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문학동네(2008)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힘들 때면 찾아가는 곳이 어린 시절에 지냈던 한 시골동네의 옛 학교(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교로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와 그 주변 지역들이었다. 봄이 되면 과수원의 배꽃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고 학교 뒷편으로 끝없는 목장이 펼쳐져 있는 정말 구수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무슨 큰 사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가꾼 기억 속에서는 그 시절 사계절을 지내던 일들, 산속을 거닐고, 연을 날리고, 논길을 따라 걷고,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로 붕어를 낚는 형을 따라 가고, 비닐 비료푸대에 짚을 넣어서 산비탈 눈썰매를 온종일 타곤 했던 일들, 그 때처럼 평화로운 때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이사를 해야했고, 그런 사이 유년 시절 친구들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게 되었다.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긴 이 즈음,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던가?

 책을 덮으면서 내 역사를 새로 쓰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이 소설속 주인공들의 젊음에 대한 몰입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 그리고 내가 젊음을 참 밍숭맹숭하게, 특별한 맛 없이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썩 기분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혜택을 듬뿍 받아서든, 자식들에 올인하신 나의 부모님으로 인해서든 나의 육체와 사고는 너무도 여리게 여리게 길들여져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진정으로 이 책은 젊음에 대한 찬가이다. 어떻게 나를 찾아나가는지, 어떻게 관계라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해 들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또 다른 커다란 역사 속에 들어가는지, 정말 젊음은 이런 고민들을 품고 뜨겁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늘 뒷북 인생이다. ^^;

책은 베트남전에 파병을 가는 한 젊은이(준)가 떠나기 전 잠시 집에 들러 옛 친구들을 더듬어 찾아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준이 몇 해 전 막 젊음을 발산하기 시작한 시절을 회상하며 동료들과 자신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자 한 작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석영의 젊은 날의 방황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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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디로 가서 두고 왔던 나를 만날 것인가. 내 흔적이, 내 그림자가 어디에 남아 있는가.
......
내가 떠나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파충류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허물을 다시 뒤집어쓰고 싶어서 돌아온 건 아닌가.


어쩌면 전장에서 삶과의 이별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 준은 떠나기 전, 자신의 흔적을 찾고자 하였다. 나에게 떠난다는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기껏해야 2년 2개월 군생활을 위해서 떠나야 했을 때? 하긴 영장을 받은 3학기 마친 여름방학, 나는 내 몸을 지극히도 혹사시켰으며 그 동안 만난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참으로 열심히 만났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일까? 내 몸에, 그리고 내 마음에 무언가를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떠나기 전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해달라'는 호소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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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황에서나 개인이 감당할 만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일단 나는 나 스스로 극한 한계라는 것을 경험해 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굴곡이 있지 않다. 흔히들 '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냐?'라고 묻곤 하는데, 실제로 내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때는 시골 촌 놈이 혼자 서울로 올라와 재수생활을 할 때였다. 나와의 싸움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의 고정된 수입으로 운영되는 우리집 경제기반의 거의 절반 가까운 금액을 매 달 나에게 들이부으면서도 미안해 하시는 부모님들을 뵈야 할 때 정말 나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었다. 
작정하고 그냥 나를 혹사시키며 외우고 또 외워댔다. 초반에 무섭게 오르던 성적은 여름이 되자 고3때의 착한 성적으로 되돌아오고, 난 그 때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래. 정말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지금 이때껏 그 때가 유일한 때였다.
재수시절 대입시험이 가까워진 겨울 초입무렵 누나와 아버지께서 학원을 찾아왔다. 두툼하고 제법 고급스러운 파카를 하나 사오셨는데 누나가 내게 '이거 엄마가 매일매일 김대중 유세활동 따라다니면서 번 돈으로 산 거야. 엄만 지금 추운데 그리 돌아다니셔서 몸살앓고 계셔, 네가 잘 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짜증을 내며 '누가 얼어죽는데? 왜 그딴 짓을 해!'라고 버럭 화를 낸 것도 같고, 차마 고개를 못들고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나를 숨기려 딴전을 폈던 것도 같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치를 떨고 다시는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그 시절도 내겐 어찌보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였다. 돌이켜보면, 입대해서 1년 가까이 시도 때도 없이 고참들에게 구타를 당할 때도 몸은 힘들었지만 그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한계라는 것이 고작 이것이기에, 나는 사실 나에게 정말 극한 한계라는 것이 조만간 닥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산다. 물론, 감당해 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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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
세월이 무슨 재물 같은 거냐? 뒷전에 쌓아두고 허비하는 게 아니라구.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에 꽃밭을 가꾸는 거다.


