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현기영| 출판사 실천문학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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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참 지난 책을 찾아서 펼쳐 들었던 이유는 황당함과 놀라운 풍자 때문이었다. 몇 달 전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는 걸 선정하여 군부대에서 이 책들을 읽지 못하게 했다는 소식이 세간에 알려졌다. 참, 어이가 없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러자 알라딘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상술(인지 에돌아 풍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에 기가막히게 차용했다. 바로 그 23권을 위한 도서 특별 이벤트를 홈페이지에서 펼쳤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는 모르지만 이 화면을 접하면서 난 정말 한참을 웃었다. 통쾌함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화면 밑에 '이렇게 좋은 책들을 아직도 절반도 읽지 못해 정말 송구할 따름이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고, 뒤돌아 가는(언제는 앞으로 간 적이 있었겠느냐마는) 국방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이것은 요즘 책판매 불황을 만난 출판사와 국방부가 합작하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책을 많이 사보게 하려는 상술이다. 속지 말자'라는 댓글도 있어서 또 한번 뒤집어졌었다. 나 또한 그 중 몇 권만을 읽었을 뿐 대부분의 책들은 읽지 못해 뭔가 시대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마져 약간 일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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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회사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책 동아리를 만들어 격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책 장터를 열고 있는데, 한 직원분께서 이 책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장터에 임대해 준 것도 그 무렵이 아닌가 싶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몇 달이 지나 이제서야 읽은 이유는 현기영 작가의 글을 접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학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아는 선배들과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5.18항쟁 비디오'를 보면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충격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현대사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된 것은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아니면 『행방전후사의 인식』을 접하면서였던 거 같다. 해방이후 한반도 최초의 엄청난 동족간 살육 앞에서 나 스스로는 무감각해져 버릴 수밖에 없었고, 그 책에서 씌어지는 천 단위가 넘는 살육의 숫자 앞에서 죽어간 사람들 하나하나의 안타까움을 생각한다는 것조차가 무리였다. 그 역사 앞에서 한없이 나라는 개인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래서 어쩌면 4.3 (지금은 '항쟁'이라는 말도 뒤에 잘 쓰이곤 하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집단학살의 도가니로 느껴졌다)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된 것 같다.  
『순이삼촌』과 『마지막 테우리』등의 단편집을 통해서 본(지금은 거의 어떤 내용들이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현기영 작가의 글들은 그런 슬픔과 무력감이 짙게 베어져 나온다.

# 봉앳불과 방앳불
나는 아직도 그 무서운 방홧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횃불도 이해할 수 있고 횃불이 모여 봉홧불이 된 것도 알 수 있지만, 하늘마저 불지른 듯 벌겋던 그 초토의 방홧불은 도무지 이해 불능이다. 화광이 충천하여 하늘에 가 닿고, 그 엄청난 인간과 가축의 떼죽음, 그 비명 소리, 신음 소리 역시 무섭게 솟아올라 하늘을 찔렀건만, 그러나 하늘마저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던가. 하늘은 언제나 백치같이 무심한 표정이 아니었던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일이기에 더욱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 잔인무도하다다, 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 앞부분을 읽는 부분은 너무 더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곧 들이닥칠 4.3의 처절한 상처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태어나서 중3이라는,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시절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글을 쓴 동기는 소설 초반과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지만 아마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작가의 아버님이 작고하시고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 대하면서부터였다.

