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출근이다.

2월 12일 병가를 냈으니깐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나서 다시 회사에 복귀를 하는 셈이다.
다친 무릎에는 이제 어느 정도 힘이 생겨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평지의 경우는 목발 없이도 천천히 걷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작년 8월에 다친 다리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나를 비롯해서 회사 사람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 번의 수술이라니. 군대가기 전 내 몸에 칼을 댄 것 외에는 한 번도 입원 또는 수술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내가 몇 달 간격을 두고 무릎에 두 개의 큰 흉터를 만들어 놓았으니 내 정신적인 충격도 꽤 큰 셈이다.

평소 좋아하던 운동을 못했으니 온 몸은 이젠 살들로 넘쳐나고, 따라서 복귀할 회사 사람들로부터 무슨 소리를 들을 지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매일 거울을 보는 나 자신도 이전과 다르게 몸 이곳 저곳이 부어오른 듯 살이 올랐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더 답답한 것은 의사 선생의 '당분간은 하루 20분 정도만 걸으세요'라는 말처럼 아직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먹는 걸로만 조절해야 한다는 사실인데... 그동안 30여년이 넘는 동안 길들여져온 나의 식습관을 쉽게 바꿀 수도 없는 일...
'에휴... 모르겠다. 너네 찌고 싶은대로 해라. 단, 내 다리만 다 나으면 너희들은 이젠 죽을 줄 알어'라는 애매한 다짐만 하고 현실을 방기해버린다. 쩝~

그러지 않아도 오늘 직장에서 작은 동아리를 하는 맴버들끼리 저녁에 모여서 연극 '늘근 도둑이야기'를 볼 일이 있었다.
나를 만나자 마자 사람들이 한 말들은 모두 "어~ 상당히 쪘네요"였다. 그리고 나서 바로 들어선 분식집에서는 누가 시작한 것도 아닌데 살빼는 얘기들이 오갔다. 맞는 바지가 없어서 당분간에는 점심을 굶을까 한다는 나의 말에, 점심보다는 저녁을 굶어보라는 얘기부터 세끼는 먹되 양을 줄여서 먹어야 한다는 둥...
상당히 창피스러운 시간이었다. 내 몸에 대해, 그것도 다친 다리가 아니라 살찐 몸에 대해서 심각하게 걱정해주는 발언들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는 먹는 것 조차가 자유롭지 않았다. ^^;
그래서 올 한 해 바라는 게 뭐냐고 물으면 무조건 다리 회복된 후 옛날 몸으로 되돌리는 거라고 대놓고 말하고 다닌다. 오래전부터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확신을 가지고 생활해왔던 나였는데 이런 한 해 바람이 내게도 찾아올 줄이야.

몸얘기는 일단 여기서 끝내고, 오늘 본 '늘근도둑이야기' 연극은 평소 기대를 많이 해서였는지 썩 '브라보'를 외칠만큼 잘 짜여진 연극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문화관련 소비가 상당히 적은 우리 부부가 수술 전에 꼭 보고 싶어서 예매를 하려 달겨들었으나 이미 모든 공연이 연속으로 매진이었기에 볼 수 없었던 연극이었을 정도로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도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연극이었지만 정작 연극 자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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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의 감독이었던 김지훈씨가 연출을 맡았고, 마찬가지로 그 영화에서 내 눈에 깊이 각인되었던 배우 '박철민'이 나오는 연극이라는 정도만으로도 기대했던 연극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 공연은 '박철민'이 나오지 않고 다른 배우가 대신 나와서 연기를 했다.

형무소에서 얼마전에 출소한 두 늙은이들이 한 '부유한 저택'?)이라 생각되는 곳을 털기 위해 몰래 들어가 '1980. 5.18 무죄'라고 각인되어 있는 '금고'(?)를 털려고 하는데 개가 하도 짖어대자 주변이 잠잠할 때까지 기다리다 서로의 지난 과거들과 생각들을 재미있게 때로는 슬프게 주고 받고 울명 떠들다가 갑자기 싸이렌이 울리는데...

물론, 그 날 '박철민' 대신 연기했던 '정경호'라는 배우 또한 연기를 못한 게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연극을 보는 내내 '박철민'이 했더라면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이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연극을 본 다른 동료직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편, 연극 도중에 그들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패러디해서 "니는 신영복선샹의 '학교로부터의 사색'도 못 읽어봤냐?" 하고 묻는 장면에서 왠걸? 우리들만 큰 소리로 웃고 대부분 관객의 분위기가 썰렁했는데 그 사실이 더 문화적 충격, 아니 세대적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긴. 그 책이 널리 읽혔을 때가 벌써 십수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외에도 5.18 이라는 역사적 사건들과 연관된 부분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이 거의 "저게 뭐지?"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라는 식이어서 연극 전체 흐름이 이렇게 관객과의 소통에서 맥이 틱틱 끊어지는 걸 많이 느꼈다.

또 한 예를 들자면 그들이 잡혀들어간 곳에는 '욕조'가 많다는 사실에 두 도둑들은 바들바들 떨지만 젊은 관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객석에서는 별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박종철' 키워드를 대부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 그런 역사적 소재거리를 끼워넣었지만 그것이 연출가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심각하게 잊혀진 소재거리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극 중 두 늙은 도둑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연기가 사람들을 뒤집어 놓아 극장은 매일 연일 성황이라지만 이런 관객과 연극이 주고받는 소통이 부분부분 끊기면서 느껴졌던 난처함은 확실히 연극의 집중도와 맛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문화생활 한 번 하고 입원하기 위해 지난 번 수술 전에 억지로 시간을 잡아 본 연극 '라이어'에 이어 최근에 본 연극이었지만 두 연극 모두 진한 감동보다는 억지 웃음으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게 했던 연극들이었다. 물론, 늘근도둑이야기를 라이어와 비교하고자 표현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함께 듣는 음악은 소프라노 Inessa Galante의 "Galante Forever..."(2001) 앨범 중에서 1번 곡 헨델(G.F. Handel) : 오페라 [리날도](Rinaldo) 중 '슬퍼하게 내버려두세요'(Lascia ch'io piang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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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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