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새삼 너무 무겁고 힘들어 쓰지 못하고 있다.

 

시게마츠 기요시라는 일본 작가가 쓴 『십자가』(이선희 옮김, 예담, 2013)라는 소설을 두 번 읽었다. 
왕따를 당하다 자살한 중2 학생(후지슌)의 부모와,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방관자'로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또는 '예상했으면서도 죽게 내버려뒀던') 학생들이 '그 사건' 이후 20여년 동안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지를 담담하게 냉정하게, 그래서 한구절 한구절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도록 기록했다.

 

그 중 한 대목.

여러번의 수정과 수정을 거쳐 같은 반 아이들이 작성한 (나름 진심이 묻어나게 열심히 썼다고 하는) 반성문을 학교로부터 넘겨받은 후지슌의 아버지는 그 반성문들을 언론에 폭로하고, 언론은 거기에서 거기인 형식적인 반성문들이라며 학교와 학생들을 비판한다. 그 아버지의 행위는 선생님과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의 진심을 져버렸다는 원성을 산다.
한 해 뒤 졸업식장에서는 홀연히 나타나 기립한 채로 아들의 영정사진을 높이 치켜 올린 채 침묵을 한 채 서있으면서 참석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물론, 예상했겠지만 졸업사진 어디에서도 후지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죽은 후지슌이 '절친'이라고 유서에 썼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래서 계속 괴로워했던) '나'는 후지슌의 기일에 그 아버지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람... 이렇게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던가? 이렇게 목이 가늘고 약했던가? 이미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후련한 게 아니라, 이제는 그날처럼 무거운 것을 등에 질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228쪽)

......

"저희 반성문을 …… 왜 매스컴에 주셨어요?"

"나에게 준 거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잖아."

"……복수였나요?"

화를 낼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않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

"거짓말이 쓰여 있었으니까."

"……어떤 거짓말이었죠?"

"평생 잊지 않겠다고 쓴 녀석이 몇 명이나 있었지."

후지슌을…….

우리가 후지슌에게 한 짓을…….

그때의 후회와 슬픔과 미안함을…….

"그건 거짓말이야."

언젠가는 잊는다…….

언젠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이 돌아온다…….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잊지 않도록 해준 거야."

졸업식 때 후지슌의 영정을 높이 치켜든 것도 똑같은 이유였으리라. (231쪽)

 

근 20여일 넘게 마음이 붕 뜬 채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이틀이 멀다하고 세월호와 관련된 소식들을 접하면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인이 된 아이들을 포함한 탑승자들에게, 그리고 이제 전혀 다른 끔찍한 삶을 맞딱트려야 하는 그들의 부모들과 형제자매들을 향해서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내뱉지 못하는 것은 나 또한 이 체제의 방관자였고, 동조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알면서도 나랑 크게 상관없으니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철저하게 저항하지도 않았고 단지 가십거리로 궁시렁만 댔으며, 그래서 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제1장 제물

비극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무의식중에 되어 있었던 것이다. 9월 5일 아침의 교실을 휘감은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혹스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27쪽)

 

 

"너희는 평생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죽게 내러벼둔 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56쪽)

 

이 무시무시한 부정과 무관심과 폭력의 벽 앞에서, 그리고 다시 쳇바퀴처럼 돌아갈 일상 앞에서 피해자 분들과 유가족 앞에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진심으로 말할 날이 올런지 나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진실이라며 흘러나오는 소식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닥부터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12월 호에서는 후지슌이 자살한 이후, 학교와 교육위원회의 대응에 대해서 혹독하게 비판했다. 1월호에서는 우리 학교가 작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폭로했고, 문제 학생들을 제압한 도미오카 선생님의 체벌도 '교사의 폭력에 의해 쌓인 학생들의 불만이 음습한 왕따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라고 비난했다. 2월호의 표적은 미시마와 네모토의 부모님이었다. 취재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 후지슌의 양친을 찾아가지도 않은 것, 애초에 무책임하게 그냥 내버려둔 탓에 자식들이 불량해진 것……. (144쪽)

 

