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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장편소설, 열림원(2007)

 


동영상의 배경은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캥거루 한 마리가 해변 끝에서 텅 빈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황막한 눈길이었다. 천지가 가라앉는 것 같은 막막한 순간들이 흘러간 뒤 캥거루는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로 들어갔다. 캥거루는 계속 바다로 들어가서 이윽고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캥거루를 삼킨 에메랄드빛 바다는 잔잔하기만 했다.

캥거루의 자살에 대해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알고 보니 동영상을 찍기 직전에 어미 곁에서 놀던 새끼 캥거루가 갑자기 덮친 큰 파도에 휩쓸려가버린 것이었다.

홀로 남겨진 어미가 제 발로 들어가던 바다가 잊히지 않았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할 때, 난 이제 그 어미 캥거루를 떠올릴 것 같았다.

책을 읽기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접했던 문장! 그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렇게 가슴아린 글은 다시 접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려니 나 혼자 엄마 캥거루가 걸어들어간 바다를 다시 해변 끝에서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슬프고 안타깝고 초조한 캥거루가 되버렸으니 이만한 공감이 또 어디 있으랴. 


 #2.

사태의 복잡성, 관계의 복잡성, 해결할 수 없이 유보되는 문제들, 모호한 분노와 은폐되는 진실들, 그 위에서 출렁대는 유동적인 현실, 그 현실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나 ......


늘 이 세상에 살면서 알 수 없는 부글거림이 일지만 우린 다시 '삶의 균형'이라는 멋들어진 표현으로 단지 잠시 출렁거린 척 하고 다시 산다. 그렇지 않은가?  


#3.

"우린, 구십년대에 들어와 생존과 진실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참 난감했어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엔 실패했는데, 꼼짝없이 그 사회에서 밥을 빌어먹어야 하는 현실 말이에요. 아니면 굶어야 하고 ...... .


나 같은 사람은 아내와 같은 길을 걸어왔고, 의기투합이 잘 되었고 아이도 없어서 그나마 쉬웠어요. 헌영이 같은 놈보다는 상처도 적었으니까요. 적어도 감방을 갔다오진 않았으니까. 헌영이 같은 놈은 지금도 밤새 켜져 있던 감방의 백열등과 살진 변소 쥐와 감옥의 목욕탕을 잊지 못해요. 겨우 일 년 남짓이라 해도 사람이 변해요. 적이라는 대상조차 흐리게 만든 지독한 상처였죠. 헌영이같이 직접적인 외상을 입은 친구들은 진실을 택하지도 못했지만, 생존을 택하지도 못했어요. 그게 결국, 가정을 저비린 셈이 되었지만 ...... .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생존을 택한 친구들도 꼴이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꿈은 상실되고 자신을 돈과 바꾸어 살아야 하니, 삶 자체가 하루하루 이렇게 소모적이기만 한 건가 싶죠. 참 다들 고독하고 가련해요."


살짝 집어넣는 과거의 한 단편이 자꾸 이 소설과 안맞는 것마냥 껄끄럽게 느껴졌다. 이젠 대중성을 위해 그 과거의 그 시절 이야기들을 살짝 언급만 하고 '상상은 너에게 맡긴다'하면서 빗겨들 갈까?
진짜 다들 고독하고 가련할까? 이건 분명 청승맞은 자위 아닐까? 
이 대목과 함께 갑자기 귀농 얘기 나왔을 때 생각하는 엄마라는 작자가 내뱉는 'FTA때문에 시위 농민이 분신자살을 하는 마당에 하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거야?'라는 깨는 표현에서는 갑자기 소설책을 그만 볼까도 생각했었다. 사실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몰입도는 반감되었다. 이거이거 아무래도 나의 직업병인거 같다.


#4.
낮과 밤은 서로 잘려진 단면이 얼마나 아플까? 해 뜰 때나 달이 뜰 무렵이면 무한히 긴 절단면이 아파하는 경련을 나는 느낀다. 삶을 위해 나누어진, 누구의 아픔도 아닌 이 세상의 본질적인 아픔이 내 마음에도 사무쳐 해와 달 사이에서 눈이 아프다.


그랬었구나. 아파서 그리 벌겋게 부어오른 거였구나. 다음에 일출 또는 일몰을 보게 되면 이 구절이 떠오를 것 같다. 그래 나도 표현은 못했지만 이 비슷한 걸 느낄 때가 많았다. 희망이니 출발이니 하는 방송용 맨트가 아니라 ...  


#5.
"세속적이다. 하지만 아름답구나."


작가가 이 소설 속에서 드러내려고 했던 핵심이 아니었을까?
엄마와 두 딸(친딸과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의 이 질박한 삶 속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 말이다. 그러니 더욱더 #3이 아쉽다.  