# 아버지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다만 잊혀진 어린 시절을 글 속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자는 것이다.
......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 없고 죄 없이 무구한 시절, 그리하여 나에게 그 시절만이 진실이었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초반부와 중반부는 4.3 학살의 현장과 슬픔이 고스란히 베어 있기에 한 장 한 장 읽기에 매우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좀 무뎌졌던 내 감성이 다시 자라나는 것 같다. 젊은 시절(물론 상대적인 것이지만) 분노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분노는 점점 사그라들고 동정과 슬픔 같은 것이 내 맘을 더 요동치게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이 억울한 슬픔에 잠겨있다면 예전에는 그 친구와 같이 일어서서 함께 분노하면서 무언가 행동하려 했다면, 지금은 같이 앉아서 그냥 그 친구의 슬픔에 내 몸 또한 들썩여질 것 같은 기분... 그냥 옆에서 그 친구 어깨만 토닥토닥 다독여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 느끼는 제주 4.3도 현대사의 질곡속에서 너무도 황당하고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 앞에서 그냥 나 또한 그 죽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마냥 멍해지는 기분이다. 어떻게 슬픔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런 상황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러한 슬픔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으리라. 나와 세대차가 큰 이 작가의 어린 시절 속의 이야기들에서 나의 옛날 이야기의 편린들이 되살아날 때면 나 또한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뛰어놀고, 뒹굴던 옛 고향마을에 가 있곤 하였다. 작가는 이전의 내가 접한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4.3의 이야기를 들어내 놓고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려내는 주변 풍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들 속에서는 그 학살을 견디고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베어 나오게 글을 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아이들은 금방 옛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새것을 그대로 흡수한다'고 했던가?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 똑같이 되돌아와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그린다. 성적 호기심, 가장 주된 관계가 되는 어머니와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를테면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싶은데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게 한다든지 하는 사건에서 오는 한바탕 소란처럼), 주변의 변화에 대한 극도의 호기심 (이를 테면 영화가 들어오고 가난해서 돈은 없고 그걸 보고 싶어 영화관 앞에 서성이던 일들) 등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 그렇지만 읽을 때마다 독자로 하여금 옛 추억들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 글들에 빠져들게 하는 글들이 중반 이후부터는 그런대로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내가 '그런대로'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책은 전개가 굉장히 더디다. 마치 '나'라는 주인공 옆에서 하루 하루 같이 살면서 일거수 일투족 그 '나'라는 아이를 살피는 것처럼 글이 진행된다. 4.3이후의 성장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아이가 하루를 겪는 이야기로서 읽혀질 수 있다. 짧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길게 길게 늘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약간 무료한 감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 소설은 어느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낸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지만, 성장소설은 역시 성장소설다운 매력이 있게 마련이다.   
 
# 술
나에게 있어서 술은 이틀이 멀다고 찾아오는 악연의 벗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이 먹어서 동반하기가 버겁긴 하나, 그렇다고 평생 사귀어온 그 벗을 새삼스럽게 박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나이 들어 먹는 지금의 술맛이 아주 각별하게 좋다. 미인을 봐도 더 이상 홀리지 않고, 무슨 거창한 계획도 일도 아주 관심 밖이 되어버린, 말하자면 볼장 다 본 나이의 사내로서, 게다가 성미가 고약해서 까닭 없이 신경질 나고 우울해지기 쉬운 터수에, 술이라도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술잔만 잡으면, 목마른 기러기 물 만난 듯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쇠퇴기에 놓인 나의 체세포들이 생기발랄했던 옛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에게 술잔을 부어 환상을 심어준다. 술은 식어가는 내 피를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데워주고, 침울하게 오므라든 체세포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술만 마시면 왜 그리도 아이처럼 웃음이 헤퍼지고, 된 소리 안 된 소리 수다스럽게 찧고 까불게 되는 걸까.

