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쓰면서 서강대 정외과 류석진 선생님의 짧은 강의 "인터넷과 촛불"을 약 50여분에 걸쳐 들었던 얘기를 짧막하게 흘려 적었었다. 오늘은 그 강의 내용 중 기록한 몇 가지를 요약해서 올려보고자 한다.
모두들 이번 촛불문화제 또는 촛불집회를 움직이는 힘은 인터넷 아고라를 비롯한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10대 소녀 이 두가지 키워드를 꼽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터넷과 모바일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이용해 촛불집회를 진행시키고 확산시켜 왔다. 물론, 가장 강력한 배후세력은 광우병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못한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SRM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내장을 수입하기로 하고, 또 당연히 한 국가라면 쥐고 있어야 할  검역주권마저 포기해버림으로써 국민을 분노케 한 이명박 정권에게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국민들은 쇠고기 문제를 넘어 국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에 더 분노를 느끼고 절망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인터넷과 촛불이라는 주제에 집중토록 하자.

# 구성적 권력
유선생님은 이 내용을 풀어가기 위해서 우선 권력의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직접적 폭력처럼 누군가로 하여금 행태를 바꾸는 차원의 권력을 행태적(Behavioral) 권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존 조중동처럼 보수, 수구라는 특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와 관련된 의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해 왔는데 이를 구조적(Structural) 권력이라고 한다. 바로 아고라를 비롯한 인터넷 토론장 및 오마이 뉴스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가 조중동의 미디어 독점을 무너뜨리려는 현상이 구조적 권력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성적(Constitutive) 권력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의 생각을 새롭게 구성하게끔 하는 권력을 말한다.

# 참여 군중(Smart mobs)
지금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집단과 같이 인터넷, 모바일을 이용하는 군중들이 국가가 가지고 있던 수단을 능가하며 집단행동을 보일 때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세대, 2세대 참여 군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1세대 참여 군중의 경우는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반WTO 투쟁이나 2002년 노사모의 활동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일정한 지도부가 존재했다는 특징이 있다. 2세대 참여군중의 경우에는 특정 지도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보를 생산해내고(informing), 소통하며(connecting), 조직화하는(Organizing), 그래서 이들의 정보들이 공유되어 '집단지성'을 이루게 되는 특징일 갖는다. 바로 촛불집회를 개인별로 생중계하고 SMS를 통해 소식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그를 바탕으로 하나의 일정한 입장을 공유하게 되는 이들이 2세대 참여군중이다.  바로 Web 2.0의 본래 취지가 참여, 개방, 공유였는데 이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 롱테일 네트워크 군중(2.0 정치)
공부한 김에 한 가지 개념을 더 익혀두기로 하자. 이 용어는 원래 long tail economics라는 경제현상 용어에서 파생되어 생긴 용어이다. 유선생님은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을 예로 들어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는 잘 팔리는 베스트 셀러 20%가 그 서점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경제 현상(소수 대기업이 우리 나라 경제를 먹여살린다), 언론 현상(조중동 소수 족벌 미디어가 국가 여론 80%를 좌지우지 한다) 등을 떠올리면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서점의 경우에는 평소 잘 팔리자 않던 책들이 모여 전체 매출의 60!~7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효과와는 전혀 다른 현상인데 이를 얇고 긴 꼬리들이 모여서 큰 효과를 내는 이른바 'long tail economics'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의 경우 특정 명망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일반 네티즌들이, 즉 평소에는 전혀 관련성이 없던 익명의 소시민들이 주도한다는 온라인상에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집회를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롱테일 네트워크 군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최초의 집단지성이 나타난 것은 황우석 파동이 일어났을 때 젊은 과학자 커뮤니티 브릭에서 개개의 익명의 과학도들이 황우석 논문의 허위조작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기 시작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던 것이다.

