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경향신문 2면 상단에는 "FDA '세 사람 유전자 받은 아기' 논의 파장"이라는 제목으로 '장차 생길지 모를 유전자 결함을 수정란 단계에서 미리 제거하기 위해' 엄마, 아빠 이외의 다른 여성의 난자 일부분을 빌려 시험관 아기를 갖는 방식에 대해 FDA가 전문가회의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통해 생명공학이 엄청난 국가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에 전 국민이 빠져든 적이 있다. 나 또한 그 당시 경제적 가치로만, 그리고 국가적 자랑거리로만 그 부분을 받아들였지 생명윤리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위의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하여 "생명윤리에 미칠 함의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유전자를 기준으로 아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디자이너 베이비(맞춤형 아기)'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기사를 접하는 순간 2009년 경에 읽었던 『인간의 미래』(라메즈 남, 남윤호 옮김, 동아시아, 2007)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접하면서 생명공학이 질주하고 있는 목적지의 풍경에 나는 사실 공포를 느꼈었다. 위의 기사에서 '맞춤형 아기'라고 표현한 좀 더 구체적인 장면을 이 책에서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년인가 20년 후에는 ... 한 사람분의 전체 유전자 지도를 단 몇 시간 만에 작성하게 될 것이다. 속도가 그 정도 빨라지면 유전자 기능에 관한 연구도 성큼성큼 진전된다. 그 결과 심장병이나 암, 기타 질병에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관여하는지 더 종합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비용이 싸지면 유전자 해석 기술의 쓰임새가 질병 규명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키, 얼굴 생김새, 근육, 눈, 피부, 머리카락 색깔 등 신체적 특징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다. 나아가 지능, 성격, 기분 등 정신적 특징에 관계된 유전자를 식별해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게 두 번째 효과로 이어진다. ... 각 유전자의 기능을 알게 되면 부모는 태어날 아기의 외모나 지능, 성격에 대해 미리 감을 잡을 수 있다.
......
"각각의 배아가 착상해 성장하면 이런 모습의 어린이가 되고, 장성한 다음엔 이런 어른이 됩니다" 하며 컴퓨터 그래픽 사진도 곁들여 나온다.

 

최근에 나는 8년만에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계획된 것도 아니고, 단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나 그리고 부모로서의 우리에게나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생긴다면 아이 하나를 더 낳아 키워야겠다고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던 때 아이가 생긴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임신과 출산의 기억들을 우리 둘 모두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았기 때문에 출산 육아를 가나다부터 다시 배워가야 했고, 겪어야 했다. 그러나 위의 미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임신을 하기 전 병원 쇼파에 앉아 남자, 여자의 유전자를 통해 조합된 여러 미래의 아이들 A B C의 (심지어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사진과 예측되는 질병, 성격 등의 수많은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부가 상의를 하여 가장 적합한 아이(신문 기사에서는 그걸 '유전자 조작 상품GMO'으로 비판하는 내용도 옮겨 실었다)를 고른다. 그 정도 편리한 상황이면 엄마도 굳이 배 속에 아이를 키울 필요가 없는 것은 자명한 터, 아이는 시험관 아이로 기계 공간 속에서 숙성되어 신생아로 자라날 것이다.

 

라미스 남은 이 책에서 이러한 풍경을 인간의 전 분야에 걸쳐 흥분감을 못 감추며 이야기한다. 스포츠에서는 유전자를 건드려 뛰어난 선수가 배출될 수 있고, '마치 조각이라도 하듯 우리의 정신을 깎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여 성격, 기억력, 학습능력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170세'라는 구체적인 평균 수명의 연장에 대해서 언급하기까지 한다. "노화는 불변의 현상이 아닙니다. 신의 은총도 아닙니다. 노화는 유전자와 관련한 문제이며,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라면서 말이다. 수명이 길어지게 되면 단순히 개인문제가 아니다.

 

고령자가 인생과 권력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면 진보는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도 급진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려는 신세대와 그렇지 못한 보수적인 구세대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사회, 정치, 학문 분야에서 정체 현상과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것은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는 얘기다. 그러나 고령자로 인한 정체 현상을 막아 줄 강력한 수단이 있다. 수명 연장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장수를 안겨다 줄 뿐 아니라 뇌나 신체를 젊게 유지시켜 준다. 젊고 왕성한 뇌는 무엇이든 빨리 받아들이고 새로운 상황에 쉽게 적응한다. 21세기 중반경엔 65세가 되어도 25세처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유연성에는 65년에 걸친 인생에서 얻은 경험도 덧붙여진다.  

 

이런 고령화 사회가 되면 젊은  세대 중심의 폭력 범죄도 줄어들게 되고 현 노인들의 높은 투표율이 보여주듯 시민 생활에 대한 참여도도 높아진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미래'를 어디까지 상상하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을 이 책은 보여줄 것이다. 아직도 내가 옮기지 못한 끔찍한(그래 나한테는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미래 풍경들은 널리고 널렸다. 나에게 이 저자가 그려내는 장밋빛 미래풍경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인류를 오만의 극으로 치닫게 할 기술 문명의 또 다른 파국의 전단계처럼 여겨졌다. 위의 신문 기사처럼 당장에 생명윤리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라고 그런 비판을 모르지는 않을 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바이오 보수주의자'로 칭하며 비판의 칼을 빼든다.