이 구절을 옮긴것은 나의 과거사 또는 현실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내 주변에 저마다 한 두가지 이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연이라 함은 작가도 순이 삼촌을 쓰고 난 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하듯이, 젊은 시절 고문을 받았거나, 오랜 수배생활 끝에 옥살이를 했던 경험들이 어느정도는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분들과 저녁에 술이라도 함께 해서 옆자리에 앉아 있다보면 그 분들이 술을 마시는지, 술이 그분들을 마시는 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폭음을 한다. 그리고 곧 술자리가 과격해진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낮시간 동안 그들은 묵묵하다가 술과 함께 하는 밤에는 옛날 잘 나갈 때마냥 큰 소리 치고, 화를 내기도 하고, 황당한 너스레를 떨어 어이없게 만들기도 한다. 난 그런 술문화를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제대로 말하지도 않고, 제대로 일처리하지도 않으면서 술 자리에서만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뻥뻥거린다고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술먹고 했던 말들은 다 잊어버리고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것마냥 술에 덜 깨어 나타나서는 다시 무기력해지는 그들을 대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술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런 술자리에 끼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핏 그분들의 과거와 술을 함께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글을 쓴 것을 후회하는 걸까? 4.3이 금기시되던 시절 그것을 소설 속에 담아 세상에 알린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보다 더 나은 삶이 있었을텐데 하면서... 어떤 친구 말마따나 '너무 깊게 담근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나라면, 그런 젊은 시절 도망다니고, 끌려다니고, 그로 인해 세상살이 풍파를 더 서럽게 받아야 했다면 저 나이에 어떤 심정일까?' 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런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만나서 마셨던 술. 그만큼 세상 속도에 뒤쳐질 수밖에 없던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벗이 술 아니었을까? 술 속에, 나라면 결코 감당할 수 없었을 많은 사연들이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분들이 적당한 취기로 어린 세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술자리를, 그런 술문화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많이 어려울 듯하다. ^^;
  
# 아침빛 속의 제비 떼
아, 제비 떼가 난다! 갑자기 나타난 제비 떼, 찬란한 아침빛 속으로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든다. ... 폭풍의 밤이 무서웠던 어린 시절, 광란의 밤이 물러간 뒤, 새 아침은 그러한 모습으로 밝아왔던 것이다. 위대한 아침, 시련을 이겨낸 장하고 거룩한 신생의 빛, 아마도 나는 그러한 아침으로부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시련에서 온다는 것을. 신생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종횡무진 환희에 찬 군무를 벌이던 제비 떼, 그 눈부신 생명의 약동! 실의에 빠지기 쉬운, 변덕스러운 성격의 내가 신통찮은 삶일망정 그런대로 꾸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아침의 기억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러니깐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학교 옆 사택에 살 때이다. 아빠는 숙직이라 학교 숙직실에서 밤을 보내고, 한겹짜리 유리 문짝을 마구 마구 흔들어대던 폭풍이 몰아치던 밤, 하루의 피곤함으로 일찍 잠든 엄마를 등 뒤에서 꼭 껴안고 뒤척이다가 벽 한쪽에 있던 창문짝마져 덜덜거리며 누군가 억지로 열려고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간이 콩알만해져 엄마를 흔들어 깨운 적이 있었다. 내 눈에는 분명 사람 모습과 손이 그 창문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신경질을 부리며 "바람야, 바람. 그냥 쳐자!"라고 그랬던가? 어쨋든 별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자고 난 다음날 투명하게 유리 문을 깨고 내리쬐는 햇볕을 기억한다. 눈을 찌푸리고 문을 드르륵 열면 정말이지 작가가 말한 대로 제비때들과 참새가 쏜살같이 하늘을 질주하던 그 풍경을 기억한다, 그리고 옆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엄마가 내는 분주한 소리들... 그 때의 청량함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 아름다움이란
여가는 어머니에게 어쩐지 낯설고 두렵기까지 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한가해도 손에 뭔가 잡혀 있지 않으면 불안스러워했다. 몸이 한가하면 마음도 한가해져야 하는데 도리어 잡념과 시름이 몰려와 마음에 병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지금, 어머니의 경우를 예로 들어 다시 서민 여성의 일반적인 생활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어머니는 생활 그 자체만을 알았지, 생활의 장식은 언제나 눈밖의 것이었다. 아름다움이란 당신이 생각하는 실용의 범위 내에서의 아름다움이었다. 실용과 거리가 멀수록 오히려 순수한 아름다움에 가까워진다는 근대적 미의식을 어머니는 알지 못했다. ... 그러므로 어머니는 근대에 살고 있는 전근대인이었던 셈이다.

