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3가지 문제를 내볼테니 여러분이 선호하는 쪽을 골라보세요.


문제1. 다음 중 선호하는 쪽을 고르시오.
        A. 확실하게 30만원을 손에 넣는다. 
        B. 80% 확률로 45만원을 손에 넣는다.


좀 더 알기 쉽게 바꿔 말하면 A는 눈앞에 100개의 병 모두에 30만원이 들어 있습니다. B는 100개의 병 가운데 80개에는 45만원이 들어 있고 20개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편하게 고르셨나요? 그러면 이번에는 두 번째 문제를 내 볼께요.


문제2. 두 단계로 이루어진 게임이 있습니다. 1단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게임이 종료될 확률이 75퍼센트, 2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은 25퍼센트입니다. 2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택문항이 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선호하는 쪽을 골라야 합니다. 
       C. 확실하게 30만원을 손에 넣는다 
       D. 80% 확률로 45만원을 손에 넣는다


또 선택을 하셨나요? 바로 세 번째 문제를 내 볼께요. 

문제3. 다음 중 선호하는 쪽을 고르시오.
      E. 25%의 확률로 30만원을 손에 넣는다 
      F. 20%의 확률로 45만원을 손에 넣는다


조금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라면 문제를 풀면서 바로 감잡으셨겠지요?^^ 세 번째 문제에서는 ‘확실하게’라는 표현이 사라졌죠? 
두 번째 문제에서는 끝에 ‘2단계까지 진출할 수 있는 것은 25%’라는 전제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말이 다를 뿐이지 문제2와 문제3은 수학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두 번째 문항에서는 C를 선택했다가도 세 번째 문항에서는 F를 선택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재미있지요? 이건 제가 낸 문제가 아니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라는 이스라엘 태생의 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함께 스탠퍼드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입니다. 스탠퍼드 학생들의 선택도 여러분의 선택과는 크게 차이가 없었어요. 
트버스키는 이를 ‘확실성 효과Certainty Effect’라고 불렀어요. 사실은 우연에 좌우되는 데도 ‘확실’이라는 말에 현혹되고 만다는 사실을 밝혀낸 실험이죠. ^^


자, 위의 실험 결과에 기반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볼까요?


"적으로 둘러싸인 국가가 현재 보유 중인 핵을 폐기할지 말지 정치 논의를 하고 있다고 치자. 전쟁이 일어나면 이 핵은 틀림없이 생존에 기여하는 비장의 카드가 될 것이다. 한편 이 핵을 폐기하면 전쟁 가능성은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사항이다. 이때 정치 논의에서 핵보유파가 우세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트버스키가 한 말은 아니구요. 제가 북한의 벼랑끝 전술로 일컬어지는 북핵문제를 염두에 두고 약간 변용을 해봤습니다. 어때요? 조금이라도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이 실험을 고안한 트버스키는 원래 이스라엘 군인이었어요. 트버스키는 아래와 같은 예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적으로 둘러싸인 민주국가가 현재 점령 중인 국외의 영토를 반환할지 말지 정치 논의를 하고 있다고 치자. 전쟁이 일어나면 이 영토는 틀림없이 승리에 기여하는 비장의 카드가 될 것이다. 한편 이 영토를 반환하면 전쟁 가능성은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사항이다. 이때 정치 논의에서 점령 유지파가 우세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네 그래요. 적으로 둘러싸인 민주국가란 이스라엘을 상정하는 것이겠지요. 국외 영토라 함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역에 있는 가자지구를 가리키구요. 우리에게는 이해가 안되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지구 점령정책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내에서도 점령 유지파와 반환파가 대립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트버스키는 이 실험을 통해 두 세력의 논쟁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점령 유지파가 이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북핵에 대한 북의 내부 입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데 북이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하지만 전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고 불확실성의 세계에 뛰어든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문재인 정부의 기여를 생각했습니다. 북을 설득해서 그들에게는 불확실하지만 세계가 요구하는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데 있어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박지원 의원이 ‘단군이래 처음’이라고 과장되게 표현한 만큼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너무나 쉽게 편향될 수 있는 ‘확실성 효과’를 극복해 나가는 길로 끌어가고 있으니깐 말이죠.