#2008년 촛불의 4대 아이콘
무엇일까? 유선생님은 '촛불소녀, 다음 아고라, 스트리트 저널리즘, 사이버 커뮤니티'이렇게 4가지를 뽑고 있다. 자세한 건 저 밑에서... ^^

#80년대, 2002년, 2004년과의 비교
87년 6월 항쟁의 경우는 대자보 유인물, 지휘부, 그리고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이 젊은이들과 넥타이부대에게 일정정도 '당위와 엄숙'이라는 분위기를 갖게 하였다. 촛불이 처음 등장한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의 경우에는 온라인 상에서의 '펌질', '사이버 커뮤니티', '촛불', '당위와 분노'의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탄핵 규탄 촛불집회의 경우에는 'dcinside 토론방', '근조 패더디', '분노와 유희'로 특징을 지을 수 있으며 특히 dcinside의 경우는 전혀 정치와 무관하던 카메라 동호회 커뮤니티가 지금의 아고라 현상보다도 더 활발하게 탄핵을 규탄하는 온라인상의 흐름을 주도했다는 것이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촛불집회의 특징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캠코더에 와이브로를 연결하고 길거리 방송을 하는 개개인들, 그리고 아프리카를 또올리면 된다), '집단지성', (온라인에서만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놀이, 지휘부의 부재, 그리고 유희와 시대정신을 들 수 있다고 한다.

# 다음 아고라
쇠고기 이슈는 원래 아고라에서는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근에 아고라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오프 미디어와의 상호작용효과를 통해 일명 'Snowballing effcect'(결집효과)를 일으켰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쇠고기 타결 소식이 오프라인 상에서 발표되었을 때, PD수첩이 쇠고기 문제를 다뤘을 때, 촛불집회를 친북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명박이 중국에서 오자마자 초를 누가 사서 대는지 배후세력을 밝히라고 버럭 화를 냈을 때, 그리고 6.10 명박산성을 쌓았을 때, 일명 '살수대첩'이라는 전경의 물대포 진압이 이루어졌을 때, 장관 고시를 강행했을 때 아고라의 트래픽은 그와 맞물려 가파르게 올라가는 이른바 결집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유명한 네이버가 아니라 다음 아고라인가? 유선생님은 이를 Platform의 차이라고 본다. 네이버의 경우 자유토론을 차단하는 형식이었다면, 다음의 경우는 아고라를 통해 자유토론을 완전 개방했다는 데 그 차이가 있었다. 쇠고기 이슈가 두드러졌을 때 네이버의 블로그를 둔 많은 블로거들이 네이버에서의 자기의사표시의 답답함을 느끼고 다음 아고라로 몰려들게 된 것이다.

# 10대 촛불 '소녀'
사실 10대가 들끓기 시작한 것은 이번 쇠고기 파동 때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과 0교시 수업 부활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불만이 가득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인터넷 운영자들이 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 당시 "왜 엄마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냐?" "우리가 뽑지도 않은 사람때문에 왜 우리가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냐?"라는 식의 불만들이 일정정도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9일이던가? 이미 고등학생들이 모여 세종문화대강당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나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 것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 이번 광우병 소고기 수입관련 촛불집회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담 왜 '소녀'인가? 이미 언론에 많이 나와서 알고 있겠지만, 남자 아이들은 컴퓨터늘 여자 아이들보다 오래하지만 주로 단절된 유저로서 활동하는 게임에 몰두하는 반면, 여자 아이들은 컴퓨터 이용시간은 적지만 주로 팬클럽으로 대표되는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기호에 따라 소통을 활발히 하면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 왔고, 그러한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번 촛불집회를 주도하게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여성들의 경우는 남자 10대보다 하루평균 SMS 문자 메세지를 10건  정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커뮤니케이션을 더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자 얘기가 나왔으니 유선생님이 얘기하는 요즘 젊은 대학생들의 핸드폰 사용사례를 잠깐 덧붙이기로 하자. 가능한지조차 모르지만 요즘 10대들은 핸드폰 자판으로 1분에 300타를 친다고 한다. 또한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보지도 않고 문자를 치고 보낼 정도라고 한다. 캬~ 가능한 얘긴겨?