 

생물학적 현상 유지 옹호론자인 '바이오 보수주의자'들의 주장 이면에는 공식적으로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가정이 숨어 있다. 즉 소수의 엘리트 집단(의원, 관료, 직업적 윤리학자 등)은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으며, 수백만 또는 수십억 대중을 위해 좋은 결정을 내려 줄 수 있고, 이는 개개인 스스로에게 맡겨 두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가정이다.

 

유전자조작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꼈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일순간에 보수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엘리트 집단이 되어 버리는 이 상황.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논리 속에서 진보를 꿰찬 그는 더 단호하게 '보수주의자'의 맞은 편에 자신을 위치시켜 버린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환영하며, 사회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구를 금지하기보다 우리의 심신을 개선할 힘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간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직된 사고방식을 강요하기보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믿어 줘야 한다.

 

저자 라메즈 남은 이전의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을 때도 그 반대 단체들이 "하늘에 반항하며 신의 뜻에 거역하는 것"이라고 규탄하면서 "신의 법에 따라 접종을 금지한다"고 선언했고, 이미 사회는 피임 도구나 피임약 개발, 초음파 검사나 출생 전 진단, 제왕절개 수술, 인큐베이터 등의 기술발전을 통해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생명공학은 바로 신체적, 정신적 문제로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유독 이 책에서 특정인 '제레미 리프킨'에 대해 비판의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는 인상을 받는데 다음과 같은 비판이 결정적이다.

 

체외수정(IVF)으로 아이가 처음 탄생했을 때 많은 반대론자들이 비슷한 맥락의 걱정을 했다. 그들은 체외 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수정 후 며칠간 시험관 속에서 자라는 것을 두고 '인공적'인 아이들이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평생 마음에 상처를 지며 살게 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 제레미 리프킨은 이렇게 말했다. "(IVF로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생명을 얻은 게 아니라 그저 연구실에서 기술자가 정자와 난자를 혼합해 만들어 나온 데 불과하다. 이들은 따스한 자궁 속이 아니라 차가운 금속과 유리 속에서 자란다. 이게 심리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거의 조롱에 가까운 비판이다. 내가 읽었던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이러한 비판의 단초를 제공하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심지어 인간의 신체구조도 '개선'하면 된다고 할 것이다. 유전공학이 오늘날 실험실을 빠져나와 응용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엔트로피가 축적됨에 따라 환경 안의 무질서는 암, 기형아, 아동들의 지능저하라는 형태로 우리 몸 속에 내재된다. 기술적 낙관주의자들은 이러한 무질서로 인해 국가의 경제성장 능력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을 알아차리고 생물공학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엔트로피』, 313쪽)

 

사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라메즈 남의 글을 일일이 반박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작가에게 나의 이 거부반응은 과학 외적인 감정적 문제이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권력을 가진 보수주의자라는 공격논리를 갖게 할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봤다. 3년 전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과학 맹신주의가 불러온 끔찍한 사고가 인류에게 나아가 지구 생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재앙을 불러올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최고의 과학기술의 집적이라고 자화자찬하며 인류의 새로운 에너지원이라고 했던 원자력을 이용한 에너지 사용이, 알고 보니 너무나도 허술할 뿐더라 그 이면에는 '원전마피아'라 불리는 엄청난 과학, 경제, 정치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라메즈 남은 이러한 생명 공학이 장애가 있는, 그리고 불임의 고통에 쌓여 있는 수백, 수천만 인류에게 희망을 줄거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지만 결국 실질적으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원전 마피아의 욕망과 동일함을 곳곳에서 알 수 있게 해 준다.

 

2002년 미국에서는 800만 명 이상이 성형 수술을 받았다. 여기에 170억 달러에 달하는 스포츠 보충제나 허브 제품이 팔려 나갔다. 이들 보충제는 건강을 지켜 준다거나 근육을 키워 준다거나 아니면 정신적 안정을 가져온다는 등의 광고를 하고 있지만 거의 효과가 없다(아예 없는 것도 많다). 그런데도 대량으로 판매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강화시키는 기술이나 약품이 나온다면 어찌될까. 아마 기존의 거대 시장을 완전히 휩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바로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의 논리가 그대로 베어있다. 필요가 아닌 욕망을 키우는 결과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책 마지막에는 마치 전 인류의 희망이라는 포장지로 자신이 논리를 포장하고 있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바탕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 능력을 초월해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는 생각, '현세에선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달성하려는 야망이야말로 인류 세계를 구축한 원동력이다.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나 생명을 구하는 약품을 얻은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 힘이 있기에 인류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미술, 음악, 철학도 모두 그런 힘이 만들어 낸 것이다. 심오한 우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런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기보다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비판해 마지 않던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는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가 자본주의 욕망에 의해 더이상 인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없는 쓰레기 에너지로 바뀌어 온 역사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기술하고, 욕망을 멈추고 인간이 보다 겸손해지고 자연 생태계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원전을 점진적으로 없애기로 선언했을 때 이 문제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철학, 시민사회 단체 대표 등 인류사회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사람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전에 치열하게 숙고해서 나온 결정이었다. 라메즈 남처럼 과학 하나만의 맹신을 가지고 모든 인류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 지를 단순화시켜 그려나가는 순간 우리는 정말 끔찍한 생명의 위기, 생태의 위기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제레미 리프킨의 한 구절을 인용해 마무리한다.  

 

"모든 기술은 주변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창조하는 대가로 일시적인 '질서의 섬'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진실이다. (『엔트로피』,115쪽)

 

 

함께 듣는 음악은 Pink Floyd의 『Atom Heart Mother』(1970) 앨범의 2번 곡 'IF'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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