서 "안토니오! 그만 뛰어다녀!"라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점점 그런 방식이 올바른 지 나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다. 아이를 주늑들게 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오래전에 한 지인이 읽어보라고 준 <아빠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제목에서 나와있듯이 '아빠'를 중심에 놓은 책이지만 사실 다 읽고 난 느낌은 '다양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구나'라는 거였다.
어떤 것을 폭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은 상처받은 자녀들, 알고보면 그 상처를 준 폭력이 누군가에 의해(주로 아빠들이지만) 이루어졌다는 다분히 도식적인 이야기다. 다양한 방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데, 특히 이 책은 아빠의 태도(결국 그 태도 또한 아빠의 어린시절 가족관계에서 찾지만)를 물고 늘어진다. 불쌍한 아빠들...

책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해도 문제고, 저렇게 해도 문제고... 도대체 어쩌란 말야라는 반감도 일게 만들었던 책!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몇 꼭지는 있었다.  

# 지나치게 허용적인 아빠
감정은 전적으로 자기 것이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이므로 아빠가 나서서 해결해 줄 필요가 없다. ...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랬구나", "그래서 화가 났구나" 등의 말로 마음을 그대로 말하여 공감해주되 나머지는 아이가 책임지도록 한다.(때론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라.)

일전에도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안토니오가 너머지거나 뭐에 부딪쳐 울 때는 "어디보자~ 아~ 괜찮어. 피 안나!" 이런 방식보다는 아이의 현재 상태를 추측해서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나도 "아야~ 여기 부딪쳐서 아프겠구나. 그래서 우는 거구나"라는 방식으로 공감을 표현해 주며 아이를 달랜다. 효과가 확실히 있다.

# 완벽주의 아빠
얼핏 보면 완벽주의자는 매우 멋져 보이는 캐릭터다. 언제나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깔끔하며 논리적이다.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성공지향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멋진 모습 이면에는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도 있게 마련이다.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니, 어렵거나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 든다. 또한 항상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억눌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늘 지쳐 있거나 쫓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쉽다. 사고가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는 것도 완벽주의자들의 특징이다.
 완벽주의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태도를 닮아간다. 힘들 것 같으면 쉽게 짜증을 내거나 두려워하며 도전을 피하고,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당황스러워 하며, 실패를 참아내지 못한다. 정리정돈을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무지 뭔가를 하려 들지 않는다. 나중에 치우는 일이 귀찮고 두려워 가만히 앉아서 텔리비전 보는 쪽을 택한다. 또 항상 성취나 결과만 강조하면 아이들은 나쁜 결과가 생길까봐, 혹은 기대한 성취를 이루지 못할까봐 아예 도전을 회피한다.
......
*완벽주의적 아빠들의 특성
일을 하는 데 지나치다 할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 ...
아이에게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양심적일 것을 기대한다 .
아이에게 칭찬을 할 때 "잘했다", "최고야", "완벽해"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아이가 미덥지 못해 자꾸 채근하고 지시하게 된다.
평소에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편이다.
정리정돈이 잘 된 것을 좋아한다.(어지럽혀진 상태를 참지 못한다)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느라 가끔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
막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우유부단해질 때가 있다. (결정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때를 놓치기도 한다.

이 장을 읽는 동안 참 난감했더랬다. 뭐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나 또한 약간의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눈큰이는 이 구절들과 딱~ 들어맞는다고 얘기할 지도 모른다) 원칙적이고, (웃기고자 애를 쓰지만) 별로 웃기지 않고, 도덕적이고 양심적이지 못한 일에는 누가 지적한 것도 아닌데 무척이나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안토니오에게도 '잘했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평소 사람들을 만날 때 내 감정표현은 최대한 억제하려 들며, (눈큰이가 자주 사용하는) 화장대에 어질러져 뒹굴고 있는 화장품 및 여러 잡기들을 보면 눈쌀이 찡그려지고(그래서 청소는 내 담당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핑계를 대면서 작은 일상에 신경을 많이 쓰며 막상 큰 결정을 할 때는 방관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은 대학 때부터 들었으니...
오호라! 내가 바로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지닌 인간이구나. 한 가지 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눈큰이와는 반대로 나는 친숙한 곳을 선호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눈큰이에게 자꾸 제동을 건다.
자! 이젠 어쩐다? 어쩌지?  

# 이중적인 태도의 아빠
타인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독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남에게 후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인정을 구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밖에서는 욕구를 억누르기만 해야 하므로 욕구 충족의 대상은 종종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만만한 가족, 아내나 아이들이 된다. ... 집에 와서는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타박을 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힘과 주체성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빠에게서 이런 취급을 받은 아이들의 인생경로... 하나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평생 두통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부모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가 밖으로 표출되어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
* 이중적인 아빠들의 특성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더욱 민감하다.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쓴다. ......
집에서는 말을 잘 안 하거나  쉽게 피곤해한다. ......
가족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통제를 한다.