# 비정치적 커뮤니티로의 확산
몇 가지 사례를 들기로 하자. '카시오페아'라는 카페가 있다고 한다. 여기는 요즘 유명한 그룹 '동방신기' 팬클럽이다.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의 주도적 참여가 이루어진 이야기는 가히 가공할만하다. 최근 동방신기의 한 멤버가 군대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그 때와 맞물려 쇠고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들 팬클럽 맴버들은 쇠고기가 수입되면 당연히 군대 급식에 사용될테고 그럼 오빠가 그 고기를 먹게 되니 오빠를 우리가 살려야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촛불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건 정말 사실확인이 필요한 내용이다) 또 한 곳은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82cook.com'이라는 요리 정보 카페이다. 여기야 이미 많이 알려졌으니 넘어가자. 또 하나는 MLB라는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오로지 미국야구 얘기가 주된 얘기고 심지어는 축구 얘기를 꺼내면 왕따당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조중동 신문 1면 광고에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합니다'라는 광고를 때리고 얼마 후 이 까페에서 돈을 모아 한겨레 1면 광고로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합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이밖에도 '엽혹진'(엽기 혹은 진실), '소울드레서'(옷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인 카페), '뷰티 카페' 등 반정부 투쟁이나, 정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커뮤니티들에서 주도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조중동에 광고싣는 회사에 항의전화를 거는 등의 직접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롱테일 네트워크 군중들인 것이다.

# 결론
이 밖에도 거리 저널리즘의 대표적 현상으로 아프리카(Afreeca)를 들 수 있다. 평소 박지성 축구경기가 있을 때 40만 정도가 동시 접속하는 게 최고의 접속수였다면, 촛불 집회 이후 최대 180만명이 동시 접속하는 현상도 발생할 정도였고, 일거에 판도라를 제치고 동영상 싸이트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로 길거리에서 생방송을 하는 개인들이 촬영하는 동영상을 라이브로 볼 수 있게 열어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유선생님은 인터넷 아고라가 과연 새로운 공론장으로서 자리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아직 글로 다듬어지지 않은 초안의 형태로 강의안을 가져오셔서 결론 부분이 분명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야기한 몇가지 유추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최고의 토론 전문가가 참여한다는 100분 토론의 경우에도 우리는 올바른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이 100분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시청한다는 여론조사까지 있는 마당에 아고라에서 보다 성숙한 토론문화가 갑자기 조성되리라고 볼 근거는 사실 희박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댓글 문화가 오히려 극단과 극단을 달리는 문화를 양성하여 조율과 조정의 본래 토론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는 현실에서 조금은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고라는 기존 제도권 정당이 드러내지 못한 문제들을 이슈화했고,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이젠 쇠고기의 문제가 아니라, 불신의 문제로 점화된 이 마당에서 과연 이 지도부 없는 자연발생적 현상으로서의 촛불이 어떻게 소멸할 지 걱정이 많이 된다. 어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한 말처럼 국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막대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촛불집회는 이젠 접자는 의견이 50%를 넘고 있다. 물론 쇠고기 수입은 아직까지도 잘못되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50%를 넘지만서도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해결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시간이 되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드는데 사실 지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자기모순에 빠져들었다. 재협상이란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밝혔지만, 조만간 미 대선이 오바마의 승리로 끝난다면 평소 오바마가 주장했던 것처럼 한국과의 FTA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련 협정을 미국에 좀 더 유리하게 맺자고 요구할 상황이 분명 올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난 이러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언론에서 심도깊게 논의하고 이슈화했으면 좋겠는데... 흠... 내 생각이 틀린 걸까? 자못 이때 상황이 궁금해진다. 국민들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들 현재의 쇠고기 문제가 이슈가 되어 참여한 불특정의 개인들은 또 어떤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까? 아니면 침묵해버릴까?

만일 내가 이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이 번 현상은 정말 참신하고,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연구주제임에는 틀림없다.

함께 듣는 음악은 Ralph Towner의 "Diary"(1974)앨범 중 8번 곡 "The Silence of a Cand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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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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