연신 감탄을 하면서 두 번을 반복해서 읽은 책이 있습니다. 일본 역사학자 가토 요코라는 분이 일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왜 전쟁까지>(양지연 번역, 사계절, 2018)에 나오는 구절의 일부(136~141쪽)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일본이 왜 세계가 제시하는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는 분명 불확실했을) 길을 가지 않고 식민지들을 고수한 채 전쟁으로 치달아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부분인데요. 제가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변용해 봤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1940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군사동맹, 그리고 1941년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미일교섭. 이 세 시기 일본에게 주어진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일본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일본이 자국민들과 주변국들에게 어떻게 끔찍한 재앙을 안겼는지를, 당시 각국 외교문서 및 위정자의 발언과 언론보도 내용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데요. 마치 그 시대를 살면서 정책 결정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착시감이 들 정도로 그 선택의 상황을 소설처럼 박진감넘치게 엮어낸 역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혀진 적이 평생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이 책은 저에게 충격적이었어요. 저자 가토 요코는 2015년 아베정권에 의해서 안보법제가 통과되면서 전후 일본 사회와 헌법의 근간을 이루던 전쟁포기, 평화주의가 뿌리채 흔들렸던 10월부터 반년동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 강의를 진행하였다고 해요.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지은이 가토 요코는 역사학자로서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 강의를 통해서 ‘과거에 일본이 마주했던 선택의 시간을, 결국 전쟁까지 이르게 된 세 번의 실패한 선택’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었죠.

가토 요코는 끊임없이, 전쟁을 직접 수행하려는 국가가 되려는 아베 정권의 전후 70년(2015년) 세계에 대한 입장과 행보에 대해, 과거의 실패한 선택의 장면들을 거울로 비추면서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역사는 국민과 세계인에게 ‘선善’을 호소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국가가 세계를 이끌어갔다는 사실을 21세기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말이지요.


침소봉대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번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세계인에게 선善을 호소하는’ 남북 정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책은 일본의 현재 정치세력과 그에 추종하는 일부 국민들에 대한 경고를 담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파헤치는‘ 역사라는 학문이 끊임없이 현재를 재해석하게끔 만드는, 그래서 잘못된 미래를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지혜가 가득한 보물창고라는 보편적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지요.


저자가 이야기한 (선善을 호소할 수 있는 힘이라 할 수 있는) ‘세계가 제시하는 길’이라는 것이 어쩌면 2차대전 승전국(영국, 미국으로 대표되는)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후적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궤변이 아니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요. 저도 처음 책을 읽고 덮을 때는 이런 의문이 들면서 결국 힘의 편에 저자가 서서 ‘세계의 길’을 이야기한 게 아닌가 약간의 거부반응이 일었는데요. 처음 읽을 때는 혀를 내두르면서 너무 푹 빠져 읽다가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던 이 저자의 매우 중요한 멘트를 두 번째 읽을 때 발견했습니다.


“독일과 영국, 일본과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 배경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독일과 영국이 그렇게까지 대립으로 치달았던 이유는 유럽 질서의 형태를 둘러싼 규칙, 자원 분배 규칙, 그리고 그런 규칙을 누가 만들 것인가를 두고 경쟁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를 테면 의회제 민주주의로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할 것인가라는 식으로요. 파시즘은 국내외 문제에 관한 국민의 위기감을 선동하면서 결정에 시간이 걸리는 의회 권한을 없애고 일당독재, 테러, 폭력 행사를 통한 ‘공포의 지배’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위의 책, 386쪽)


그런 점에서 북한의 갈 길을, 그리고 평화를 위한 협상에 있어서는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과제를 생각해 봅니다. 의회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는?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정보의 공개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정이 놓여있는 셈이지만 바로 이 문제가 ‘세계의 길’이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를 가로지르는 핵심이 아닐까 싶고, 저자가 반년 동안 강의를 이어오면서 하고 싶었던 아베정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역사학자가 일본에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어요. 나이 사십 중반을 넘긴 저에게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것을 말로만이 아니라 확실하게 인식시켜 준 최고의 역사책으로 당분간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함께 듣는 음악은 Vodka Rain의 2집 앨범 <Flavor> (2008)앨범의 5번 곡 "Magical mystery fou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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