세월호와 관련하여서도 앞으로 진행될 정부의 대응과 언론보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보도를 한다고 해서 언론을 탓할 일은 아니다. ('기레기'라고 이름 붙여지는 언론 아닌 언론은 여기서 제외해두도록 하자.) 문제는 이런 언론보도와 정부대응 형태로는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이 분노와 죄책감과 슬픔 중 어느 하나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데 있다. 한편으로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 사이에서 우리는 슬픔과 당혹감과 죄책감을 가지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초동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고 먼저 배를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을 향하여 비난하는 것에서부터, 개인개인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고,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비리와 부정의한 권력 네트워크로 이뤄진 구조의 벽 앞에서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는 그 사이 어딘가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왕따 문제를 무겁게 말하는 평론가나 앵커가 있으면 '왕따는 교육의 황폐화나 마음속의 어둠처럼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반대로 가볍게 다루어도 화가 치밀었다. 중년의 대학교수가 청소년들을 격려할 생각으로, 왕따 따위에 지지 말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TV에서 말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티슈 상자를 움켜쥐고 짓눌러 버렸을 정도였다.

왕따는 어린아이 같은 짓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문제를 어린아이의 유치한 잘못으로 끝내버리면 안 된다. (217쪽)

 

 

 

 

제발, 이 참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대에서만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는 넘겨주고 싶지 않은 그런 '십자가'로...
작가는 20여년의 시간을 보여주며(물론, 이것도 끝이 아니다) 묻는다. 당신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답이 없다. 어떻게 해야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알지 못하겠다.

 

후지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우리의 기나긴 여행의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길고 괴로운 여행일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더구나 어디에 도착해야 좋을지 알 수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73쪽)

......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 두 가지가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은 혼다씨였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

......

"...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나서 다시 이었다.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그러나 십자가의 말은 다르다고 했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5쪽)

 

다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 이 사고를 이전의 씨랜드 화재처럼, 성수대교 붕괴사고처럼, 상품백화점 붕괴참사처럼 ... 잊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의 일상을 자극할 일을 만나면 다시 이 사고를, 이 꽃잎 채 펼치지 못했던 아이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무섭다. 두렵다. 그리고 지금 커가는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다.

 

물론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 애의 죽음도, 우리가 그 애에게 한 일도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계속 남아 있었다. 다만 그곳에 뚜껑이 생겼다. 처음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억지로 닫았지만, 어느새 뚜껑이 딱 맞아서 그냥 내버려두어도 열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정말로 열리지 않는지 살며시 뚜껑을 들어올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138쪽)

......

나는 후지슌을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싶은 걸까?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 친구들은 이제 완전히 회복됐을까, 아직 뭔가 등에 짊어지고 있을까? 평소의 모습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서로 확인해보고 "나도 마찬가지야"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질까, 오히려 더 답답해질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139쪽)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며칠은 '제발 제발~'하는 마음으로 기도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순간은 수학여행을 떠나보낸 생때같은 자식들의 죽음을 거대하게 몰려오는 파도 앞에서 지켜봐야했을 부모들, 그리고 그 형제자매들이 앞으로 맞딱트릴 인생이라는 길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오며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그리고 '인정'이라는 건 눈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구조화된, 그리고 거대해진 권력집단은 계속해서 그들의 슬픔을 애써 축소하고 가리려는 데 급급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그 모습에 나는 징그러움과 경멸, 분노를 느끼고 있다. 내가 바랐던 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온 힘을 다해 이러한 일이 왜 발생했는지를 밝혀내려 움직이고, 진정성을 다 담아 이 국가적 슬픔을 함께 애도하는 그런 모습을 '리더'라는 사람과 집단들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떤 말도 지금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는다지만, 진정이 담긴 슬픔과 애도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려는 모습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 이 권력에게서는 기대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뭐랄까, 두 분은 상처의 딱지가 굳을 때쯤이면 손톱으로 할퀴어 떼어내고, 또 굳을 때쯤이면 떼어내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괴로운 추억이 문득 되살아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멋대로 딱지를 떼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두 분 모두 다시는 일어서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310쪽)

 