아마도 위의 완벽주의적 기질과 어느정도 같은 궤를 가는 성격유형인 것 같다. 잘 알고 있는 타인의 요구에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며, 항상 눈큰이와 나의 입장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물론, 맘에 안드는 사람의 경우에는 확실하게 내 주장을 펼치지만 평소 친소관계가 높은 사람에게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눈큰이는 내게 매 번 집에서는 대화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너무 피곤해서 그래'라고 몇 번 답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점점 글을 쓸 수록 나란 인간이 참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진짜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겁을 주기 위해 체벌을 사용한다. 회초리를 들어야만 아이가 말을 듣는다고 호소하는 부모들도 많은데, 회초리는 썩 좋은 훈육방법은 아니다. 매를 맞을 때의 아픔은 아이에게 큰 공포감과 고통을 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런 강한 감정에 압도되기 일쑤다. 부모에게 체벌을 많이 당했던 아이들의 상당수는 부모에게 매를 맞은 것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도 정작 무엇 때문에 매를 맞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를 때릴 때는 '네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은 벌'로 때리는 것인데, 정작 아이는 맞은 것만 기억하고 왜 맞았는지를 잊어버리니 체벌을 통해 보다 나은 행동을 기대했던 애초의 목적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매를 자주 맞는 아이는 자아존중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 매를 맞는다는 것은 곧 '나는 나쁘고 부모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심어주어 자신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특히 2세에서 6세 사이의 어린아이들은 아직 사리분별이 미숙하여 부모의 평가에 따라 자신을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야단과 비난, 체벌을 많이 받은 아이는 부모가 '나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러저러 했으니 너는 나쁜 아이다'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라고 행동과 사람을 분리시켜 말해주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다.

이상하다. 난 어린 시절 맞았던 이유를 대부분 기억한다. 그리고 돌아봐도 매를 맞았다고 해서 정말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나쁘고 부모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특별히 느꼈던 기억이 없다. 단지 맞은 이후 잠시 동안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이야기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체벌에 대해 항상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찬성 입장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 본 적이 없다.

자! 그렇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책을 읽어 본 아빠라면 아마 위 책에서 열거하는 문제들에 한 두개 정도씩은 안걸리는 아빠가 없을 것이라는 위안을 가져보지만서도, 나 스스로의 위와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일단 반복해서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려는 노력은 확실히 필요하다.

#. 긍정적 센서를 잘 활용하려면
1. '트집 잡기'를 멈춰라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약점을 캐내려는 '비난 센서'가 가동하려는 순간 말을 멈추고, 상대방의 좋은 점, 좋지는 않아도 괜찮은 점을 발견하려고 애써야 한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으면 공치사나 사탕발림을 내뱉어도 된다.

2. 즐겁거나 기쁠 때 과장하여 표현해라
 긍정적 센서가 덜 발달된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도 좋은 감정을 편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기쁘거나 신날 때 웃음을 참지 말고 의식적으로 더 크게 웃고 "앗싸!"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연습을 해보자. 긍정적인 감정을 자꾸 표현하다 보면 어느덧 익숙해져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날이 온다.

3. 긍정적인 친구를 사귀어라
 남을 쉽게 비난하고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그런 사람끼리 사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 험담과 비관적인 이야기만 나누다 돌아오면 세상이 더 비관적이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 그 사람의 긍정 바이러스가 당신에게도 전염된다.

4.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남을 험담하는 일에는 열등감이 작용한다. "내가 나와 크게 상관도 없는 그 사람을 욕하는데 왜 이리 열을 올리는 걸까?",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가?", "그 사람을 욕하고 비난해서 내가 얻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은 과거 내가 알던 어떤 사람과 닮았는가(혹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열등감의 실체를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여러 가지의 대책이 나왔지만 내 관심분야만 떼어내어 옮겨봤다. 1번은 눈큰이에게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2번의 경우는 적극 동감한다는 뜻에서, 3번과 4번의 경우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하는 얘기라서(막상 말도 못꺼낼 거면서도^^;) 옮겨봤다.

내 문제에 대해서 냉철하게 진단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막상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별로 큰 도움이 되질 못한다. 결국에는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치료방법을 구해야 될 것 같다. "삐뽀삐뽀 119"에서도 아이가 아팠을 때 증상은 자세하게 나열하면서도 종국에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로 끝맺지 않는가!

어쨋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함께 듣는 음악은 Yuichi Watanabe의 "Piano by the Sea"(2001)앨범 중 4번 곡 "The September song of a boy"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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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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