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의욕이 없이 며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러시겠지요.

직장에서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위드블로그에서 문자메세지를 받았습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리뷰 등록 부탁드립니다' 라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90% 이상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한 올곧았던 평민 대통령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슬픔, 분노, 치욕, 죄의식 등으로 하루하루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주 전에 받아보았던 이 책에 대한 리뷰글을 쓰는 일 조차 위선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쩌지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긴 리뷰글은 올리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97년에는 북녘에서 심한 가뭄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그 후유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한 단체에서는 '안녕! 친구야'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했었죠. 
저는 그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해 급격하게 변한 대학풍토에 부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문지면을 통해, 그리고 몇 몇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동기생들을 통해 그 단체의 행사에 자원봉사를 지원했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그 단체는 단순한 북녘지원 단체의 성격에서 벗어나 북녘 아이들과 남녘 아이들이 만났을 때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도록 평화교육이라는 걸 실시했습니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이 토요일 초등학교 가방없는 날 수업에 가서 북녘 어린이들의 생활에 대한 퀴즈나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고 순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북녘의 노력 등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북녘 친구들을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보냈죠. 


글 오노 카즈오·나카무라 유미코/그림 이시바시 후지코/옮김 김규태/초록개구리 (2009)


이 책은 그런 아이들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평화', '자유',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소중한 이 단어를 설명하기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기에 일본에서 많은 교사들이 노력하여 어린이를 위한 평화 교재를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관심이 갔었죠.
 
그러나, 막상 택배배달원을 통해 이책을 받았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성인이라면 한~두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큰 글자체로 된 60여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 였습니다. 
나는 좀 더 풍부한 사례와 학습가능한 교안의 내용이 담긴 훌륭한 평화교육 지침서를 기대했었죠.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이 책은 바로 초등학생들이 직접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식의 눈높이를 확 낮춘 책이었던 거죠. 

#
운동장 사용,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언제나 같은 사람들이 자기들 맘대로 운동장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운동장을 쓴다는 규칙은 없습니다. 먼저 운동장을 차지하려고 복도를 뛰어서 운동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합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운동장을 나누어서 쓰자고 하면 화를 내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우리 모두 운동장을 즐겁게 쓸 수 있도록 서로 의논해서 규칙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가지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점심시간에 놀 수 있는 장소를 학년에 따라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나눕시다.
2. 축구는 운동장 전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학년에 따라 축구하는 날을 정합시다.

이 사례처럼 이 책은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그 다음은 소통을 통해 갈등을 제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물론, 완전히 풀리는 일은 어른들 일상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일상에서도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공정하거나 부정의한 것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작은 노력으로도 쉽게 고칠 수 있지요.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런 일상의 갈등을 서로 이야기 하며 해결해 과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성인이 되었을 때 갈등을 평화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거니깐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정글논리를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주입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라졌던 성적에 따른 줄세우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사교육없애기라는 명목으로 초등학교에는 0교시 수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연인즉, 많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과 후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억지로 0교시로 했다는 거죠. 
한 아이의 학부모인 직장 선배한테 한 숨 섞인 '사교육 없는' 시범학교 이야기를 듣고 참 암담했습니다. 아이들의 잠은 더 줄어들었고, 아이들은 사교육 학원과 사교육화된 공교육 속에서 더욱 찌들어갑니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 어른들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저 운동장의 혼란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 아이들처럼 간단명료하게 규칙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협의를 위한 장 자체가 불공정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기득권으로 무장한 정치권력, 검찰을 비롯한 공권력, 국민의 언로를 막아버리고 왜곡시키는 언론 권력 등이 우리가 평화롭게 해결해야 할 논의의 틀을 뒤흔들어버리는 것이겠죠. 그 속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애를 쓴' 바보들은 외롭게, 외롭게 쓰러져 갈수밖에요.

이런 어른들 속에서 이들의 삶을 지켜보며 커가는 아이들에게 평화를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아이들이 읽는다 하더라도 크게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경험한 바로는 아이들은 쉽게 자신의 생각을 바꿉니다. 어른들과 같은 똥고집 같은 것이 아이들에게는 없죠. 

대학생 때 평화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찾아갔을 때 약 두 시간 동안의 평화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정말 많이 달라지더군요. 처음에는 '우리 아빠가 북쪽 사람들은 빨갱이래요'라고 했던 아이들도 북녘 아이들이 보내 온 소개 그림과 글을 접하면서 재미있어하고, 동질감을 많이 느낍니다. 순식간에 금방 친해지죠.


# 원자력 발전은 정말 안전할까?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줄이려고 하는 나라도 있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그리고 독일은 앞으로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대요.


이 작은 책에서는 평화의 개념을 어떤 갈등의 문제로 한정짖지 않고 환경, 기아, 민주주의, 대인지뢰 등의 무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루고 있습니다.평화를 단지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집 안에 혼자 있을 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식구들이 없을 때' 정도로 정의하던 아이들이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평화의 영역과 자신을 벗어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몇 달 전 라디오에서 들은 독일 관련 뉴스를 하나 더 소개하죠.
저도 듣고 깜짝 놀랐었는데요. 독일 정부는 독일의 유명한 '아우토반' 고속도로의 최고속도를 시속 120Km로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아마도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막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겠는가 짐작하실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독일 정부가 이런 법안을 실행시키려는 취지는 다름 아닌 환경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즉 시속 120Km가 넘어가면 적정 연소를 넘어서 더욱 많은 매연이 배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죠?
그런 정부는 바로 그런 국민이 있기 때문에 선출되는 거겠죠.

이 책을 읽으면서 광고 문구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닌텐도 게임팩 대신 『평화를 배우는 교실 시리즈』를 아이들에게 선물하세요' 
분명 아이들과 나눌 소중한 이야기가 훨씬 많아질 것이며 경쟁속에서만 익숙했던 당신도 어느덧 뒤를 돌아보게 될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아이들 눈높이의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에 대한 교육 커리들이 많이 생산되기를 바래봅니다.  

함께 듣는 음악은 Peter Hofmann의 『Rock classics』(1982) 앨범 중 4번 곡인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입니다.
 

   

출처 : 안토니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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