 "생각해봐, 같은 반 학생이 죽었어. 더구나 자살이고, 더구나 왕따 때문이야. 그런데 동요하지 않을 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때는 동요해야 하는 거고, 동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래? 인간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동요하게 돼 있어. 충격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 고민과 괴로움을 가르쳐주는 게 학교가 아닐까?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272쪽)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은 '모든 것은 당신하기에 달려있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며 각개전투의 장으로 국민들을 내몰았다. 서로 으르렁 거리며 서로의 것을 뺏도록 했다. 룰 같은 건 개나 줘버려~ 하면서 심판자를 자처한 정권은 그 이데올로기의 포탄을 쉴 새 없이 뿌리며 공공연히 거대해진 강자집단들의 계속되는 약탈을 지원했다. 개겨보지도 못하는 고립되어 있는 겁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집 문을 더욱 꽁꽁 잠갔으며,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눈 부라리며 매섭게 노려보며 살게 되었다. 여기서 도태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내달려온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제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시무시한 위험 앞에 아무 이유 없이 '선택'될 수 있다는 위기에 직면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현실에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열심히 살아왔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서 아둥바둥 살아온 우리들 앞에 이 어린 학생들의 주검이 둥둥떠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살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또한 뚜렷하게 답을 찾지 못해 이렇게 주절대고 방황하고 답답해 하고 있다. 그러나 난 이 책의 한 구절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답을 찾고 있다. 

 

"그런데 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

"뭔데요?"

"인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절망할까? 아니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절망할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도 즉시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면서 화제를 바꾸었다. (270쪽)   

 

멈춰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서로가 싸움의 대상이 아닌 함께 손을 잡고 이 슬픔을 서로 어루만져주고, 이 사건이 있기까지 만들어졌을 부패와 부정의와 탐욕으로 똘똘 뭉쳐 있을 저 권력을 쥔 자들(사실, 저들은 서로 긴밀한 연줄을 만들어서 세를 과시하는 자들 아닌가! 그러면서 우리보고는 우리 삶은 우리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서 각개전투를 명령하고 교육하는 자들 아닌가!)에 맞서 싸워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위가 어찌되었던 혼자 아둥바둥 사는 우리들이 무관심과 방관의 먹이를 주면서길러낸 이 괴물들 앞에서 우리는 이제 서로 손을 잡고 이웃하며 이 거대한 공룡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해야 한다. 만약 위험에 직면한 사람을 만나면 빙 둘러싸서 구경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여기 우리가 있어요'하고 고함치고 달려가고 손잡아 줄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한다.

 

알피 콘이 지은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책에는 이러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막는 다섯 가지의 방법이 나와 있다.

 

1. 세상을 좁게 보라 - 개인의 심리적 불안은 사회구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 사회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

2. 적응하라 - 각종 매체들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거의 모든 충고들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순응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3. 자신만을 생각하라 - 모든 관심을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한다면 지금의 사회제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4. 현실적이 되라-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미 정해진 사회제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어쩔 수 없잖아", 혹은 "그게 바로 현실이야"라고 말하면 된다. 이렇게 개인의 무력함을 내세우는 것은 실제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5. 합리화하라 - 비판을 피하기 위해 -동시에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자신은 '체제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려고' 지금처럼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체제에 안주하며 자신의 지위를 높여간다.

 

우리가 위의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에라도 물들어 있다면 우리는 이 공룡과 싸울 수 없다. 정확히 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이런 십자가를 지워주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때늦은 후회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만약 나처럼 제방 길에서 쳐다본 사람이 있었다면 나뭇가지에 후지슌이 매달려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아니, 그러기 전에 제방 길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후지슌은 자살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44쪽)

 

 

"용기를 가져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최악이다", "친구를 죽게 만들지 마라" ……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당시 담임이었던 도미오카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아빠는 옛날에 그렇게 하지 못한 걸 계속 후회하고 있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326쪽)

 

그 때 우리는 '잊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왕따라는 문제를 다룬 소설이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진심으로...

 

함께 듣는 음악은 Regina Carter의 『Paganini: after a dream』(2003) 앨범 중 4번 곡인 Astor Piazzolla의 'Obliv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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