내가 뒷세대들에게 저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런 글을 대할 때 나는 심한 무기력을 느끼며 한숨을 짓는다.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솔직히 말한다면 '누구나 내면에 욕망하는 것을 외면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어. 그게 세상야!' 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물론 그 보람이 모든 걸 감내할 만큼 크겠지만 외롭고 힘든 일이야. 꼭 그 길을 가야겠니?' 정도가 될 것이다. 그게 현재의 내 깜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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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오자 이제 다시는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춘기라는 시절을 내 스스로 겪었는지조차 의문이다. 무언가 터널을 지났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앞이 살짝 살짝 내다보이는 얕으막한 언덕길을 약간씩 오르내렸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내가 온 길은 안개인지 장막인지 모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밋밋한 내 삶이 던져준 치명타다. 과거가, 각인된 과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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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서두에 말했던 나의 안식처를 몇 번 더 찾아가다가 이젠 발을 끊었다.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부모님 집에서 차를 몰고 한 30분 정도만 가면 되는데... 학교는 폐교나 다름없이 되어 있었고, 내가 살던 사택은 허물어졌으며 그 뒷산은 깎여 나가고 이상한 공장이 들어섰다. 나도 나대로 기억속에서 예쁘게 재가공하면서 과장된 공간을 상정해 놓은 것도 있지만, 내가 돌아가 회상할 물리적 공간도 사라져버렸다. 너무 쉽게 뒤집어 버린다. 공간의 기억들과 그 때 그 곳의 풍경이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허영과 사치처럼 여겨지겠지만, 난 이런 난개발과 농촌의 피폐화가 결국 우리 삶의 궁핍함과 강팍함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한다. 공간... 그것은 나와 같은 많은 이들의 기억이 담겨져 있는,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임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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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씨팔 ……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 씨팔은 왜 붙여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 …… 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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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민중'이라는 개념을 마음속으로 느낀 배경은 사실 여러 사회과학 서적속의 '민중'개념보다 황석영의 소설집 '객지'를 통해서였다. 머리 속 이성을 통한 개념의 저장은 언제든지 폐기처분할 수 있고, 새로운 개념으로 덧씌워나갈 수 있지만 그의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무한대로 발산하는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는 내 감정속에 그대로 흡수되었고, 지금도 그때 받은 느낌(표현할 수 없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소설속에서 '객지' 소설이 씌어지게 되는 배경을 흐릿하게나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반가웠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된 민중은 '속에 있는 말을 날 것 그대로 내뱉는'. '세련됨'을 빙자한 가식이나 첨언이 없다. '사람은 씨팔 ~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나는 이런 표현을 쓰지 못한다. '씨팔~' 속에는 내가 포장하려 애쓰는, 덧붙이려 애쓰는 가식이 없다. 감추려는 게 없기 때문이고, 자신의 솔직한 몸 그대로로 노동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이이기 때문에 에둘러 가는 것도 없다. 평생을 욕한번 구성지게 제대로 못해본 나로서는 소설속이지만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삶과 언어에서 경외감과 함께, 가까이 하고 싶지만 도달하지 못할 거리감을 느끼고, 급기야는 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했다. '세계를 올바로 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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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이 책에서 준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물론, 이 한 구절에 그가 길을 떠나는 이유를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날 일기장을 펼쳐보면 난 이런 질문에 대한 답들을 나 자신에게가 아닌 외부에서 찾고 있었다. 정권 탓, 미국 탓, 악덕 자본가 탓... 탓탓탓... 
나의 젊은 시절과 가장 대비가 되는 내용들이, 그래서 나라는 존재의 발자취가 매우 초라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내용들이 바로 이러한 길찾기를 끊임없이 하는 준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난 그 길 찾기를 아직도 주저하고 이렇게 나이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문득, 기껏 떠오른 것이 농활이었다. 그 여름 방학 짧은 기간 하루종일 땡볕에서 피를 뽑고, 나무를 하고 밭을 갈면서 새참으로 먹었던 그 비빔밥, 비빔국수, 카스테라 들... 그나마 그런 활동이 없었다면 내가 그 젊은 날 언제 이런 함께 노동하고 함께 게걸스레 먹는 그 맛을 느껴볼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내 현재 위치에서 계속해서 뭔가 다른 생각과 꿈을 품는 것은 어쩌면 그 맛을 느껴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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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면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작가가 진실로 이 책을 독자들이 읽고 각인시키기를 간절히 바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은 구절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과의 청춘을 함께 뜨겁게 보냈던 벗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대학교 때의 친구들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그렇게 다시 만나서(다시 못 만나는 녀석들이 더 많지만) 이렇게 술잔 기울이며 그런저런 이야기를 할 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현재를 조금씩 감추면서 상대 친구들의 얼굴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다. 혹여 공유된 과거의 한 때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지는 순간 잠시나마 우리는 안도하고 환하게 웃는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과거를, 기억들을 그 친구들의 얼굴을 더듬으며 찾고 싶은 헛된 욕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기존의 황석영의 소설과는 분명 다르다. 뭐라고 할까? 정해진 레일에서 이탈해 전혀 다른 레일에 작가의 마음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는 느낌? 황석영씨의 소설을 최근에 본 것이라야 벌써 몇 년전에 본 책인 <오래된 정원>과 <손님>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진득하게 묻어있던 이념과 역사의 무게있는 소재들은 이 소설에서는 가끔 한 개인의 운명을 살짝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언급이 되고 있고, 철저하게 한 개인의 내적 변화, 그러니깐 보다 폭넓게 공감하는 보편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시 젊은 시절에 이 황석영의 소설을 접했다면 아니! 황석영이? 하면서 분명 의아해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뭐, 그것 자체가 황석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야' 하며 나 또한 쉽게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소설 '객지'에서 파업이 유야무야된 상황에서도 멀리 함바를 내려다보며 다시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던 그 자리에, <오래된 정원>과 <손님>처럼 쓰러진 이념의 깃대 아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상처많은 우리네 민족을 화해시키려던 굿판을 벌이던 그 역사의 장(場)에서, 이제 <개밥바라기 별>은 그냥 바람처럼 흘러가고 흘러오는 인물들을 그냥 덤덤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9때 한 벗이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나, 제주도에 갔을 때 지나치듯 만난 한 여인이 다음과 같이 툭 던진 말들 속에서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젊은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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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학생들이 서울서 큰일 치렀지요?
......
예, 친구가 죽었어요. 총 맞고 ……
이담에 역사에 물어보라 하는 건 다 헛소리예요. 사람들이 기억하려고 노력을 해야지요.