#6.
"사랑은, 어쩌면 달나라에 가는 것과 비슷할 거야. 지구의 중력을 이탈해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무한의 우주를 지나 꿈꾸어온 달에 착륙하는 여행 말이야. 그 여행이 엄청난 것은 우주선도 없고 연료도 없이 오직 단둘이 끌어안고 스스로 발사체가 되어 날아간다는 점이지. 그리고 달나라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 속에 안주해서 살 수도 없단다. 실제로 달은 채석장처럼 끔찍하게 척박한 곳이고 인간의 발을 둥둥 뜨게 만드는 곳이지. 단지 지구와 달 사이, 원심분리기같이 굉장한 속도로 회전하는 허공만이 사랑의 현장인 거야. 사랑이 끝나고 지상으로 돌아올 때는 우주선을 버리고 각자의 낙하산을 펴야 하지. 이 지상에 따로따로 떨어져 착륙해야 하는 것, 사랑은 그런 거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때 함께 있든, 혹은 헤어져 있든, 무사한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결국 끝이 나.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 사는 거거든."

그리고 평생 계속될 것만 같이 단단하게 뭉쳐서 희끗한 형체의 유령처럼 등 뒤를 따라다닌 감정의 응어리도 때가 되면 결국 재처럼 부서져 흩어지겠지. 단둘만의 달나라를 보았던 동질성조차 겨우 이 년 혹은 삼 년 정도면 무화되고 타인이 되는 것이다...... 진짜 상실의 아픔은 그것이다. 평생계속되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 잘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공감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단 둘만의 달나라를 보았던 동질성이 꼭 이 삼년 후면 무화되고 정말 타인이 될까? 그렇담 함께 살아가는 힘은 도대체 무얼까?  


#7.
"세월이 좀 흐르니, 나도 그렇고, 니 아빠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산 하나처럼 느껴져. 생각해봐. 산 하나의 내부가 품고 있는 그 많은 생명들과 어찌할 수 없는 인과관계와 진실을. 그게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인 거야. 그러니, 누구도 타인을 구할 만큼 자유로울 수 없어. 제 한 존재를 버티는 일도 참 버거운 거란다."


갑자기 굴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수많은 관계속에서 버거워하는 속에서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 정말 내 한 존재 버티는 일도 참 버겁다.


#8.
"결혼은 두 사람의 합자로 이루어지는 법인체야."


하하! 정말 명쾌한 결혼에 대한 정의다! 하지만 관계사이의 감정들을 너무 쉽게 증발시켰다. 삶을 몇 도까지 끓이면 이리 증발된 정의가 '참'이 될까?


#9.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늘 함께 있지만 외로운 게 이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모습이 아니니깐...


#10.
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흙색으로 표시하고 싶어지는 글. 정말 그러길 바래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소설 초반부의 몰입도에 비해서 읽을수록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지고 표현들의 어긋남에 좀 지치는 소설이었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진다는 표현은 인위적인 서사에 익숙한 나 자신의 잘못된 선입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위의 글들은 내가 공감 때론 비공감을 강하게 느꼈던 구절들이다.
아직 책에 대한 평을 어찌해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이 블로그가 '공감'을 주제로 하니 나의 구구절절한 표현보다는 책에서 공감되어진 부분들을 가감없이 기술해 주는 것이 적절하겠거니해서 시도해 봤는데 흠... 계속 진화시켜 나가야겠다.

이 소설은 대학생인 '딸'이 '나'라는 1인칭 화자로 등장하면서 엄마와 (헤어진) 아빠, 그리고 (헤어진) 아빠가 (헤어진) 엄마에게 맡긴 딸과 얽힌 관계에 대해서 다룬 작품이다. 처음에는 마치 (자신의 딸이 아닌) 딸을 맡기고 사라져버린 아빠를 찾는 로드무비형식을 빌리다가도, 갑자기 엄마의 집 안에서 카메라를 정지시켜놓고 롱컷으로 딸과 엄마의 대화를 보여주며 그 사이 과거의 순간순간 편린들을 모자이크처럼 구석구석 배치시켜놓았다.
작가의 배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지면을 일정정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색이 다른 '단편'을 억지로 '장편'에 끼워맞춘게 아닌가라는 버르장머리 없는 의심도 했으니 말이다. ^^;

대학교 문학개론 수업 때 여성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리포트를 써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 때 전경린의 단편 몇 편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10년도 더 된 오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지, 그 때에 전경린을 포함한 여성작가들과 앤소니 기든슨의 생활세계를 비교하면서 리포트를 작성했었던 것 같다.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거대 담론 또는 투쟁의 세계에서 티나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투쟁보다 더욱 악착같이 사는 '생활세계'를 대비하면서 후자의 영역에 이 여성들의 삶이 있고, 이들의 일상이 이젠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뭐 그런 흐름이었던 것 같은데... 전경린의 이번 소설에서도 그러한 일상에 대한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변함없어서 내심 포근함을 느꼈다.

나의 짧막한 서평은 #10의 표현으로 대체한다. 그것이 '세속적이지만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화이팅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말이다.

별점 : 3점

함께 듣는 음악은 Caetano Veloso의 "Omaggio a Federico E Giulietta"(1999)실황앨범 중에서 12번 곡 "Cajuina"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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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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