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11

 

2011년, 그러니깐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북한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강진과 함께 쓰나미가 사람들의 삶터를 순식간에 덮쳤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간의 오만함이 불러온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재앙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 세계인들은 과학기술집단들과 기업과 정부가 안전하다고 외쳐왔던 원자력발전소가 인류에게 큰 재앙을 안길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렇게 짧게 기술했지만, 사실 내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렇게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기술문명을 흠뻑 뒤집어 쓴 채 한 소비자로 전락한 내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생겼다. 그러던 중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띤 책 하나가 바로 더글러스 러미스가 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였다.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으면서 저자가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독자 유형에 눈이 갔다.

 

- 광고산업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는 소비자
......
- 세계의 자연계가 사멸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슬퍼하고 있는 사람.
-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바로 내가 느끼고 있던 불편함과 위기감을 그대로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찰없는 삶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동시에 일종의 해방감 또한 맛볼 수 있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이 책에서 우리의 현재 삶이 커다란 빙산을 향해 가고 있지만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많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우리가 빙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와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막연히 믿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배에 몸을 싣고 하던 일을, 욕망하던 것들을 계속 쫓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우리를 얼러대는 존재는 다름아닌 국가이다. 그러나 20세기 국가는 국민들을 지켜주기는 커녕 오히려 핍박하고 절대폭력을 휘드르며 자국민의 대량학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국가를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가?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말이다.

 

20세기만큼 폭력에 의해 살해된 인간의 수가 많았던 100년간은 인류의 역사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선례가 없는, 전혀 새로운 기록입니다. 그리고 누가 가장 많이 사람을 죽였는가 하면, 개인도 아니고, 마피아도 아니고, 조직깡패도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입니다. ... 하와이대학의 럼멜이라는 학자가 쓴 《정부에 의한 죽음》이라는 책... 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인간의 수는 이 100년 동안 203,319,000, 즉 2억명에 달합니다. ... 살해된 것은 외국인보다도 자국민 쪽이 압도적으로 다수입니다. 럼멜에 의하면, 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약 2억명 가운데 129,547,000, 약 1억 3,000만명이 자국민이라는 것입니다. ...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살해된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와 자국민 사이의 오랜 전쟁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외쳐대는 금융가와 자본가들이 갖고 있는 세계화의 논리 또한 그 연원을 따져보면 서양의 경제제도에 들어 있지 않은 나라를 '미개발 국가'라 명명하면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선진국의 자본을 들여와 해당 국가의 전통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상품시장으로 만들어 온 역사에 기대어 있다. 한미 FTA는 바로 그러한 '개발 착취'에 대한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경제발전은 한 국가 내의 빈부의 차를 심화시키고, 심지어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빈부의 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커다란 원인이 된다.

 

경제발전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원인의 하나입니다. 물론 빈부의 차이는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경제발전으로 비로소 빈부의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본래 있었던 빈부의 차를 경제발전이 합리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합리화라고 하는 것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고쳐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빈곤의 근대화'란 곧 '빈곤의 합리화'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주장한다. 더 이상 경제성장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제로성장' 다시 말해 주체적으로 '탈성장'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에 쫓겨가며 행복을 미래에 저당잡히고 힘겹게 사는 삶을 벗어나는 것, 주위사람들 것을 뺏아가면서 부를 쫓지 않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결국 자연의 자원을 파괴하고 빈자를 더욱 수탈하면서 부자인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노인들만 사는 가난한 시골 농촌 마을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방사능 누출의 위험을 전가하면서 부의 대명사인 대도시 사람들은 저 멀리서 펑펑 에너지를 물쓰듯 하는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젠 깨달아야 한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은 그 경제성장, 기술발전의 거짓된 논리가 부자건 가난한 사람들이건 모두를 파멸로 몰고 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과잉발전한 나라를 ...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계속해왔지만 그 발전이 그 사회의 안전보장이나 참다운 의미의 풍요, 쾌락, 행복과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 무관심, 목적 상실, 우울, 폭력. 꿈이 없는 젊은이나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사회에는 많이 있고, 그들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많이 진행된 곳일수록 그런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 확실히 성장사회에는 즐길 수 있는 기계나 오락 따위가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나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 기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은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 혹은 개개인 모두 매우 뒤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항발전'은 금욕주의가 아니라, 참다운 의미의 행복주의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 소비에 따른 행복주의가 아니라 참다운 뜻의 행복주의. 인간의 즐거움, 행복을 느끼는 능력, 그것을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삶에서 여유를 되찾고, 과거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것처럼 자연과 뭍생명들과 공생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수탈해가면서 만들어진 상품들을 펑펑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하는 과정을 멈추고 직접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탈에너지, 탈소비, 탈성장으로 우리가 가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채워주는 공동체 생활을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이러한 삶이 선택이 아닌 인류 재앙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의무사항이 될 날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석유를 포함한 화석연료의 가파른 고갈을 예언하고 있고, 석유화학비료와 농약이 중심이 된 '녹색혁명'은 결국 온 지구의 농토를 황폐화하고 사막화시키고 있으며, 대기 오염으로 인한 온실효과는 일주일에 남한 크기만한 빙하를 녹게 만들어 바다 수위를 점점 높여가게 하고 있다. 그 어떤 지표도 인간의 아름다운 종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너무 늦은 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반이다. 우리가 탈성장을 삶의 중심에 놓고 다시 현재의 우리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찾는다면 우리는 금방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지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깨닫고 함께 뭉쳐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신문이나 텔레비전으로 접하는 정치뉴스를 보면서 무기력한 채로 직장에 가서 끝이 보이지 않는 부를 쫓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협력하는 존재 나아가 활력있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지금 시급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을 접하고 나는 그러한 삶에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현재 어렴풋하지만 내가 구하고 있는 답은 바로 귀농이다. 스스로 자급자족하면서 에너지에 덜 의존하고 소비자로서가 아닌 생산자의 삶을 살아가고, 나 스스로 소박하게 살며 여유 시간을 공동체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사는 삶... 이것이 내가 귀농을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런 삶을 살 때 나는 더 이상 광고산업에 굴복당하는 바보 소비자가 아닐 것이며, 세계의 자연계와 생명에 의존해서 그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우리 후세에게 물려주는 희망을 발견할 것이며, 위기가 닥치더라도 나 스스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그 위기를 현명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이 책은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책이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함께 들을 곡은 Nina Simon의 『The very best of Nina Simon』(2003)  두 장짜리 앨범 중 첫 번째 CD의 첫번째 곡인 "Ne Me Quitte Pas" 입니다.

  

 

저작권 위반 의심이 된다는 문구가 떠서 혹시 음악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아래 유튜브 음악을 통해 들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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