 사실, 이 구절이 눈에 띈 것은 나 스스로도 그의 소설속에서 읽어내려고 했던, 만나고자 했던 그만의 어떤 것이 있으리라는 습관적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 작가의 말
젊은이들은 과거에 '조직'이 뭘 해주었는데? 라고 반문한다. 모든 사회제도와 정치 문화는 어른들이 단단히 철통같이 정해버렸고 자기네가 규정할 가치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먹히지도 않는다. 변변한 일자리는 다 끝났다. 독립적 성인이 되는 기간은 한정없이 늘어나버렸다. 자본의 벽은 봉건시대 영주들의 성벽보다도 높고 거대하다.
노래나 음악의 경향이 다양하고 장르별로 복잡하게 나뉜 것처럼 이들의 주장도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되기를 거부하고 무정형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젊음이란 불확실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이고 선택에 따라서는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억압에 짓눌려 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고 한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오늘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사촌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엘 들러 이 책을 쥐어줬다. '세상이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중간고사 레포트 주제가 나의 향후 재무설계였어. 웃기지?'하면서 이미 어떤 삶에 대해 어떤 기대도 없는, 그래서 좀 씨니컬하게 세상을 대하는 동생에게 내가 다 못다한 말을 이 책에서 찾기를 바라면서...

책이 많이 팔렸다. 내가 한달도 채 안되었을 때 산 책이 2쇄였는데, 오늘 선물한 책은 벌써 5쇄째였다. 정말 지쳐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이 책이 많이 읽혀져서 주늑들고 초라해진 어깨들을 펴고 그들만의 젊은 열정을 억지로 죽이지 않고 마음껏 발산하는 정말 흐뭇한 풍경이 일상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나도 조만간 '낯선 마을의 고샅길 모퉁이에서 또는 들판의 두렁길 위에 서서'  개밥바라기별을 지그시 올려다보고 싶어진다. 

함께 듣는 음악은 Nick Drake의 『Pink Moon』(1972) 앨범의 2번 곡 "Place to be"이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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