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답답한지 억수같이 퍼붓는다"라는 유치찬란한 글을 쓸 생각은 없다.
대선 결과 이후 애시당초 정치 쪽은 눈을 꼭 감고 지내게, 아니 저절로 쳐다보지 않게 되었었다.

투표 당일인 오늘도 안토니오를 보러 지방에 내려가기 전 잠깐 들러 어느 당을 지지할 지 기표소 안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어제 뉴스에서 얼핏 '환경'을 얘기한 정당이 하나 생각나서 과감히 빨간 도장을 찍었다.

결과는 내가 찍은 사람도 안됐을 뿐더러, 내가 찍은 정당에서 단 한 석도 나오지 않았다.

신중하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자니 뉴스에서 나오는 파란 물결이 너무 눈에 거슬려 기분이 언짢아졌다. 한숨도 여러번 나왔던 것 같다. 안토니오가 앞에서 놀고 있는 소파에 앉아서 '에휴~ '하고 한숨짓고,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차 속에서도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서로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사정상 누나 집에 거주자로 되어 있어서 왕복 두시간 가까이 함께 차를 몰고 가셔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고 모처럼 아이에게 해방되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신 저녁, 선거개표방송을 잠시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서는 나름 활달한 목소리로  
"사실 말여~국회의원 어느 정당 몇 석 더 많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어. 열린 우리당 봐라. 그렇게 몰표를 해서 의석 수 많게 해 줬는데, 변한 게 뭐가 있었냐? 똑같은 거야. 괜히 언론에서 크게 떠벌리지 우리네 삶이 뭐 변하는게 있겠냐?"

아버지도 이번 상황이 답답하셨는지 나름대로 긴급하게 정당화시킬 명분을 찾아서 공표를 하신 것이리라.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아버지 말씀대로 내가 이렇게 무기력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이전 17대 총선 때  뉴스 화면에서 컴퓨터 CG로 만든 국회의석이 샛노랗게 칠해졌을 때 특별하게 기뻐했던 것도 지금와 생각하니 왜 그랬나 싶으니깐 말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민주주의적이라고 하는 직접선거는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못된 정치행태라는 식의 해석을 내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때 고개를 크게 끄덕인 적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원 선거 등 몇 년에 두세번 도장 찍는 걸로 국민들은 자기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고 일상에 젖어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선거는 최면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의 문제, 환경의 문제, 빈부의 격차 속에서 오는 소외문제 등 그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정도 휘둘리면서 살고 있음에도 이 모든 일들은 이후  국회안의 정치판에 맡겨버리고 신나게 욕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뽑아줬더니 저 저 하는 짓좀 봐라"라고 더러운 침들을 내뱉어댄다.

어쩌면 참여하여 직접 일군 경험이 없이 이식된 민주주의 제도라는 형식 때문에 나타나는 왜곡된 현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4.19, 5.18, 87년 6월 항쟁과 같은 국민적 투쟁이 있었지만, 그 또한 이식된 제도적 민주주의를 말 그대로 제도적으로 탈환하고자 했던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걸로 끝나버렸다.  

그러하기에 시민운동이라는 것도 실상 보면 제 한 몸 열심히 뛰어드는 시민들 없이 언론플레이로 연명하는 속빈 시민운동이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어찌보면 수긍이 간다.
 
"국민들의 절묘한 선택"이니 하며 뉴스에서 부추기면 "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 참 대단해"하며 흐뭇해 하기도 할테니.

아버지 말씀대로 우리의 일상은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정치권에 촉수를 익숙하게 드리우고 있는 이상 그런 직접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않는다해도 자주 황당하고 화나고 답답한 뉴스를 접할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어쩌면 취직 이후 잘 가지 않던 거리 한 복판에 다시 서 있는 나를 만날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약간은 비껴서서 방관자적 입장에서 영위해 왔다면 이제 다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쯤 되면 아버지보다도 한 술 더 뜬 자기 정당화 아닐까?

어쨋든, 오늘 하루 .... 잠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건 사실이다.

함께 듣는 음악은 오소영의 "기억상실"(2001) 앨범 중 7번 곡 "기억상실"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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