가끔은 부모님이 쉬시라고 안토니오를 서울로 데리고 와서 주말을 보낼 때도 있다. 지난주 한 선배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겸 지방에서 안토니오를 데리고 서울에서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오후 다시 지방 부모님 댁으로 돌아갔을 때, 어머님은 '안토니오 없고 할 일이 없으니까 몸 이곳 저곳이 아팠어'라고 말씀하셨다. 늘 주말에 내려가면 어머님은 한시도 앉아계시지 않고 주방을 닦거나 빨래를 하시거나 걸레를 들고 이곳 저곳을 쉼없이 닭거나 그것도 아니면 서랍을 열어 안토니오가 헝클어놓은 옷가지들을 다시 반듯하게 개시곤 한다. 내가 세상을 기억하기 시작한 후부터 몇십년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학교에 돌아올 때면 어머니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거나 이곳저곳 청소를 하고 계셨지, 결코 낮잠 자는 모습이나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아기를 맡기고 있어 그렇지만 난 머리통이 커지면서 늘 그것이 불만이었다.
'아버지랑 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
'난 집에 있는게 최고여. 뭐하라 길에다 기름 내뿌리면서 돈써가면서 다녀.'
'밖에나가봐야 다 똑같지. 창밖에 내다보이는 게 멋들어진 경치인데 뭐하러 다녀'
물론, 지금은 절뚝거리는 어머니의 다리 때문에 밖에 나가시는 걸 더욱 싫어하시지만, 다리가 멀쩡하셨더라도 그런 '문화적 사치'를 극구 거부하셨을 것이다. 
몇 해전  어머님 아버님께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서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라는 연극을 보여드린 적이 있다. 연극을 다 보고 나신 어머님은 '아니 그 쫍은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무슨 사서 고생여~'라고 불평하면서 '나이든 여편네가 사람들 많은데서 내복만 입고 다니고 으이그 남사스러워'하면서 간단한 연극평을 해 주셨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 어머니는 그 연극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셨던 기억이 좋으셨던지, 가끔 그 연극 얘기를 꺼내신다.
안토니오를 데리고 올라오면 부모님께 좋은 연극을 많이 보여드려야겠다.
어쨋든,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전근대인'이고자 하는 어머님을 많이 생각했다.

# 귀향 연습
어린 시절의 요람이었던 고향의 자연,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호기심으로 눈이 똥그래지고 귀가 쫑긋 세워진, 무구한 영혼의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나도 변했지만 고향도 이젠 많이 변했다. 옛것들은 망가지거나 허물어져 사라져버리고, 남아 있는 것들은 향락적 소비문화의 광기와 천박함에 지배당하고 있다. 공항에 내리면, 바로 거기서부터 서울의 연장인 듯이 비슷한 풍경의 시가지가 펼쳐지는데, 최근에는 내 출생지인 노형까지 확대되어서, 옛것들을 찾고, 옛것 속에 스며 있는 나의 과거를 찾으려는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장소들은 있는데, 거기에 깃들였던 나의 과거, 본질적이고 보다 참된 것들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밑에 깔려버린 것이다. 내 시선을 튕겨낼 뿐, 아무것도 드러내주지 않은 그 비정성에 나는 넌덜머리를 낸다. 나의 터전이었던 탑동 해변, 병문내, 한내도 콘크리트로 덮여 아주 천박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정드르의 옛집도 사라져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바다뿐, 나는 그 바다의 수평선을 시원스레 이마에 두르기 위해서 고향에 가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나의 기억이 시작된 곳은 내가 태어난 곳에서 조금은 떨어진 '리'에 자리잡은 작은 학교였다. 아버지가 교사생활을 했을 때, 우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 사택을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그 리에 위치한 국민학교 사택의 방은 한칸이었고 거기서 우리 다섯 식구는 함께 자면서 자랐다. '내방'이라는 개념을 나는 대학 다니기 전까지도 갖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내 사진은 무릎을 둥그렇게 덧댄 기운 옷을 입을 있고 앞 이 빠진 채 활짝 웃고 있다. 다 큰 지금, 가난이라는 걸 모르는 채 살고 있지만, 단언컨데 그 시절은 나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사택 뒤편에 있는 작은 뒷산은 나를 비롯한 그 주변 동네 아이들의 더할 수 없는 놀이터였다. 이 소설에서도 어린시절 개구리나 여치, 메뚜기를 가지고 장난친 얘기들이 나오는데, 나 또한 그런 생명들을 참으로 가혹하리만치 고문을 했다. 가령 개구리를 잡아 사지를 핀으로 나무에 박고 대나무로 만든 화살을 가지고 적중시키는 장난이라던지, 잠자리들을 잡아 날개를 조금씩 뜯어내 어느 정도 뜯으면 그런 대로 날 수 있는지도 실험했다. 지금 어느 아이들이 어디선가 그런 장난을 하고 있다면 난 기겁을 하며 말릴텐데... 
그런 내 최최의 기억의 장소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0년 전쯤에 찾아갔을 때 그 학교는 원래 학교 이름이 사라지고 읍내 한 초등학교의 분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택도 허물어져 버렸다. 난 차를 세워놓고 그 사라져버린 사택 부지 앞에서 한참을 씁쓸하게 서 있었다. 무언가 잃어버리며,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기영 작가의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심정이 어떤 건지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몸 가볍던 시절, 맨발로 달리다시피 하며 오고갔던 그 바위 위를 나는 지금 진땀을 흘리면서 엉금엉금 기어간다.
......
여전히 젊어 있는 이 바위는 이미 늙기 시작한 나를 알아보지 못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바위는 영원하고 나는 한시적인 존재이니까.
......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이렇게 귀향연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향 연습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동안의 서울 생활이란 부질없이 허비해 버린 세월처럼 여겨진다. 저 바다 앞에 서면, 궁극적으로는 내가 실패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엊그제는 눈큰이의 할아버님의 제삿날이었다. 우연히 그 날 이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눈큰이 할아버님은 장인어른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셔서 장인어른조차 기억속에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그날 저녁 퇴근하면서 눈큰이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는거야? 아니면 그 즈음에 돌아가셨으리라고 생각해서 날짜를 그 날로 한 거야?"
"모르겠는데?"
"그럼, 마을에서 그렇게 변을 당하신거야? 아님 산으로 들어가셨다가 그리 되셨던 거야?"
"그것도 모르겠는데?"
"아니, 할아버지 일인데 그것도 몰라?"
"자기야! 자기는 제주 4.3이 제주도에서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말 꺼내는 게 금기였다는 거 몰라? 아무도 그 때 일을 입에서 꺼내지 못했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에 대해서 국가의 대표로서 사죄한 이후에야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거야. 그 전에는 그 때 일을 꺼냈다가는 어떻게 될 줄 모른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생각해 왔었다구"
"어. 그렇구나"

가슴이 먹먹해왔다. 모두들 과거는 그냥 흘러버린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요즘 세상속에서 제주 4.3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들은 그 때의 그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참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몇 달 전 장인어른께서 퇴직하시는 날 저녁이 되어서야 눈큰이는 아버님의 입에서 할아버지 얘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 무참한 학살이 몇 십년동안 아버님의, 그리고 많은 제주의 어른들의 마음속에서 상처로 곪아가는데도 터뜨리지 못하게 했으니 그 때의 참상이 어느정도였는지 난 짐작도 못하겠다.

난 이 책이 국방부에서 밝힌 '북한찬양도서'가 된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제주 4.3의 참상을 경험자로서 약간 기술했다는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그 사람들과 죽지 못해 살아난 사람들의 처참한 생활을 기록했다는 이유 때문인가?
그 때 군이 저질렀던 끔찍한 학살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할망정 아직도 역사를 은폐하려 드는 국방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아직도...' 

 함께 듣는 음악은 영화 『Empire of ths Sun』의 Original Soundtrack 앨범(1987) 중 1번 곡 "Suo Gan"이다. The Ambrosian Junior Choir가 노래를 불렀고, 솔로는 James Rainbird가 불렀다. John Williams가 음악을 맡았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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